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 수백킬로미터 원정수술” 50년 후퇴한 미국 여성의 삶

노정연 기자

일부 주 즉각 불법화에 수술 취소·지원단체 문의 ‘빗발’

저임금 여성 노동자 직격탄…고용시장·경제 영향 가능성

<b>“내 몸은 내가 선택”</b> 미국 조지아주의 애틀랜타 제9순회항소법원 앞에서 25일(현지시간) 미 연방대법원의 임신중단권 폐기 판결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내 몸은 내가 선택한다”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드러눕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애틀랜타 | EPA연합뉴스

“내 몸은 내가 선택” 미국 조지아주의 애틀랜타 제9순회항소법원 앞에서 25일(현지시간) 미 연방대법원의 임신중단권 폐기 판결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내 몸은 내가 선택한다”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드러눕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애틀랜타 | EPA연합뉴스

미 연방대법원이 24일(현지시간)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보호해 온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해 임신중단과 관련한 미국 여성들의 삶은 1970년대로 후퇴하게 됐다. 원정시술과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단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국 노동시장과 경제 상황에 또 다른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 대법원의 판결 이후 임신중단 수술을 진행했던 병원들이 기소를 우려해 예정된 수술을 취소하고 있으며, 일부 여성들은 서둘러 원정시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아칸소주에 위치한 한 병원은 24일 17건의 임신중단 수술이 예정돼 있었지만 단 1건도 진행되지 않았다. 아칸소주는 대법원 판결과 동시에 자동으로 임신중단을 불법화하는 ‘트리거(방아쇠)’ 조항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옐로해머기금의 로리 버트램 로버츠 전무이사는 “혼란과 함께 전화 문의가 폭발하고 있다”며 “임신중단을 위해 다른 주를 방문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신중단을 예정하고 있던 미국 여성들이 임신중단 시술이 금지된 주에서 다른 주로 이동하는 현상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NYT는 이달 초 미국의 거의 모든 여성이 임신중단 클리닉과 차로 몇 시간 이내 거리에 살았지만 조만간 각 주의 관련 법제화 작업이 완료될 때쯤 가임기 미국인 여성의 4분의 1이 합법 임신중단 시술을 받기 위해 322㎞ 이상을 여행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신중단권을 옹호하는 연구기관인 구트마허연구소는 대법원의 기존 판례가 무효화할 경우 여성들이 임신중단 시술이 허용된 주를 찾아 최장 867㎞까지 이동해야 한다고 집계한 바 있다.

특히 저임금 여성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복지 혜택이 적은 저임금 근로자는 고용주로부터 임신중단을 위한 이동 비용과 현지에서의 경비 등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연구소(EPI)는 24일 발표한 성명에서 “임신중단 시술을 할 수 없는 주에 근무하는 저임금, 저숙련 노동자들이 즉각적으로 경제적 피해를 볼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전문가들은 임신중단권 후퇴로 미국 여성들의 의료기관 방문 기회와 검진 빈도가 줄어들며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단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면서 임신중단에 사용되는 약물 규제도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2000년 ‘RU 486’으로 알려진 알약으로 임신 유지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차단하는 미페프리스톤을 승인했다. 하지만 일부 주에서는 이번 판결 이전에도 이 알약에 대한 접근을 제한해왔다. 대법원의 판결과 함께 주정부들이 해당 약물 금지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가 일부 주정부의 미페프리스톤 구매 금지 강화를 막는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여성들의 임신중단권 박탈로 미국의 고용시장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나오기 3년 전인 1970년 미국 여성의 노동 참여 비율은 37.5%였다. 현재 미국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50%에 달한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임신중단권 보장으로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늘어났고, 졸업 후에 더 나은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며 임신중단권이 박탈되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여성 숫자가 늘어나고 이들을 지원하는 정부 예산도 증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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