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법원, 원주민 무시한 ‘녹색 식민주의’에 철퇴… 151개 풍력터빈 ‘해체 위기’

박용하 기자
노르웨이 피오르드.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르웨이 피오르드.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르웨이 사법 당국이 원주민의 권리를 무시하며 풍력발전소 건설을 강행한 정부와 발전사들의 행태에 ‘철퇴’를 가했다. 기후 위기 대응이 시급하다 해도 소수 집단의 피해를 외면해선 안된다는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로이터 등 외신들은 11일(현지시간) 노르웨이 대법원이 북부의 토착 부족인 사미족 목축업자들이 로안과 스토헤이아 지역의 풍력발전 터빈 건설과 관련해 제기한 소송에서 사미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고 보도했다.

이들의 갈등은 2010년 노르웨이 정부가 로안과 스토헤이아 지역에 풍력 발전 터빈을 세우려는 발전사들에게 관련 면허를 발급하며 시작됐다. 당시 이 지역의 터빈 건설은 총 13억달러가 투입된 유럽 최대의 육상 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하는 포센 빈드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터빈 건설은 그간 이 지역에서 순록을 키워온 사미족들에겐 위기로 다가왔다. 우뚝 솟은 터빈의 모습과 웅웅거리는 소리로 인해 순록들의 이동이 힘들어지고, 먹이를 먹는데도 제한이 생긴 것이다. 이에 사미족 측은 자신들의 토지와 문화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사미족협의회 관계자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우리가 큰 기여를 한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부담을 지게 됐다”며 “이것은 기후 정의가 아니라 기후 부당함”이라고 토로했다. ‘녹색 식민주의’라는 지적도 나왔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발전사 측이 국제협약에 규정된 원주민의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보고 이들이 얻은 풍력발전 면허와 정부의 토지수용 결정은 무효라고 밝혔다. 유엔은 그간 “원주민의 토지, 영토 및 자원에 대한 집단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그들의 복지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와 같은 시급한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르웨이에서의 이번 판결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취지라 할지라도 토착민의 권리에 앞설 수 없다는 판단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판결로 발전사들과 노르웨이 정부는 곤혹스럽게 됐다. 사미족의 법률 대리인 측은 이번 판결에 따라 로안과 스토헤이아 지역에 있는 151개 풍력 터빈이 해체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발전사들은 우선 정부의 입장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에너지부 측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다시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학계 일각에선 사미족의 이번 사례가 기후 위기 대응에 있어 정당한 전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부각했다고 보고 있다. 기후 위기 대응이 시급하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정 집단의 피해를 외면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신재생 에너지 기업에만 명목적으로 의존할 것이 아니라 수세기 동안 환경을 가꿔온 원주민 공동체들과 함께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Today`s HOT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