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점령으로 속내 복잡해진 이웃국가 파키스탄·인도·이란

김윤나영 기자
아프가니스탄 주변국 지도. 구글 지도 화면 갈무리

아프가니스탄 주변국 지도. 구글 지도 화면 갈무리

탈레반의 귀환으로 아프가니스탄 주변국 파키스탄, 인도, 이란의 속내가 복잡해졌다. 세 국가는 그간 탈레반 또는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간 정부와 전략적으로 제휴해왔지만, 탈레반 집권이 자국 내 난민 유입이나 테러 피해로 돌아올까 걱정하고 있다. 미국이 떠난 아프간엔 중국이 끼어들면서 아시아 지역 역학관계도 요동치고 있다.

■희비 엇갈린 파키스탄·인도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아프간 국민이 노예의 족쇄를 깨뜨렸다”면서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환영했다. 파키스탄은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당시 미군에 군사기지를 제공했지만, 국경 분쟁 중인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탈레반을 몰래 지원해왔다고 포린폴리시가 전했다. 파키스탄은 탈레반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아프간 최대 종족인 파슈툰족 다수가 파키스탄에 살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이 탈레반을 지지한 결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탈레반의 동맹단체 파키스탄 탈레반(TPP)의 국내 테러도 덩달아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파키스탄 동부 펀자브주에서 19일 시아파 종교행사 도중 폭탄이 터져 3명 이상이 숨지고 50여명이 다쳤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국경을 넘어오는 아프간 난민도 부담이다. 아리프 알비 파키스탄 대통령은 지난 17일 “테러리스트 유입을 막기 위해 아프간 국경에 울타리를 쳤다”고 밝혔다고 국영 APP통신이 전했다.

반면 파키스탄의 숙적 인도는 탈레반의 귀환이 달갑지 않다. 인도는 지난 20년간 아프간에 30억달러(3조5000억원)를 투자해왔다. 인도 매체 쿼츠 인디아는 18일 인도 정부가 그간 가니 전 아프간 정권과 추진해온 각종 경제 사업을 탈레반이 계속 허용할지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인도는 탈레반과 파키스탄의 관계가 좋아지면 인도를 겨냥한 테러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만 미국의 아프간 철군 결정이 인도에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포린폴리시는 “중국을 파키스탄보다 더 큰 위협으로 보는 인도 입장에서 미국 정부가 중국에 초점을 맞춘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만든 4자 안보협의체 쿼드 회원국인 인도는 탈레반 정권 인정 문제에서도 미국과 보조를 맞출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탈레반을 인정한다면 받아들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탈레반 제재에 동참할 수도 있다.

■물 부족 해결 원하는 이란

이란은 최근 탈레반과 거리를 좁혀오고 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16일 미국의 아프간 철수를 “군사적 패배”라고 평가하면서 “이란은 아프간의 안정 회복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수니파 극단주의를 표방하는 탈레반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적대 관계였다. 이란은 남부 기반의 탈레반이 아니라 북부의 시아파 소수민족들을 지원했고, 이에 반발한 탈레반이 1998년 이란 외교관을 살해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 때문에 이란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후 탈레반보다는 새 아프간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란은 물 분쟁을 겪으면서 가니 전 정부와 사이가 틀어졌다. 아프간 정부는 이란으로 흐르는 남서부 헬만드강 상류에 카말 칸 댐을 세우고 이란에 대한 물 공급량을 통제해왔다. 가니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더는 이란에 공짜 물을 줄 수 없다”면서 물을 더 받고 싶으면 석유를 달라고 요구해 이란이 반발했다. 포린폴리시는 “이란이 탈레반을 지원하는 주된 이유는 국경을 넘어 국가로 흘러드는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란은 아프간 내 소수세력인 시아파를 보호하는 조건으로 탈레반을 도울 수 있다. 게다가 이란은 파키스탄(144만명)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아프간 난민(78만명)을 수용하고 있다. 이란 입장에선 난민 유입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아프간의 안정이 필요하다.

중국 입장에서 탈레반은 독이 든 성배나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미국이 떠난 틈을 노려 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할 수 있지만, 탈레반이 신장위구르의 분리주의 운동 단체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을 지원할까 극도로 경계한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달 톈진에서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만나 ETIM과의 관계 단절을 요구한 이유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8일 이란·이라크 대통령과 잇따라 통화하며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왕이 외교부장도 파키스탄·터키 외교장관과 통화하고 “탈레반은 ETIM을 비롯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분류한 국제 테러조직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글로벌타임스가 전했다. 중국은 탈레반을 “새 정부”로 칭하며 사실상 정상국가로 인정했다. 아프간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길목에 있기도 하다.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이 ETIM과의 관계 단절에 대한 대가로 탈레반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할 수도 있지만, 탈레반을 신뢰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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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아프간 난민 현황. 스태티스타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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