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서대문구 봉원동 “학생들 나와서 밥 먹어”…제2전성기 꿈꾸는 하숙촌

정유미 기자
서울 서대문구 봉원마을은 1970년대 생겨난 하숙촌이다. 서울 신촌 대학가를 끼고 있어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이 모여 들었다. 봉원동의 한 하숙집 문에 ‘힘들 땐 잠시 쉬세요’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서울 서대문구 봉원마을은 1970년대 생겨난 하숙촌이다. 서울 신촌 대학가를 끼고 있어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이 모여 들었다. 봉원동의 한 하숙집 문에 ‘힘들 땐 잠시 쉬세요’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은 야트막한 안산 자락에 한적하게 자리한 ‘하숙촌’이다. 신촌 대학가와 가까워 전국 각지에서 유학 온 젊은이들이 풋풋하게 추억을 쌓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새내기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할 때까지 4~5년을 머무르는 젊은이들의 보금자리가 봉원동이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봉원동은 신라시대 천년 고찰 봉원사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신촌 방면 금화터널 옆으로 제법 큰 골목이 나오는데 하숙촌으로 불리는 봉원길이다. 봉원사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집집마다 ‘하숙집’ ‘원룸’이라는 안내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요즘 하숙집 분위기는 어떨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하숙’이라고 푯말이 적힌 알록달록 예쁘장한 2층집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양말, 속옷, 체육복 등 온갖 빨래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데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빈센트 반 고흐 등 벽면에 있는 유명한 작가의 그림들이 친숙했다. “에고, 맨날 어떻게 딴 반찬을 해줘. 그냥 집에서 먹는 것처럼 하는 거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곰국하고 미역국을 제일 잘 먹어.” 하숙집 아주머니는 “하숙생들에게 진짜 인기 있는 곳은 따로 있다”며 마당으로 안내했다. 나무 탁자 한가운데 고기 불판이 놓여 있는 테라스였다. 주말이면 하숙생들이 삼겹살도 구워 먹고 커피도 마시는 열린 공간이라고 했다. 펜션이 따로 없다고 해야 할까. 세월이 무상했다.

[서울, 마을을 읽다](8)서대문구 봉원동 “학생들 나와서 밥 먹어”…제2전성기 꿈꾸는 하숙촌

봉원동에 하숙집이 생긴 것은 1970년대 초다. 기숙사가 없던 시절 신촌 대학가를 끼고 있는 가정집으로 하숙생이 몰려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까까머리 하숙생들은 늘 배가 고팠다. 흰 쌀밥과 국에 밑반찬 7~8가지가 나오는 밥상은 ‘임금님 수라상’이었다. 구운 김, 계란프라이, 콩나물무침, 멸치볶음, 된장찌개, 생선구이, 소시지는 단골 메뉴였다. 식사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오전 7시와 오후 8시 하숙집 아주머니가 차려준 밥상에 10여명씩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울 때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등 전국 팔도 사투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더러 ‘썸을 타는’ 하숙생도 있었다. 잘생긴 청년이 기타를 치며 흥얼거리면 못 이기는 척 여대생이 콧노래를 부르던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다.

하숙집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학사 일정을 따라가기 힘들고 학과목 시험을 준비하기가 버거워지면서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이지만 좀처럼 얼굴을 맞대기 힘들다. 외국어 학원을 다니며 토익과 토플 점수를 챙겨야 하고 값비싼 등록금을 생각하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용돈이라도 벌어야 한다. 밤 12시를 넘기는 것은 물론이고 새벽 2시에 귀가하는 때도 많다. 졸업을 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하숙집을 떠나지 못하는 서글픈 하숙생도 늘고 있다.

금화터널 양옆에 자리한 봉원마을. 대학 내 기숙사가 많이 생기면서 과거와 달리 하숙집은 많이 줄어들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금화터널 양옆에 자리한 봉원마을. 대학 내 기숙사가 많이 생기면서 과거와 달리 하숙집은 많이 줄어들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옛날에는 방학이면 한 달 내내 방을 비웠지만 요즘은 고향에 내려가도 길어야 5일이지요. 제때 밥을 챙겨먹는 하숙생들도 거의 없어요. 어쩔 수 없이 24시간 부엌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하숙집을 20여년째 운영하는 오형숙씨(59)는 “새벽녘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 하숙생을 보면 친자식처럼 안쓰럽고 딱하다”면서 “힘들고 마음 상하는 일이 없었는지 밥상이라도 정성껏 내주려 한다”고 말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외국인 하숙생이 늘어난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 유학생들은 곧잘 적응하지만 러시아 등 유럽 학생들은 의사소통이 어려워 곤혹을 치른다. 10여년째 외국인 하숙생을 받고 있는 오점순씨(61)는 “워낙 어학 실력이 뛰어난 한국 학생들이 많아 식탁에서 동시통역을 해준다”며 “‘밥맛 좋아요. 맛있어요’라고 할 때가 제일 고맙다”고 말했다.

하숙집을 나와 봉원사 끝자락에 다다르자 정겨운 풍경이 나왔다. 한국 불교 태고종(太古宗)의 총본산인 봉원사는 도선국사가 889년(진성여왕 3) 창건해 반야사라고 불렸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탔고 1748년(영조 24) 중건되면서 ‘봉원사’로 개칭했다. 봉원사의 오래된 역사를 말해주는 느티나무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1970~1980년대로 돌아간 듯 오래된 집들이 한가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태고종 스님들이 결혼해 가정을 이룬 집들이었다. 어린 시절 왜 그렇게 집 대문이 크고 높았는지, 발끝을 세워도 닿지 않던 담벼락에서 사진 한 컷을 남기면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겠다 싶었다.

“서울에는 우산 골목이 없잖아. 색색의 우산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예쁘지 않을까. 행복한 꽃길 마을로 만들려고 해.” 조성보 협동조합 이사장(74)은 “오는 3월 일곱 빛깔 무지개보다 더 아름다운 우산을 봉원길을 따라 걸 계획”이라며 “봉원사와 안산 둘레길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멋진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봉원 마을은 금화터널을 중심으로 양쪽 안산 자락에 있다. 건너편 또 다른 하숙촌을 둘러보기 위해 금화터널 위를 천천히 걸었다. 새로 생긴 대학 건물이 우뚝우뚝한데 언제 마을 스카이라인이 이렇게 달라졌나 싶을 정도여서 놀랐다.

청년 카페 ‘체화당’에서 만난 이태영 풀뿌리학교 사무국장(31)은 “한때 50여개였던 하숙집이 지금은 18개만 남았다”며 “인근 대학에 대형 기숙사들이 들어서고 있어 하숙촌이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마을에 위기감이 생기자 주민과 신촌 대학가 젊은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존방안을 나눴다.

주민 100여명은 신촌봉원마을협동조합을 꾸렸고 봉원마을사업단도 발족했다. 체화당은 사랑방을 자처했다. 목공으로 마을을 디자인하는 ‘마디마디 워크숍’을 통해 동네에서 쓸 평상을 같이 짜고 가구제작 강의를 열었다. 봉원길에 자그마한 공원을 예쁘게 꾸며 주말 장터를 열고 태양광 카페도 세웠다. 친환경 하숙촌으로 거듭나기 위해 집집마다 태양광 패널도 설치 중이다.

봉원동은 하루를 머물러도 고향처럼 느낄 수 있는 인정 넘치는 마을로 남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어머 이 맛은…엄마의 손맛?

서울 서대문구 봉원마을에는 ‘엄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맛집이 수두룩하다. ‘존재의 이유’(02-312-2991~2)는 한식으로 처음 시작해 도시락 배달과 디저트 카페까지 연 토박이 식당이다. 금화터널에서 신촌 방면으로 나오면 오른쪽으로 3호점까지 줄지어 있는데 1호점은 인근 대학가를 중심으로 도시락 배달을 하고, 2호점은 가정식 백반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간단하게 한잔할 수 있다. 3호점은 분위기 있게 차 한잔을 나눌 수 있는 카페다. 가정식 백반 6000원, 버섯불고기 백반 7000원, 생오겹살 1만2000원이다.

35년 된 ‘효동각’(02-392-0682)은 일반 중국집과 달리 짜장면 한가지만 취급한다. 얇은 면발에 새송이버섯, 고구마, 애호박 등 몸에 좋은 재료들이 듬뿍 들어가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짜장면 6000원.

‘다미손칼국수’(02-395-5342)는 넓은 면발에 정갈하게 다져 넣은 만두소가 매력적이다. 칼만두 5500원, 사골우거지 6000원, 보쌈 2만5000원.

‘딸기골 분식’(02-363-5563)은 1969년 ‘딸기 아이스케키’로 문을 열어 49년째 운영 중인 분식집이다. 주메뉴는 떡볶이, 돌솥밥, 순두부찌개 등 일반 분식점과 다를 바 없지만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가격이 싸다. 인기메뉴는 치즈김치순두부 4500원, 오징어돌솥밥 4500원, 참치김치순두부 4500원이다.

‘소녀 방앗간’(02-363-0603)은 맛깔스러우면서도 정갈한 퓨전 한식을 먹고 싶을 때 찾으면 좋다. 2~3개뿐인 메뉴가 매일 바뀌는데 가장 잘 나가는 음식은 비빔밥과 덮밥류다. 산나물밥 6000원, 참명란비빔밥 8000원, 장아찌불고기밥 8000원.

‘돌돌베이커리’(02-312-0855)는 ‘녹차 덕후들의 성지’로 불리면서 유명해진 맛집이다. 양식, 일식 등 5명의 셰프와 1명의 베이커가 모여 만든 빵집으로 녹차, 팥, 초콜릿 등을 듬뿍 넣어 한끼 식사로 충분하다. 줄을 서야 맛볼 수 있지만 미리 전화로 예약하면 곧바로 먹을 수 있다. 녹차머핀 3500원, 녹차타르트 5000원.


경향신문·서울관광마케팅(STO)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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