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미래, 절을 찾는 중국 젊은이들

박은하 기자
중국 장쑤성 양저우시의 사찰 대명사. / 경향신문 자료사진

중국 장쑤성 양저우시의 사찰 대명사. /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학생 샤오레이(가명·21)는 정원대보름을 하루 앞둔 지난 2월 23일 베이징의 유명 티베트 불교 사원 옹화궁(雍和宮)을 찾았다. 그는 향을 올리고 향을 태운 재가 담긴 유리팔찌를 사 봉헌하려 했다. 향재유리팔찌는 학업에 행운을 가져다 주는 물건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경내 불교용품점 입장에만 2시간이 걸리자 자신이 갖고 있던 나무팔찌를 봉헌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는 방문객 대부분 자신의 또래였다고 말했다고 홍콩 독립매체 단전매가 1일 전했다.

사원을 찾는 중국 청년들이 늘고 있다. 여행사이트 시트립(ctrip)은 지난 2월 전국의 유명 사찰 입장권 판매량이 전년보다 31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증가분 절반 이상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출생자에서 나왔다고 시트립은 밝혔다. 단전매가 트렌드 분석 기관인 오션엔진을 통해 집계한 결과 올해 1~6월 사찰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280.77% 증가했으며, 검색자 중 18~30세 청년층이 43.6%를 차지했다. 도교 사원 방문객 수도 늘었으며 역시 청년층이 이 같은 추세를 이끌고 있다고 전해진다.

사회주의 영향으로 중국은 종교 인구가 드물지만 전국에 수만개의 불교·도교 사원이 남아 관광지 역할을 하고 있다. 사원은 주로 중장년층 관광객이 선호하는 장소였는데 청년층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것은 최근 들어 나타난 일이다.

청년층은 온라인을 통해 불교나 도교 사원 방문 경험을 적극 공유하고 있다. 사원 방문 동기로는 학업, 취업, 연애 관련 고민이나 불안 등이 대부분이다.

중국 소셜미디어(SNS) 플랫폼 샤오홍슈에는 “절에서 소원을 빌었더니 이뤄졌다” 는 등 종교 경험담이 90만건 넘게 올라와 있다. ‘항저우 영은사에서 학업을, 베이징 옹화궁에서 직장을, 난징 계명사에서 인연을 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찰별로 특화된 소원도 있다. 불교와 도교는 중국의 전통문화 일부로 받아들여져 거부감이 적다고 해석된다.

유명 사찰의 불교용품은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져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서 등에서 재판매된다. 가장 인기있는 옹화궁 팔찌 관련 게시물만 샤오홍슈에서 3만 개가 넘는다. 옹화궁은 지난 6월 향재유리팔찌를 단종시켰는데 중국 매체들은 구매 과열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향을 올리는 행위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는 젊은이들도 있다. 중국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홍콩에서 구직 중인 칭이는 “이력서를 70개 냈는데 답장이 하나도 없다”며 “화가 날 때마다 불교나 도교 사원을 찾아 화를 가라앉힌다. 어떤 신인지는 상관없다”고 단전매에 말했다. 온라인에서 해시태그로 돌아다니는 “출근이냐 진학이냐. 나는 향을 올리러 절에 간다”는 구절은 젊은층의 불안을 상징하는 구절이 됐다.

연구자들은 청년층의 사원행 열풍은 불안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소비라고 보고 있다. 불안의 진원지는 극심한 청년실업이다. 6월 16∼24세 청년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21.3%를 기록했다. 대학 졸업자들이 쏟아지면서 7~8월 수준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위엔창겅 홍콩중문대 교수는 “사원을 방문한다는 것은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을 놓지 않고 여전히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본질적으로 중산층 계급의 유희일 수 있다”고 말했다.

청년층의 사원행 열풍을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신경보는 “신에게 기도할 수 있지만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찰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설을 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사원이 불교용품을 팔아 부를 쌓고 있다고 비판하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달 31일 종교활동 시설에 대한 고삐를 죄는 방침을 발표했다. 중국 국가종교사무국이 발표한 개정 ‘종교활동장소 관리방법’에 따르면 종교활동 시설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의 실천’, ‘종교의 중국화 방향’, ‘독립 자주 원칙’, ‘국가 통일과 민족 단결 수호’, ‘종교의 온건성과 사회 안정’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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