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균 기자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강백호, 천재의 진화

다른 구단의 베테랑 외야수가 물었다.

“쟤는 학교 다닐 때 120~130㎞짜리 투수 나오면 그냥 서 있다 들어갔대요. 140㎞ 정도 던지는 투수 나와야 제대로 타격 자세 잡았대요.”

다분히 과장된 이야기지만, 천재들에게는 이런 ‘설화’ 하나쯤은 생기기 마련이다. 온몸을 집어 던지는 듯한 강한 회전의 타격 폼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한 결과물이다.

첫 홈런은 헥터 노에시로부터 뽑아냈다. 바깥쪽 낮은 147㎞를 강하게 찍어서 밀어 넘겼다. 다른 팀으로부터 ‘약점’이라고 분석됐던 코스의 공을 때려 첫 홈런을 만들었다. 2번째 홈런은 좌타자에게 어렵다는 우완 사이드암스로의 체인지업을 때려 넘겼고 3호 홈런은 조쉬 린드블럼의 몸쪽 꽉 찬 속구를 받아 넘겼다. 장원준의 몸쪽 제구된 슬라이더를 때려 넘긴 4호 홈런은 모두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그 홈런을 좌익수 자리에서 지켜본 김재환은 “우리 팀이 홈런을 맞는 상황인데도 ‘우와’ 소리만 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입단 전부터 천재 소리를 듣던 KT 강백호는 올 시즌 또 성장했다. 입단 첫해 무조건 휘두르는 타자였다면, 4년째인 올해는 상황에 따라 다른 스윙을 하는 타자가 됐다. 지난해보다 장타율이 다소 줄었지만 출루율 0.450을 만들며 데뷔 후 최고인 OPS 0.971을 만들었다. 멜 로하스 주니어가 빈자리를 혼자 메웠다.

결정적 순간마다 ‘달라진 강백호’가 있었다. 10월31일 삼성과 벌인 우승 결정전, 강백호는 4회 2번째 타석에서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삼성 원태인은 공 4개를 모두 147㎞ 속구로 던졌다. 속구를 알고도 헛스윙을 당한 강백호는 분하다는 듯 방망이를 땅에 내리쳤다.

원태인은 웃고 있었다. 2021시즌 최고의 투타 대결 장면이었다.

6회 2사 1·3루에서 재대결이 이뤄졌다. 원태인은 이번에도 자신있게 전구 속구 승부를 했다. 하지만 강백호는 전 타석처럼 덤벼들지 않았다. 바깥쪽 속구를 가볍게 따라갔고, 3유간을 빠지는 적시타로 만들었다. 그 점수가 결승점이 됐다.

강백호의 진화는 한국시리즈 1차전으로 이어졌다. 0-0이던 4회말 선두타자 강백호는 풀카운트에서 6구째 온몸을 던지는 특유의 강한 스윙을 했다. 파울이 됐고 7구째를 기다렸다. 풀카운트 선두타자라면 속구 가능성이 8할 이상이다. 곽빈-박세혁 배터리가 허를 찌르는 커브를 던졌는데, 강백호가 허를 찔리지 않았다. 타격 타이밍을 조절해 좌전 안타를 만들었다. 이 출루가 선취점이 됐다. 강백호는 “곽빈의 커브가 손에서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7회에는 바뀐 투수 이현승의 초구 슬라이더를 밀어 때려 쐐기 타점을 올렸다. 바뀐 투수의 초구 역시 속구 가능성이 8할이었는데, 바깥쪽 제구된 슬라이더를 정확하게 밀어 때렸다. 강백호는 “현승 선배는 포크볼이 좋기 때문에 카운트가 몰리면 안 된다고 계산했다. 유격수가 2루 쪽으로 빠져 있는 게 보였다. 밀어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KT의 우승에는 ‘달라진 강백호’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천재의 진화다.

2021시즌을 앞두고 강백호는 “풀타임을 뛰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약속을 지켰고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강백호는 일찌감치 내년 시즌 목표를 ‘30홈런’으로 정했다. 강백호는 “목표를 세우면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머물러 있는 천재는 더 이상 천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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