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변하지 않는 학교

정유진·박준철·박효재 기자

두발·복장·소지품 검사 ‘일상’… 벌점 쌓이면 퇴학

공부, 공부, 그리고 또 공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교가 학생에게 요구하는 건 공부뿐이다. 어른들은 말한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나도 겪어봤다”고. 과연 그런가. 행복은 성적 순일까. 머리가 길면 공부를 못할까. 공부 못하는 학생은 차별을 받아도 되는 걸까. 대한민국에서 초·중·고교를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봤을 고민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학생은 1분, 1초도 방심할 수 없다. 학교 측의 배려는 인색하고,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권리는 미약하기 때문이다.

등굣길에 오르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학생이란 이유만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드러내야 한다. 교복 상의 가슴 부분에 박음질한 이름표 때문이다. 서울 ㅁ중학교 김모군(14)은 “요즘 같은 세상에 아무에게나 내 이름을 알도록 하는 게 조금 무섭다”고 했다. 명찰 박음질은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사생활의 자유 제한과 범죄 노출 우려’를 이유로 시정을 권고한 사항이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수 학교가 “탈·부착식 명찰은 쉽게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며 학칙으로 박음질을 규정하고 있다.

[아직도 먼 학생인권](上) 변하지 않는 학교

교문 앞에 도착하면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해야 한다. 교문 양옆으로 늘어선 선도부는 머리 길이, 치마 길이를 ㎝, ㎜ 단위까지 잰다. 경기 안양 ㅍ고 김모양(17)은 자로 잰 결과 치마가 규정보다 1㎝ 짧아 교사에게 적발됐다. 규정에 맞추려 밑단을 수선해 늘려놓기까지 했는데, 또 벌점이다. 교사는 “걸리기 싫으면 허리 치수 하나 더 큰 거 사든가”라고 말했다.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날을 잡아 검사하는 날이면 학교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인천 ㅅ고는 개학하자마자 실시한 복장검사에서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학생 150여명을 쫓아냈다. 쫓겨난 학생들은 4교시까지 수업을 받지 못했다. 이 학교의 한 학생은 “머리를 깎아도 ‘바리깡’을 댄 흔적이 없으면 다시 깎게 하고, 심지어 자퇴까지 권유했다”고 말했다.

선도부와 전쟁을 치르고 겨우 도착한 교실. 난방을 하지 않아 너무 춥다. 하지만 교실에서는 교복 재킷 위에 코트나 점퍼를 입을 수 없다. 학칙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집에서 가져온 무릎담요를 두른다. 이것도 걸리면 압수다. 서울 ㄷ여고 이모양(18)은 “추워서 못살겠다고 항의했더니, 학교에서 5만원씩 걷어 ‘학교 패딩’을 사자고 제안했다. 집에서 가져온 패딩 점퍼는 몽땅 압수해가면서 왜 돈 내고 새걸 사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서울 ㅎ여고 ㅇ교사는 “수업시간에 담요나 점퍼를 뒤집어쓰고 자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며 “또 가르치는 입장에서 학생들이 알록달록한 옷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시선이 분산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논리라면 대학생들도 교수의 시선이 분산되지 않도록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벌점으로 수치화된다. 학생증을 안 가져와도 벌점, 학생용 화장실이 붐벼 교사용 화장실에 들어가도 벌점, 졸다가 걸려도 벌점이다. 벌점이 쌓이면 강제전학이나 퇴학을 당할 수도 있다. 상(賞)점도 있긴 하다. 담배 피우는 친구를 금연의 길로 이끌면 상점 1을 받아 벌점을 만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친구가 담배 피웠다는 사실을 고자질하는 셈이 된다.

수업 중간에 갑자기 문이 열리고 생활지도 교사와 선도부 4~5명이 들이닥치면 소지품 검사가 시작된다는 신호다. 인천 ㅈ중을 졸업한 이모양(16)은 “선도부가 책상 속, 사물함, 교복 주머니까지 탈탈 뒤지는 동안 우리는 범죄 용의자들처럼 ‘머리에 손을 얹고’ 대기해야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모든 규제를 없애라고 요구하는 건 아니다. 단지 이해 안되는 규정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머리가 규정보다 1~2㎝ 길다고, 치마 길이가 1㎝ 짧다고 도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다는 거죠? 어른들은 학창시절로 돌아가 다시 한번 그렇게 살라고 하면 절대 안 할 거면서 왜 우리에게는 똑같은 걸 강요하나요? 시대가 바뀌었는데, 학교만 그대로예요.” 인천 ㄱ중을 졸업한 김모군(17)이 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한 이유다. 중학교 3년도 겨우 버텼는데, 고교 예비소집일날 학교에 가니 신입생 모두에게 “학칙을 어길 경우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했다. 그 길로 미련없이 학교를 떠났다. “용기가 없어서 문제 제기는 못하겠고, 그냥… 도망친 거죠.”

그러나 김군 같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든 말든 오늘도 학교는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과 마찬가지로 굴러간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학교 측이나 교사들은 “별일 없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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