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 최저, 임금인상, 노조설립···코로나 탈출하며 변화의 바람 맞는 미국 노동시장

노정연 기자
4월 1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샤움버그의 한 레스토랑에 ‘지금 고용중’이라는 고용 안내판이 표시되어 있다. 미국이 코로나19 회복기를 맞으며 고용주들은 늘어난 접객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일자리를 늘리고 있다. AP연합뉴스

4월 1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샤움버그의 한 레스토랑에 ‘지금 고용중’이라는 고용 안내판이 표시되어 있다. 미국이 코로나19 회복기를 맞으며 고용주들은 늘어난 접객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일자리를 늘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코로나19 회복기를 맞은 미국 노동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노동력 부족 현상으로 실업률이 반세기만에 최저를 찍는 등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고용시장이 형성되면서다. 기업들은 직원을 고용하기 위해 임금을 큰 폭으로 올리고, 노동자들의 입김이 세지며 노조설립도 확산되고 있다.

이달 초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3월 마지막주 미국의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16만6000건으로 1968년 11월(16만7000건) 이후 53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 내 고용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최근 11주 중 10주 동안 20만건 미만을 기록하며 코로나19 이전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이처럼 낮아진 것은 코로나 회복세로 미국 내 일자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고용주들은 올해 3월까지 월 평균 60만개에 가까운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늘어난 일자리와 함께 실업률도 하락했다. 지난 3월 미국의 실업률은 3.6%로 떨어져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에 2020년 2월 기록한 50년 만의 최저치(3.5%)에 육박했다. 미국의 실업율은 2020년 4월에 14.7%까지 급상승했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플레이션이 40년 만에 최악 수준으로 악화한 가운데서도 미국의 고용시장이 활황 국면을 맞으며 ‘완전고용’에 근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완전고용은 일자리를 찾는 사람과 일자리의 숫자가 비슷해 누구나 원하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이다.

아마존 사상 첫 노동조합 설립을 이뤄낸 크리스천 스몰스(가운데)가 지난 1일(현지시간) 노조 설립 투표가 가결된 직후 뉴욕시 브루클린의 노동관계위원회(NLBM)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마존 사상 첫 노동조합 설립을 이뤄낸 크리스천 스몰스(가운데)가 지난 1일(현지시간) 노조 설립 투표가 가결된 직후 뉴욕시 브루클린의 노동관계위원회(NLBM)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넘게 침체됐던 미국 고용 시장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면서 미국 기업들은 직원 구하기에 비상이 걸렸다. 줄었던 일자리가 다시 늘어나며 노동 수요는 높아졌지만 코로나19와 긴 거리두기의 후유증으로 근로자의 상당수가 직장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폐업과 일시 해고 등이 급증하면서 2020년 3월과 4월 두 달간 미국의 경제활동인구(취업자 및 구직활동을 하는 실업자)는 820만명 이상 급감했다. 이후 일터로 복귀하는 미국인이 늘며 지난달 미국의 경제활동인구는 1억6440만여명까지 불어났지만 여전히 코로나 이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하려는 사람보다 고용하려는 사람이 많은 ‘노동자 우위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지난 1981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파업 중인 항공관제사를 해고하고 대체 인력을 고용한 이후 사용자 우위로 돌아선 미국 노동시장이 중요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구인난은 광범위한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신규 인력을 채용하고 기존 직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 등 각종 ‘유인책’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미국 취업사이트 집리크루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 6개월간 직장을 옮긴 미국 이직자의 절반 가까이가 두자릿수 대 인상률로 임금 올려 받았다. 특히 방역조치가 완화된 이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레저와 접객 등 서비스 부문은 최악의 인력 부족에 직면하며 경쟁적으로 임금을 인상하고 있다. 미 경제전문매체는 마켓워치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더 높은 급여, 더 나은 혜택 또는 재택 근무와 같은 유연성을 찾아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뉴욕주 버팔로 내 스타벅스 매장 근로자들이 지난해 12월 9일(현지시간) 노동조합 결성 찬반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팔짝팔짝 뛰며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뉴욕주 버팔로 내 스타벅스 매장 근로자들이 지난해 12월 9일(현지시간) 노동조합 결성 찬반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팔짝팔짝 뛰며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노동자 우위 시장이 형성되며 1980년대 이후 오랜 침체에 빠졌던 미국의 노동조합 설립도 힘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50년 무노조 경영을 깨고 노조를 결성한 스타벅스와 이달 초 첫 노조가 탄생한 아마존 등 대기업을 비롯해 애플과 블리자드 등 IT기업의 직원들도 노조 설립을 추진 중이다. 스타벅스는 200여개 매장으로 노조 설립 추진이 확대되고 있고 애플 직원들도 역사상 첫 노조 설립을 위해 서명을 진행 중이다. 노동자의 입김이 세지며 파업으로 임금 인상이나 복지 확대 등 근로조건 개선을 따내는 사례도 늘고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기존 임금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만큼 오른 물가도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및 노조 결성 움직임의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대비 8.5% 상승해 1981년 12월 이후 40여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이같은 미국의 노동시장 활황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미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 예고로 일각에서 경기침체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강력한 노동시장이 금리인상에 따른 경기 충격을 상당 부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동시에 기업들이 늘어난 임금 비용을 상품과 서비스 가격 인상에 반영해 인플레이션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탈출 국면을 맞으며 노동자들이 더 이상 손해 보는 합의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CNN은 “취업자들이 고용주를 상대로 협상력에서 우위에 서는 추세가 관찰되는 등 미국 노동시장의 역학이 변하고 있다”며 “이들의 요구는 단순히 일자리 유지나 임금 인상 요구에 머물지 않고, 가족과 지내는 시간 확보 등 ‘삶의 질’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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