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랍 문명의 충돌? 쿠란 소각으로 불거진 갈등 점입가경

손우성 기자

‘신의 말씀’ 쿠란 소각에 이슬람 “용납 못 해”

유럽 극우 세력 “이슬람 자극할 확실한 카드”

표현의 자유 vs 이슬람 모독…가치의 충돌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지난달 7일(현지시간) 이슬람교도들이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쿠란 소각 시위를 허가한 스웨덴 정부를 규탄하며 스웨덴 국기를 태우고 있다. AP연합뉴스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지난달 7일(현지시간) 이슬람교도들이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쿠란 소각 시위를 허가한 스웨덴 정부를 규탄하며 스웨덴 국기를 태우고 있다. AP연합뉴스

쿠란 소각을 둘러싼 유럽과 아랍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최근 잇따라 쿠란 훼손 시위가 발생한 스웨덴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이슬람 극단 세력의 보복을 우려해 테러 위험등급을 3단계에서 4단계로 격상했고, 덴마크도 공항 등 공공장소에서의 무작위 검문을 하는 등 경계 강화에 나섰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안보 위기에 처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쿠란 소각 시위 후폭풍은 거셌다.

외신은 쿠란 소각으로 인한 유럽과 아랍의 갈등이 단순한 종교 분쟁이 아닌 문명과 가치의 충돌이라고 지적한다. 일찌감치 신성모독법을 폐지한 스웨덴과 덴마크 등 서방은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쿠란 소각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반면 아랍권에선 쿠란 훼손을 신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이슬람을 무시하는 행위로 본다. 튀르키예는 한때 쿠란 소각을 빌미로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방해했고, 이라크 정부는 자국 주재 스웨덴 대사를 추방하기에 이르렀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협력기구(OIC)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쿠란 소각에 대응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쿠란이 뭐길래?

이슬람교도들이 쿠란 소각에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쿠란이 곧 ‘신의 말씀(Word of God)’이기 때문이다. 알자지라는 “쿠란은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을 위한 지침이자 법의 원천”이라며 “문자 그대로 신의 말씀으로 존엄과 존경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슬람교도들은 쿠란을 만지기 전 손을 깨끗하게 씻고, 오른손으로 조용히 책장을 넘긴다. 조용한 장소를 찾아 반듯한 자세로 쿠란을 읽어야 한다. 알아라비아 등 아랍권 매체에 따르면 별도의 공간에 쿠란을 보관해 대중서와 철저하게 분리한다. 여기에 632년 이슬람교 창시자이자 예언자인 무함마드가 사망한 이후 약 1400년 동안 원본 그대로 쿠란이 보존돼 왔다고 믿기 때문에 아무리 낡고 해져도 함부로 처분해선 안 된다.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인근 배수구에서 50권 이상의 쿠란 사본이 발견돼 사우디 전역이 충격에 빠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12년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 공군기지에선 일부 병사가 쿠란과 이슬람 종교 서적을 태웠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당시 미국 정부는 “탈레반 죄수들이 책을 이용해 메시지를 주고받아 취한 조치”라면서도 “쿠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부주의한 소각에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인 바 있다.

따라서 이슬람교도들은 최근 유럽에서 발생한 코란 소각은 신성한 경전을 모독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로 여긴다. 알자지라는 “쿠란은 무함마드의 마지막 메시지가 담겨 있는 성서”라며 “무례한 방식으로 쿠란을 모욕하면 이는 이슬람 세계에선 심각한 범죄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라크 출신 살완 모미카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이라크 대사관 앞에서 쿠란과 이라크 국기를 태우기 전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라크 출신 살완 모미카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이라크 대사관 앞에서 쿠란과 이라크 국기를 태우기 전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왜 하필 쿠란을 태우며 시위할까?

그러므로 쿠란 소각은 명백히 이슬람의 분노를 고의로 겨냥한 시위 방식이다. 유로뉴스 등에 따르면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발생한 쿠란 소각 시위는 반이슬람 정서에 기반한다. 쿠란을 불태운 시위자들은 이슬람권 국가들의 여성과 동성애자 탄압,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폐쇄된 사회 등에 대한 항의 표시이며, 이슬람교도들을 분노하게 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 쿠란 소각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서방을 겨냥한 테러도 한몫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활동하는 목사 테리 존스는 2010년 9월 11일 ‘국제 쿠란 소각의 날’ 만들자는 캠페인을 펼쳤다. 이는 2001년 알카에다 수장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한 9·11 테러 9주기를 맞아 계획됐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 “행사가 강행되면 알카에다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경고하는 등 우려가 제기되자 존스는 쿠란 소각을 취소했다.

하지만 존스는 이듬해 플로리다주 게인즈빌에 있는 본인 교회에서 ‘반인도주의 범죄’에 대항한다는 명목으로 모의재판을 열고 끝내 쿠란을 불태웠다. 이에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존스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20명이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AFP통신은 “존스는 자신의 행동이 아프간에서 이런 비극으로 이어질 줄 몰랐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최근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쿠란 소각 시위를 빌미로 스웨덴 나토 가입을 막아서자 이에 대한 반발로 쿠란 소각 등 반이슬람 운동이 전개됐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이슬람교도들이 쿠란 사본을 들어보이며 스웨덴에서 발생한 쿠란 소각 시위를 규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이슬람교도들이 쿠란 사본을 들어보이며 스웨덴에서 발생한 쿠란 소각 시위를 규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가치의 충돌…골치 아픈 유럽

스웨덴과 덴마크는 일단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쿠란 소각 시위 완전 차단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스웨덴은 이미 1970년대 신성모독법을 폐지했고, 덴마크는 2017년 해당 법안을 없앴다. 마티아스 왈스트롬 스웨덴 예테보리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7일 미 시사주간지 타임지에 “특정 인종 증오를 선동하는 행위는 금지할 수 있지만, 현재 지배적인 해석에 따르면 종교에 대한 상징적 공격엔 현행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서구사회에서 이슬람교도에게 사회적으로 각종 ‘낙인’이 찍힌 상황에서 종교 전체를 모욕하기 위한 의도적 공격을 방관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특히 외교 문제로까지 불이 옮겨붙은 만큼 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라크 출신 살완 모미카는 지난 6월 28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의 한 모스크(이슬람 성전) 외곽에서 열린 시위에서 쿠란을 불태운 데 이어 지난달 20일에도 동료 살완 나젬과 함께 쿠란을 짓밟고 소각했다. 이에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선 성난 시위대가 스웨덴 대사관에 난입해 불을 질렀고, 이라크 정부도 자국 주재 스웨덴 대사를 추방하며 맞불을 놨다.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국가 안보와 스웨덴인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법적 분석을 시작했다”며 국가 안보에 명백한 위협이 있을 시 경찰이 쿠란 소각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공질서법 개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교장관도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쿠란 소각 등 선동 행위를 막기 위한 법적 도구를 찾겠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최근 계속된 쿠란 소각으로 이슬람권 국가의 항의 시위가 격화하고 외교적으로 수세에 몰리자 쿠란을 비롯한 종교 상징물을 공개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방안을 고려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극우 성향의 스웨덴민주당이 “이상하고 웃긴 일”이라고 반발하는 등 법안 마련까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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