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스와 고영표, 묘수를 위한 조건

이용균 기자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우리아스와 고영표, 묘수를 위한 조건

LA다저스가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NLDS) 4차전에서 샌프란시스코를 7-2로 이긴 10월12일 밤(현지시간)이었다. 코칭스태프가 모여 5차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리그 최다인 107승을 거둔 만만치 않은 팀이었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야 했다. 알렉스 슬레이터 운영팀장이 입을 열었다.

“혹시, 오프너 전략은 어떨까요.”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답했다. “그거, 흥미로운데….”

5차전 선발은 이번 시즌 20승을 거둔 훌리오 우리아스였다. 20승 투수를 뒤로 빼는 것은 ‘변칙’이었다. 다저스 코칭스태프와 데이터팀이 머리를 맞댔다. 샌프란시스코의 장점인 ‘타선 다양성’을 흔들 수 있는 계획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4번타자 버스터 포지를 한 번이라도 덜 만나는 게 낫다는 계산이 더해졌다. 포지는 2차전에서 우리아스를 상대로 2루타를 때렸다.

오프너 전략에 변칙을 하나 더해 ‘더블 오프너’ 전략을 세웠다. 우완인 코리 크네블이 먼저, 브루스다르 그레이테롤이 2번째 오프너로 나서고, 그다음에 좌완 우리아스를 내기로 했다.

문제는 역시 ‘변칙’이라는 점이다. 변칙 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정에 대한 선수단 전체의 공감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로버츠 감독과 마크 프라이어 투수코치는 샌프란시스코 원정 비행기 안에서 우리아스를 만나 전략을 설명했다. 좌타자가 먼저 나왔다 빠지면 샌프란시스코 타선의 뎁스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우리아스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다음에 크네블과 그레이테롤에게 알렸고, 이 둘도 오케이 사인을 냈다.

당사자들만 설득한 게 아니라 선수단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맥스 셔저와 클레이턴 커쇼, 워커 뷸러에게도 이 전략을 설명했다. 불펜 베테랑 블레이크 트레이넨과 켄리 잰슨에게도 동의를 구했다. 심지어 야수 주축인 무키 베츠, 저스틴 터너, 코리 시거에게도 ‘더블 오프너’의 이유를 설명했다. 프라이어 코치는 디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모두의 동의가 나온 뒤에야 최종 전략이 확정됐다. 모두가 승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다저스는 5차전에서 더블 오프너를 썼고, 셔저가 마무리 투수로 나와 2-1 승리를 지켰다.

KT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에이스 고영표를 불펜으로 돌리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이강철 감독의 결정 역시 ‘감’에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이 감독은 “데이터팀의 조언을 비롯해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KT 나도현 데이터 기획팀장은 “감독님께 고영표의 하이레버리지 상황 활용도, 두산 타순을 3번째 만났을 때의 변화 등에 대한 자료를 전달해 드렸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고영표에게 불펜 이동 가능성을 알렸다. 이 감독은 “고영표가 처음에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철회할 생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포수 장성우와 의견을 나눴고, 장성우도 고영표 불펜 전략에 동의했다. 장성우의 설득 속에 고영표가 불펜행을 받아들였다.

KT 불펜은 시즌 중 강했지만 가을야구 경험이 없었다. 고영표가 잡아낸 14개의 아웃카운트는 KT 우승에 결정적이었다. 이 감독은 “고영표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승부를 가르는 ‘빛나는 한 수’는 감독의 머리가 아니라 팀 전체의 공감에서 완성된다. 변칙은 이해와 공감 속에서 ‘묘수’가 된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