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단권 무력화’ 판결로 들끓는 미국

김유진 기자

연방대법원 보수 대법관들 주도

50년 된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피임·동성혼 판례도 뒤집힐 우려

미 전역 찬반 시위 불붙으며 ‘몸살’

<b>여성의 자유 막아선 공권력</b> 25일(현지시간) 미 연방대법원의 임신중단권 폐기 판결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로스앤젤레스의 고속도로 진입을 시도하던 중 앞을 막아선 경찰에게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의 판결 후 미 전역에서 찬반 집회 행렬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애리조나주에서는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며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는 등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세계 각국 정상들도 잇달아 성명을 내고 “역사적 퇴행”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로스앤젤레스 | AP연합뉴스

여성의 자유 막아선 공권력 25일(현지시간) 미 연방대법원의 임신중단권 폐기 판결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로스앤젤레스의 고속도로 진입을 시도하던 중 앞을 막아선 경찰에게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의 판결 후 미 전역에서 찬반 집회 행렬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애리조나주에서는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며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는 등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세계 각국 정상들도 잇달아 성명을 내고 “역사적 퇴행”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로스앤젤레스 | AP연합뉴스

보수 우위 구도의 미 연방대법원이 반세기 동안 임신중단권을 헌법적 권리로 인정해온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으면서 미국 사회가 격렬한 갈등의 소용돌이에 빨려들고 있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마자 일부 주(州)는 임신중단을 즉각 불법화했고, 미 전역에서 찬반 시위가 불붙었다. 보수 성향 대법관이 피임, 동성혼 등에 대한 판례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별도의견을 내면서, 기존 판례로 확립된 다른 권리들까지 뒤집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연방대법원은 24일(현지시간) 대법관 9명 중 5명의 다수의견으로 1973년 이래 유지된 ‘로 대 웨이드’ 사건 판례를 폐기했다. ‘로 대 웨이드’는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가 사생활 보호(수정헌법 14조)에 해당한다고 인정, 임신 22~24주까지 임신중단을 보장하는 근거가 됐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미시시피주의 15주 이후 임신중단 금지 법률에 대해 심리한 이번 ‘돕스 대 잭슨 여성보건기구’ 판결에서 미시시피주 법률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물론, 50년 동안 연방 차원에서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보장해온 기념비적인 판결까지 무력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3명의 대법관을 연달아 임명할 때부터 예견된 대법원 보수화의 결정타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수의견을 작성한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임신중단권은 헌법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며, 임신중단 허용·제한 여부는 각 주가 자체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소수의견에서 “슬픔 속에 기본적인 헌법의 보호를 상실한 수백만 미국 여성들을 위해 반대한다”며 “법원이 50년 동안 여성이 갖고 있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양심적이고 중립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보수 성향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는 지지하지 않은 채, 미시시피주 법률이 위헌이 아니라는 데서는 다른 보수 성향 대법관들과 의견을 같이했다.

연방대법원 판결 후 대법원의 기존 판례 폐기 시 자동으로 임신중단을 불법화하는 ‘트리거 조항’을 둔 미국 13개 주에선 곧장 임신중단 금지 조치가 실행됐다. 이들 주에 위치한 임신중단 클리닉은 아예 문을 닫았고, 예정됐던 수술도 판결 이후 취소하면서 환자들이 충격에 휩싸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향후 50개 주 가운데 26개 주가 임신중단을 사실상 금하고, 가임기 미국인 여성의 절반이 넘는 3600만명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임신 문제 전문 연구기관 구트마허연구소는 예상했다.

바이든 “미국을 150년 전으로 되돌려”…11월 중간선거 최대 쟁점 부상

이에 맞서 미네소타, 워싱턴 등의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은 다른 주에서 임신중단 수술을 받은 환자나 의료진 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발동하기로 했다.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등은 주 헌법에 임신중단권을 명시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구글 등 기업들은 물론 국무부, 국방부 등도 직원들의 임신중단권 보장을 위해 힘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방대법원 청사가 있는 워싱턴을 비롯해 미국 주요 도시에서는 이틀째 시위가 이어졌다. 판결에 항의하는 시민들은 “내 몸이고 내 선택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임신중단권 보장을 촉구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생명 존중을 이유로 임신중단 금지를 주장하는 보수진영이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현실을 꼬집는 “내 자궁보다 총이 더 많은 권리를 갖고 있다”는 구호도 나왔다.

이번 판결로 연방대법원의 보수 쏠림 구도가 확실해지면서 피임, 동성혼 등 여타 인권의 후퇴로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보수 성향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보충의견에서 “앞으로 그리스월드, 로런스, 오버게펠 등 대법원의 실질적 적법 절차를 거친 모든 판례를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각각 피임, 동성혼, 동성 성관계 등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다.

임신중단권 보장 문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도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이번 판결에 대한 비판 여론 고조를 계기로 진보 및 중도 성향 지지층을 대거 결집하겠다는 포석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올가을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투표장에 서게 된다”며 민주당 지지를 호소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판결에 대해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며 “국가와 법원에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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