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시티 시가전 초읽기…이, 사방에서 포위망 좁히며 진군

김서영 기자

남에서 북, 북에서 남으로
대규모 장갑차 등 이동 확인

가자시티 남은 주민 20만명
절반이 10개 병원에 흩어져
병원들이 ‘최전선’ 될 우려

이스라엘군이 적어도 세 방향에서 가자지구에 침투해 최대 도시 가자시티를 포위하고 있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시가전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마스의 땅굴을 경계하며 천천히 나아가고 있지만, 가자시티 시가전은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가자시티에는 피란가지 못한 20만명 이상의 민간인과 부상자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자지구 지상전 4일차를 맞은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와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쪽의 에레즈 교차로 양옆의 모퉁이로 동시진입해 북에서 남으로 밀고 내려가고 있다. 또 가자지구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와 남에서 북으로도 진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사진·영상, 현지 목격담, 위성사진으로 확인한 탱크 바퀴 자국 등을 토대로 한 추정에 근거한 것이다.

에레즈 교차로 동쪽 경로로 진입할 당시에는 이스라엘군과 하마스 대원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으며, 가자시티로 향하는 경로에 있는 도시인 베이트하눈 인근에서 이스라엘 장갑차들이 목격되기도 했다. 에레즈 교차로 서쪽 경로에서도 대규모 장갑차와 탱크의 이동이 확인됐다. 이 방향으로 계속 진격하면 가자시티에서 인구밀집도가 가장 높은 구역 중 하나인 샤티 난민촌이 나온다. 가자시티 이남의 살라 알딘 도로에서 이스라엘 탱크가 발견됐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이 도로는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동맥으로, 이를 끊으면 가자지구는 위아래 둘로 쪼개진다. 미 싱크탱크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의 마이클 나이츠 연구원은 이스라엘군이 이 요충지를 확보함으로써 “하마스의 재보급을 방지하고 민간인을 남쪽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b>잔해 더미서 구조되는 생후 8개월 된 아이</b>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 사는 생후 8개월 된 아이가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집 잔해 더미에서 구조되고 있다. UPI연합뉴스

잔해 더미서 구조되는 생후 8개월 된 아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 사는 생후 8개월 된 아이가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집 잔해 더미에서 구조되고 있다. UPI연합뉴스

하마스의 핵심 자원이 집중된 가자시티를 현재 동서남북에서 사각형으로 에워싸고 있는 이스라엘군이 이대로 포위망을 좁히며 진격할 경우 가자시티 시가전 발생은 시간문제다. 가자시티 시가전의 규모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시가전으로 꼽히는 이라크 모술 전투(2016~2017년)를 능가하리란 전망이 나온다. 모술 전투는 미국 주도 연합군이 이슬람국가(IS)를 소탕하기 위해 벌인 작전으로, 9개월 동안 이어졌다. 모술에는 고층 건물이 별로 없었고, IS의 전투 준비 기간도 약 2년에 불과했다. 반면 가자시티에는 6층 이상 건물이 약 60개 있으며, 15년 동안 하마스가 준비해온 길이 약 500㎞에 달하는 땅굴이 있다.

시가전은 대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가자시티에는 20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자시티의 인구는 전쟁 전 약 65만명에 달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듭된 경고에도 남쪽으로 떠나지 못하고 주로 유엔이 운영하는 학교나 병원에 대피 중이다. 가자지구 북부 10개 병원에는 민간인 약 11만7000명이 대피하고 있다. 유엔은 알시파 병원에 5만여명, 알쿠드스 병원에 1만4000여명이 몰려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알시파 병원 지하에 하마스의 지휘통제소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시가전이 벌어질 경우 가자시티 내 병원들이 ‘최전선’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경우 생명유지장치를 달고 있는 중환자 및 민간인들의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시티 내 주요 병원들을 ‘작전 지역’으로 규정해 본격적인 지상작전에 돌입한 지난 27일부터 알시파 병원, 알쿠드스 병원, 인도네시아 병원 등 주요 병원 주변 지역에 대대적인 공습을 퍼붓고 있다. 병원 부지에 모여 있던 피란민들은 거듭된 폭격으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병원은 국제인도법상 전쟁 중에도 공격이 금지돼 있어 그나마 안전한 곳으로 여겨진다. 국제인도법의 대원칙인 제네바 협약에 따라 병원을 공격하는 행위는 곧 ‘전쟁범죄’로 간주된다. 다만 병원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경우에 한해서는 보호 대상에서 예외가 된다. 이스라엘군이 수차례 병원들에 대피를 경고해온 것도 전쟁범죄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인다. 야코프 아미드로르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민간인 사상자 발생에 대한 민감성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력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직접 폭격할 가능성은 낮다”면서 “지상군이 병원을 포위한 채 하마스 압박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의 진격 속도는 과거 가자지구에서 벌인 군사작전에 비해 느리다는 평이 나온다. 인질의 안전과 자국군 사상자 최소화를 고려해 장기전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한 전직 이스라엘군 사령관은 “천천히 이동하면 군의 측면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2014년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땅굴 제거 임무를 지휘했던 벤 밀치는 “이스라엘군은 매복과 기습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 땅굴을 제거하느라 체계적으로 느리게 진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에 “휴전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30일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전쟁의 시간이다. 휴전 요구는 하마스에, 테러에, 야만에 항복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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