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거리는 온통 비명”…여진 속 폭풍 예보까지 ‘설상가상’

윤기은 기자

추가 붕괴 우려에 구조 난항

부상자 늘어나 병원도 포화

정치 공백·경제난 혼란 가중

미 등 국제사회 “인도적 지원”

<b>막막</b> 14일(현지시간) 아이티를 강타한 규모 7.2의 강진으로 집을 잃은 남서부 항구도시 레카예의 이재민들이 병원 앞 마당 잔디밭에 누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레카예 | AP연합뉴스

막막 14일(현지시간) 아이티를 강타한 규모 7.2의 강진으로 집을 잃은 남서부 항구도시 레카예의 이재민들이 병원 앞 마당 잔디밭에 누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레카예 | AP연합뉴스

암살로 대통령을 잃고,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 비극이 이어졌다. 10년 만에 규모 7이 넘는 강진이 발생해 최소 304명이 숨지고, 1500채가 넘는 가옥이 파손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으로 인해 아이티 경제가 악화되고 사회 혼란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14일 오전 8시29분쯤(현지시간) 아이티 서남부 프티트루드니프에서 남동쪽으로 약 13㎞ 떨어진 곳에서 규모 7.2의 지진이 발생했다. 아이티 시민보호국은 트위터를 통해 이날 최소 304명이 숨지고 1800명 이상 다쳤다고 전했다. 또 가옥 860채가 파괴되고 700채 이상이 부분적으로 손상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프티트루드니프와 진원지 근처인 레카예, 제레미 등에 지진 피해가 집중됐다.

갑작스레 발생한 지진에 피해 지역 주민들은 혼비백산 피난길에 나섰다. 레카예에 거주하는 아바드 로자마는 “길거리가 비명으로 가득 찼다”며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의료진의 도움을 찾아 헤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같은 도시에 사는 위첼 아구스틴은 “많은 집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잔해 밑에 깔려 있다. 병원으로 뛰어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다른 주민은 자신이 장보러 간 사이 아내와 두 살 난 딸이 목욕을 하다 벌거벗은 채로 밖으로 나왔다고 전했다.

“아이티 거리는 온통 비명”…여진 속 폭풍 예보까지 ‘설상가상’

현지 언론은 아이티 국회의원을 지낸 전 레카예 시장 가브리엘 포춘도 자신이 소유한 르망기에 호텔이 붕괴하면서 매몰돼 숨졌다고 전했다. 아이티에는 한국 기업 직원과 자영업자, 선교사 등 한인들도 150명가량 거주 중인데 아직까지 한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티 당국은 피해 지역에 대응팀을 보내 생존자 수색과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번 강진은 이웃 도미니카공화국과 자메이카, 쿠바 등에서도 감지됐다.

아리엘 앙리 아이티 총리는 지진이 일어난 직후 “희생자를 돕기 위해 정부 자원을 총동원할 것”이라며 한 달간의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지만 조만간 열대성 폭풍이 아이티에 들이닥칠 것이라는 예보가 나와 추가 붕괴나 구조 차질 등도 우려되고 있다. 미국 국립허리케인센터(NHC)는 대서양 열대성 폭풍 그레이스가 16일 밤에서 17일 사이 아이티를 지날 것으로 예측했다.

강진 이후 규모 4~5의 여진도 10여차례 이어졌다. 아이티의 토목공학자 클로드 프레페티는 여진이 계속되면 지진으로 손상된 건물들이 아예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부상자 치료와 복구 작업에도 난항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레미의 한 병원 관계자는 “의료장비가 부족한 상황이며, 병원에 부상자들이 넘쳐나 야외에 텐트를 설치했다”고 CNN에 말했다. 아이티 당국은 도로 연결망이 끊겨 최대 피해 지역인 제레미와 레카예 사이 통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으로 인구의 약 60%가 빈곤층인 것으로 추산되는 아이티의 경제적 손실도 막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USGS는 이번 지진으로 아이티가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3%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달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암살 사건이 일어난 아이티에 사회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장-위켄스 메론 월드비전 아이티 대변인은 “대통령 암살 이후 악화된 정치적 교착 상태, 코로나19 대유행, 식량 불안정 등 국가 위기에 또 하나의 위기가 더해졌다”고 말했다. 미국, 아르헨티나, 칠레 등 국제사회는 부상자 치료와 복구를 위해 아이티에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아이티는 ‘불의 고리’라고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있어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2010년 규모 7.0의 강진으로 약 30만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졌으며, 2018년에도 규모 5.9의 지진으로 12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다만 2010년 지진은 인구 밀도가 높은 포르토프랭스 인근에서 발생한 반면, 이번 지진의 진원지 부근은 상대적으로 인구 밀도가 낮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