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사태' 안보리 회의서 케냐 대사는 왜 제국주의 역사를 소환했을까

김유진 기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사태 논의를 위해 소집한 긴급회의에서는 예상대로 미국과 러시아의 각축전이 벌어졌다. 미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분리주의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한 것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력 규탄했고, 러시아는 자국 최고지도자의 결정의 정당성을 강변하며 우크라이나 긴장 고조의 책임을 오히려 서방에 돌렸다.

강대국의 대치 속에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 케냐 대표의 짧은 연설이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마틴 키마니 유엔주재 케냐 대사는 자신의 발언 순서가 되자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 지역의 두 공화국 독립을 승인한 것을 규탄했다. 또 유엔 헌장에 근거해 우크라이나의 주권·영토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자주의는 오늘밤 운명을 다했다”며 유엔의 역할을 촉구했다.

여기까지는 대다수 유엔 회원국들의 발언과 비슷했다. 그런데 키마니 대사는 과거 케냐와 아프리카가 겪은 식민주의 경험을 불러내며 러시아의 행위를 꼬집었다. 케냐 역시 독립과 함께 인위적으로 구획된 국경을 물려받았지만, 무력을 써서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려 하지는 않는다면서다.

키마니 대사의 언급을 두고 “탈식민 시대에 러시아의 움직임이 제기하는 의미를 일깨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해하는 아프리카의 관점을 보여준다” “강대국의 각축장이 된 안보리에서 용기있는 소신 발언” 등의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키마니 대사의 연설 중 관련 대목을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마틴 키마니 주유엔 케냐 대사

마틴 키마니 주유엔 케냐 대사

“케냐, 그리고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들은 제국의 종식과 함께 탄생했다. 우리의 국경은 우리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니다. 우리의 국경은 런던, 파리, 리스본 등 저 멀리 떨어진 식민주의 메트로폴리스에서 만들어졌다. 그들이 갈라놓은 고대의 민족(국가)은 전혀 고려되지 못한 채였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모든 국가의 국경 저편에는 우리와 역사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깊은 유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만약 우리가 독립하면서 종족이나 인종, 종교적 동질성에 기반한 국민국가 수립을 추구했더라면 수십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우리가 물려받은 국경에서 출발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우리는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적, 경제적, 법적 통합을 계속해서 추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위험한 노스탤지어(향수)에 사로잡혀 역사 속으로 뒷걸음질치는 국가를 만들기보다는 이전에 어떤 나라나 국민도 보지 못한 위대함을 향해 나아가기로 선택했다.

우리가 아프리카단결기구(OAU)와 유엔 헌장의 규칙을 따르기로 한 것은 지금의 국경에 만족해서가 아니라, 평화가 구축할 수 있는 더 위대한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제국이 붕괴하거나 후퇴하면서 만들어진 모든 국가 안에는 이웃 나라와 통합하기를 소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는 정상적이고 또 이해할 만한 일이다. 형제와 하나되어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케냐는 그런 소망을 무력을 써서 추구하는 것에 반대한다. 우리는 죽어버린 제국의 자취로부터 완전히 회복해야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지배와 억압에 다시 내몰려서는 안 된다.

케냐는 인종·종족·종교·문화적 요인으로 인한 실지회복주의와 확장주의를 반대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금 이에 반대하고자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1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논의를 위한 긴급회의를 열고 있다. AP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1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논의를 위한 긴급회의를 열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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