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회복탄력성

야구는 인지 편향으로 둘러싸인 종목이다. 앞 타석의 안타가 이번 타석의 안타를 기대하게 만들고 오늘의 승리가 내일의 승리를 보장하는 듯 여겨진다. 반대로 앞 타석의 부진은 다음 타석의 불안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최신 편향(recency)은 야구와 뗄 수 없는 요소다.

인지 부조화도 자주 일어난다. 우리 팀에 유리한 요소는 크게 보이고, 불리한 요소는 작게 보인다. 승리에 대한 바람과 열망이 합쳐져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어제 지고 난 뒤 세상을 잃은 것 같지만, 오늘 이기면 세상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을야구는 ‘일희일비’의 세계다. 물론, 이게 야구의 매력이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7월 초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가 시즌 아웃 부상을 당하면서 ‘절망’에 빠졌다. 이미 투수 유망주 마이크 소로카는 또다시 아킬레스 건을 다쳐 뛸 수 없었고, 외야수 마르셀 오수나는 가정 폭력 혐의에 따른 징계로 시즌이 끝났다. 승률 5할에 닿을 듯 말 듯 하면서 시간이 계속 흘렀다. 애틀랜타 알렉스 앤소폴로스 단장은 고민 끝에 ‘윈 나우’를 결정했고 7월 말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쓸 만한 외야수가 많지 않았다. 작 피더슨(컵스), 에디 로사리오(미네소타), 애덤 듀발(마이애미), 호르헤 솔레어(캔자스시티)를 끌어모았지만 다른 팀들에 위협을 줄 만한 ‘빅네임’은 아니었다.

88승으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는 가을야구에 오른 10팀 중 가장 낮은 승률이었다. 애틀랜타의 가을 전망은 밝지 않았다. ‘행복회로’에도 한계가 있다. 외야수 솔레어는 디비전시리즈 도중 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챔피언십시리즈에 나서지 못했고, 에이스 찰리 모튼은 월드시리즈 1차전 2회에 타구를 맞아 정강이뼈가 부러졌다.

모두가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애틀랜타는 휴스턴을 4승2패로 꺾고 2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선발 투수가 없는 가운데 신인급 투수들을 4차전과 5차전에서 선발로 내보냈다. 4차전 선발 딜런 리는 아웃카운트 1개만 잡고 내려왔음에도, 애틀랜타는 3-2 역전승에 성공했다.

객관적 전력에서 밀리고, 절망적 상황에서도 오히려 힘을 내는 것을 ‘회복탄력성’이라 부른다. 7월 말에 부랴부랴 모은 외야수들은 가을야구 동안 펄펄 날았다. 선발이 없는 공백을 불펜 투수들이 짐을 나눠 맡으며 경기를 지켜냈다. 지난해 챔피언십시리즈에서 3승1패로 이기다 다저스에 3연패로 역전당한 애틀랜타는 이번 시즌 갖은 악재 속에서 오히려 ‘회복탄력성’이 더욱 강해졌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서 3승1패 뒤 다저스에 2-11로 대패하자 불안감이 찾아왔지만 6차전을 4-2로 이겼고, 월드시리즈에서도 3승1패 뒤 5-9로 크게 지고 나서 거꾸로 6차전을 7-0으로 이겼다.

두산이 가을에 강한 건 그저 가을야구를 많이 해 본 경험 때문이 아니다. 수년간 주축 선수들이 계속 빠져나가면서도 이를 이겨 낸 ‘회복탄력성’ 덕분이다. 키움과의 1차전 역전패는 ‘이제 두산이 안 되는구나’라는 시선을 지배적으로 만들었지만 2차전에서 16-8 대승을 만들었다. LG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3-9 패배는 두산 마운드의 한계로 보였는데, 되레 3차전을 10-3으로 크게 이겼다. 플레이오프는 역시 전력은 삼성이 앞서지만 두산의 회복탄력성은 팀을 어디까지 튀어오르게 할지 알 수 없다. ‘이제 안 돼, 이제 졌다’고 생각하기 전까지, 야구는 끝나지 않는다. 요기 베라는 언제나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