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날이 장날’ 그 와중에 만난 12월 광어·반지, 입에서 사르륵

김진영

(97) 목포 청호·항동시장

강풍·눈에 꽁꽁 언 시장, 역시나 ‘개점휴업’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풍부한 해산물이 내는 얼큰한 국물이 압권인 중화루의 짬뽕, 가성비를 넘어 ‘갓성비’를 자랑한 12월의 광어, 짬뽕의 영원한 라이벌 중화루 간짜장 ‘중깐’, 따끈한 밥 한 공기는 ‘순삭’시키는 두툼한 삼치구이, 지금부터 초봄까지가 제철인 반지회, 아이스크림처럼 입에서 살살 녹는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풍부한 해산물이 내는 얼큰한 국물이 압권인 중화루의 짬뽕, 가성비를 넘어 ‘갓성비’를 자랑한 12월의 광어, 짬뽕의 영원한 라이벌 중화루 간짜장 ‘중깐’, 따끈한 밥 한 공기는 ‘순삭’시키는 두툼한 삼치구이, 지금부터 초봄까지가 제철인 반지회, 아이스크림처럼 입에서 살살 녹는다.

전국 시군 중에서 오일장이 없는 곳이 몇 곳 있다. 속초와 강릉이 그랬다. 강릉은 그나마 천변에서 새벽시장이 열린다. 오일장이 상설시장으로 바뀐 정읍, 아직 가지 않은 전주 또한 없다. 당연히 있을 것 같은 목포 또한 오일장이 서지 않는다. 다만 목포역 뒤 구 청호시장 주변에서 새벽시장이 열린다. 새벽시장은 이른 시간에 열리는 대신 가격이나 품질이 좋기에 찾는 이가 많다. 오일장만큼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곳이 새벽시장이다. 청호시장은 ‘신(新)과 구(舊)’ 두 개의 시장이 있다. 예전 청호시장 자리에 대교가 놓일 계획에 기존 시장은 이전했다. 다리 건설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그 자리에 노점상이 들면서 다시 새벽시장이 열리고 있다. 목포 새벽시장 보러 가는 길 내내 눈이 내렸다. 잠시 드는 작년 장흥처럼 오일장이 서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으나, 눈이 와도 도시이니 상설시장이나 수산물 시장은 열리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안일함은 현실이 됐다. 전남지역에 내린 대설주의보와 강풍에 시장 취재는 날아갔다. 상대적으로 따듯한 남쪽 목포는 강풍에 이은 추위와 내리는 눈에 시장 기능이 멈췄다.

새벽시장이어도 눈 오는 것을 감안해 느지막이 나갔다. 노점상이든 상가든 열린 곳이 드물었다. 이곳저곳 돌아다녀도 사람 보기 힘들었다. 문 연 곳 또한 이내 문 닫을 듯한 분위기였다. 눈이 계속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개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강풍과 눈이 내렸다. 파장이었다. 새벽시장을 포기하고는 여객터미널 앞 항동 시장으로 향했다. 홍어와 수산물 거래가 이뤄지는 곳 또한 문 연 곳이 드물었다. 오전 11시가 되어도 사람 구경할 수 있는 곳은 겨우 떡집. 시장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수산물 경매장이 있는 북항으로 갔다. 여기 또한 바람과 눈으로 인한 개점휴업 상태. 차가워진 마음처럼 서늘한 물이 흐르는 수조엔 낙지와 적은 양의 생선만 있었다. 풍랑주의보에 싱싱한 생선이 들어오지 못한 탓이다. 여름이면 민어 경매에 사람들이 바글거리던 모습과는 달랐다. 그냥 돌아서기 아쉬워 둘러보니 그나마 있는 것 중에서 광어가 눈에 띄었다. 대설주의보가 한창인 육지와 달리 바다의 계절은 아직 가을이다. 온갖 매체에서는 방어 타령이 연신 울리나 사실 12월은 광어의 계절이다. 이른 봄에 산란하는 광어는 지금이 맛으로는 정점. 누구도 찾지 않으니 광어는 맛의 기준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가성비라는 것을 낸 금액에 대한 맛의 대가로 따진다면 12월의 광어는 ‘갑 오브 갑’, 가성비를 넘어 ‘갓성비’를 자랑한다. 올림픽에서 맛과 가성비의 경기가 있다면 광어는 금이다. 누구나 찾는 방어는 예선 탈락이다. 몇 마리 중에서 가장 큰 놈으로 골랐다. 같은 크기라도 살집 좋은 것을 고르는 게 요령이다. 생각했던 금액보다는 조금 높았다. 며칠 배가 들어오지 않은 상태를 고려하면 수긍할 수 있는 금액. 경매장에서 사고는 건너편 회센터에서 회를 떴다. 하얀 생선 살 속에는 겨울을 대비한 기름기를 가득 품고 있었다. 센터 주인장이 건네주는 뱃살을 맛보니 고소함이 가득하였다. 같이 간 이 또한 처음 맛보는 12월의 광어 뱃살 맛을 보고는 12월 방어 생각을 지웠다. 바다 생선은 우리와 다른 시간을 간다.

생선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하자면 목포시에서 정한 9미가 있다. 찬찬히 살펴보니 전부가 생선이다. 우럭, 낙지, 홍어(삼합), 준치, 민어, 갈치, 꽃게, 아귀, 병어다. 목포는 항구이니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빠진 게 있다. 사시사철 수산물이 나기에 사시사철 각각 맛으로 빛나는 것들이 있다. 12월에 광어처럼 말이다. 준치만 하더라도 겨울부터 봄 사이에 잠시 생물이 나오고는 이내 감춘다. 잠깐 나오는 선어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냉동이다. 갈치 또한 사계절 내내 나온다. 목포 배가 제주 근해까지 잡아 온다. 목포 배가 잡았으니 목포 먹갈치가 된다. 갈치 또한 맛으로 빛나는 시기가 지금이다. 9미 선정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거기에 맛으로 빛나는 시기를 추가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정보를 줘야 한다. 생선은 계절에 따라 맛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남쪽 목포는 상대적으로 따뜻하지만 강풍에 이은 추위와 내리는 눈에 시장 기능이 멈췄다. 새벽시장은 노점상이든 상가든 열린 곳이 드물었다. 파장이었다.

남쪽 목포는 상대적으로 따뜻하지만 강풍에 이은 추위와 내리는 눈에 시장 기능이 멈췄다. 새벽시장은 노점상이든 상가든 열린 곳이 드물었다. 파장이었다.

9미 선정을 누가 했는지 몰라도 12월의 송어를 빠뜨렸다. 목포에서 송어는 강원도 평창이나 화천에서 키우는 송어와는 다른 생선이다. 흔히 밴댕이라 이야기하는 반지를 일컫는다. 반지는 밴댕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잘못 부르는 것이다. 밴댕이라 부르는 생선은 따로 있다. 청어과의 생선으로 흔히 이 생선의 새끼를 디포리라 부른다. 뒤(디)가 퍼(포)레서 디포리다. 밴댕이 혹은 송어라 부르고 있는 것은 반지다. 강화, 인천 등의 수도권에서는 밴댕이로 알고 있지만, 표준어는 반지다. 유일하게 반지가 나면서 반지라 부르는 곳은 군산이 유일하다. 눈발이 흩날리는 목포 부둣가에 유일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만선식당. 몇 년 전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인연을 맺은 곳이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송어회(반지회)를 주문했다. 작은 생선인 반지는 한 마리에서 앞뒤로 회 두 점이 나온다. 앞과 뒤는 사람의 관점이고 반지의 입장에서 좌우 두 점이다. 앞이든 뒤든 좌든 우든 상관없다. 기름기 가득 품은 회는 아이스크림처럼 입에서 살살 녹는다. 작은 반지회는 12월의 목포 바다를 품고 있다. 반지의 계절은 지금부터 초봄까지다. 산란할 때의 반지는 알과 정소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겨울 반지는 지금이다. 따듯한 봄날이 아니다. 만선식당 (061)244-3621

생선구이 집의 대표 메뉴는 고등어와 기타 등등이다. 간혹 삼치가 등장하긴 하더라도 어른 삼치가 아니라 흔히 ‘고시’라 부르는 삼치의 새끼다. 크기가 성어인 고등어보다 크더라도 40㎝ 미만은 새끼가 맞다. 그 이상이더라도 1m 넘게 크는 삼치와 비교해 ‘애삼치’다. 지면을 통해 몇 번 이야기한 게 삼치의 맛이다. 12월은 삼치의 계절, 회도 좋고 구이면 더 좋다. 먹갈치 내는 곳이 많은 목포에서 대삼치를 내는 곳이 있다. 삼치 크기가 우선 마음에 들고 수저 종이에 새긴 글귀 또한 마음에 든다. ‘밥이 맛있는 식당’이 커다란 글씨로 새겨져 있다. 9미를 선정하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을 잊는다. 바로 ‘밥’이다. 잘 만든 탕, 조림, 회에 숨이 죽은 공깃밥 내는 식당이 많다. 여기처럼 바로 밥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음식 차릴 때 바로 퍼서 주면 된다. 갓 푼 따스한 밥 위에 두툼한 삼치구이를 올리면 9미가 다 덤벼도 안 된다. 밥 한 그릇 ‘순삭’이다. 간장과 와사비가 같이 나와도 찬으로 나온 세하젓(쌀새우)을 찍어 올리면 간과 맛이 딱 알맞다. 이보다 삼치 맛나게 구워내는 곳을 못 봤다. 어문당 (061)284-9682

목포역 앞 중국집, 중깐으로 유명한 중화루가 있다. 중화루 간짜장을 줄인 것이 ‘중깐’이다. 흔한 갈등 유발 품목인 ‘짜장과 짬뽕’. 중화루는 중깐이 유명하기에 대부분 중깐을 주문한다. 사실 이 집이 짜장과 짬뽕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는 원조집이 아닌가 싶다. 중깐이 뭔지도 몰랐던 필자가 십 년 전에 주문한 것은 짬뽕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항구 도시에서는 무조건 짬뽕을 주문했다. 다른 곳보다 수산물이 풍부하기에 짬뽕 건더기가 실하다는 이유다. 아닌 곳도 분명히 있지만 여기는 그곳과는 달랐다. 풍부한 수산물이 내는 얼큰한 국물이 압권이었다. 피조개가 바지락처럼 들어가 있던 비주얼 또한 한몫했다. 그 이후로 중깐을 알고서는 이 식당에서는 선택 장애가 생겼다. 눈이 흩날리는 날씨 덕인지 망설임 없이 짬뽕을 주문했다. 위소라와 대왕오징어, 홍합만 있는 다른 곳 짬뽕과 달리 새우, 건새우, 가리비, 전복, 피조개 등이 듬뿍 들어간 짬뽕이 나왔다. 다음에 간다면 짜장과 짬뽕 사이에서 갈등이 생길 것이지만 겨울은 짬뽕이다. 식사하고 근대역사관으로 방향을 돌리면 목포에서 자란 이들이 차린 예쁜 레스토랑 겸 카페가 나온다. 이 집 치즈 케이크 잘한다. 중화루 (061)244-6525, 아틀리에 능소화 0507-1341-4198

날씨 덕에 장날은 파장이었어도 맛으로 제대로 즐긴 목포다. 흔히 알고 있는 맛에 제철을 더하면 맛은 더 빛난다. 새해에도 제철을 더한 맛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김진영

[지극히 味적인 시장]‘가는 날이 장날’ 그 와중에 만난 12월 광어·반지, 입에서 사르륵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7년차 그린랩스 팜모닝 소속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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