(上) ‘차별’을 배우는 아이들

정유진·이서화 기자

선생님·기숙사·냉난방까지 성적순인 ‘계급교실’

고단한 하루는 이제 끝난 것일까. 지난 3일 인천 ㅅ고등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고단한 하루는 이제 끝난 것일까. 지난 3일 인천 ㅅ고등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 김영민 기자

학교는 철저한 ‘계급사회’다. 성적에 따라 접근이 허락되는 학교 시설이 다르고, 성적에 따라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의 질도 달라진다. 학생들 사이에서 “전교 몇 등까지는 ‘귀족’, 나머지는 ‘평민’이거나 ‘들러리’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도의 비평준화 지역에서 명문고로 꼽히는 ㅇ고교는 기숙사에 들어가는 학생을 철저히 성적에 따라 선발한다. 비평준화 지역 학교인 만큼 다른 시·군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집이 먼 학생들을 배려하는 부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능 모의고사 언어·수학·외국어 성적 60%와 기말고사 국·영·수 성적 40%를 반영해 기숙사생을 선발하는데 원거리 가산점은 2%에 불과하다. 이 학교 김모군(17)은 “집이 멀어 기숙사에 꼭 들어가야 하는 친구가 있었지만, 점수가 모자라 기숙사 입실에 실패했다”고 전했다.

[아직도 먼 학생인권](上) ‘차별’을 배우는 아이들

부천의 ㄱ여고 기숙사도 마찬가지다. 이 학교 기숙사는 원거리 학생들을 위한 일반실과 전교 1~40등만 들어갈 수 있는 ‘○○관’으로 나뉘는데, ○○관 학생에게는 온갖 특혜가 주어진다. 임모양(16)은 “잘 가르쳐서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선생님은 방과후학교 때 늘 ○○관 학생들만 모아놓은 수업에 들어간다. 가끔 ○○관 학생들만 신청할 수 있는 특강도 개설되는데 일반 학생들이 듣는 강의보다 수업료도 훨씬 싸다”고 말했다.

‘수준별 수업’은 정규수업에서도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차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부천 ㄱ여고는 컴퓨터와 연동돼 학습에 필요한 자료나 동영상을 곧바로 칠판에 띄울 수 있는 전자칠판을 들여왔는데, 이 최신식 학습도구는 최상위권 학생들을 모아놓은 A반에서만 사용된다. 원어민 영어강사도 공부를 잘하는 A반 위주로 배치된다. 역시 수준별 수업을 하고 있는 서울 ㅎ여고의 김모양(17)은 “난 다행히 A반이라서 영어시간에 원어민 수업을 받는데, 다른 반 아이들은 그것도 못 듣는다”고 했다.

성적 분반에 따라 수업 환경도 달라진다. 서울 ㄷ여고 이모양(18)은 “A반은 선생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고 밀착지도를 하지만, C반이나 D반은 선생님이 ‘잠만 자지 말라’며 다른 과목을 공부하거나 딴짓을 해도 제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각자에 맞는 교육환경을 제공하겠다며 도입한 ‘수준별 수업’이 공부 잘하는 반에만 학교 역량을 집중시켜 수준을 고착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먼 학생인권](上) ‘차별’을 배우는 아이들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계급’에 따라 무리지어 이동해야 한다. 인천 ㅇ여고에는 ‘빨간 독서실’로 불리는 방이 있다. 전교 1~10등만 출입이 허락되는 자습실이다. 전교 11~60등은 일반 독서실, 그리고 나머지는 교실에서 공부한다. 교실은 중앙난방 시스템이라 싸늘한 경우가 많지만 ‘빨간 독서실’은 다르다. 여기에는 에어컨·온풍기 겸용 기기가 있어 학생들이 언제든 마음대로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방 안에 정수기도 있고, 화장실도 따로 설치돼 있다. 안모양(18)은 “원래 등수 안되는 아이들은 드나들면 안되는데, 가끔 친구 만나러 그 방에 다녀온 아이들이 ‘거긴 완전 별세계’라고 하더라. 다 같은 친구들인데 너무 위화감이 든다”고 했다. 인천 ㄷ고는 전교 1~50등만 따로 공부할 수 있는 자습실을 만들어 점심을 먼저 먹게 한 뒤 점심시간을 통째로 공부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에 대한 교사들의 특별대우도 문제다. 입학사정관제 등으로 각종 경시대회나 외부 활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이러한 정보는 상위권 학생들에게만 알려진다. 지난해 서울 ㅂ고에는 전주의 유명한 자립형 사립고에서 한 학생이 전학을 왔다. 담임교사의 편애는 반 1등에서 전학생으로 옮겨갔다. 황모양(17)은 “워낙 공부 잘하는 학교에서 전학 온 친구라 학교의 기대가 큰 것 같다”면서 “그동안은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 1등에게만 고급 정보를 몰아줬는데, 전학생이 오자 우리 반 1등이 ‘이제 나한테는 국물도 없더라’고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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