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 연기, 전술핵 재배치 없다" 펜스 미국 부통령, 주목되는 '태평양 메시지'

김진호 선임기자
16일 경기도 오산 미국 공군기지를 통해 입국한 마이크 펜스 미국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내린 뒤 헬기편으로 이동하기 위해 걸어가면서 환영객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경기도 오산 미국 공군기지를 통해 입국한 마이크 펜스 미국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내린 뒤 헬기편으로 이동하기 위해 걸어가면서 환영객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사드 배치는 한국 새정부와 의논,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없다”
“사드는 5월 초 대선에서 선출될 한국의 차기 정부와 의논하겠다. 전술핵 배치? 현재 계획에는 없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6일 방한 직전 던진 메시지는 나쁘지 않았다. 중국의 표현을 빌자면 김정은의 북한과 트럼프의 미국이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대치하는 상황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하지만 펜스가 태평양 상공의 전용기에서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을 통해 내놓은 말은 일단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사드)와 전술핵을 둘러싼 불확실성의 일단을 걷어내기에 충분했다. 북한의 4월16일 미사일 발사 시도에 대해서는 “(발사)5초만에 꺼진 좋은 소식”이라고 반기면서도 북한의 6자 핵실험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았다.

통상 주말에 뉴스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미국 CNN방송은 서울시간 이날 오전부터 온종일 북한 관련 뉴스로 도배질을 하고 있다. 김일성 생일을 기리는 태양절(4월15일) 군사 퍼레이드와 뒤이은 미사일 시험발사 시도, 펜스의 방한이 동어반복적인 뉴스꺼리를 제공한 셈이다. 일본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이 펜스의 방한 하루 전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 6만여명에 달하는 한국 내 일본인의 대피계획을 거듭 떠벌였다. 5천만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청와대 안보 담당 고위당국자들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자 이번에도 지하 벙커로 내려갔지만 이웃국가 국민의 불안감을 부채질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보이는 ‘충동적 모호성’이 한반도를 각국 매체의 뉴스 꺼리로, 자국민 대피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호들갑 대상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던 형국이었다. 펜스가 방한 전 태평양 상공에서 내놓은 메시지가 반갑게 다가오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이 한·미 연례 키리졸브 합훈 기간이던 지난 3월 중순 사드 체계의 핵심인 X-밴드 레이더(AN/TPY-2)와 발사대를 들여오자 곧장 가동할 것을 장담했지만, 미국은 이후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아왔다. 애시당초 차기 정부와 협의할 것을 염두에 두었다는 말이다.

펜스 부통령의 이번 방한이 각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 이후 진행해온 대북정책 재검토의 일단이 공개될 것이라는 까닭에서였다. 트럼프의 백악관 집무실 탁자위에 올려놓았다는 ‘모든 선택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에 우선순위가 있는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안보 불확실성의 일단을 걷어낸 ‘태평양 기내 메시지’

최근 시리아 폭격과 북대서양동맹기구(나토) 중시 발언 등을 통해 외교안보정책이 정상으로 U턴한 것으로 전해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말수를 줄이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도와 관련해 미국 국방부가 15일(현지시간) “대통령과 국방팀은 북한의 가장 최근 미사일 발사 실패를 알고 있다. 대통령은 더이상 말이 없었다”는 짤막한 성명을 내놓는 데 그쳤다. 지난 4월5일 북한이 미·중 정상회담 직전 동해상으로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내놓은 “북한이 또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은 북한에 충분히 말했다. 더이상 할말이 없다”는 세문장에서 다시 줄었다. 이번엔 두문장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적응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모종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남기던 차였다. 부통령 전용기 기내에서 익명의 백악관 외교정책 보좌관은 전술핵 재배치와 관련해 “(1991년) 한반도에서 핵탄두를 빼내갈 때 엄청난 노력을 했어야 했다. 해서, 현재 계획에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황교안 대행체제가 북한의 위협에 따른 대책으로 강조해온 사드 즉각 배치에도 제동을 걸었다. 배치 완료 시점은 새정부가 들어선 이후 몇주 몇달이 걸려서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7일 플로리다 마라라고 휴양지에서 있었던 미·중 정상회담의 합의내용도 일부 공개했다. “중국이 이미 합의에 따른 대북 압박 초기 조치를 몇가지 취했고 앞으로도 몇가지를 진행할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사드 배치 연기 및 대북압박이라는 구도에서 합의사항이 이행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양제츠 외교 담당 국무위원과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이날 전화 통화를 하고 한반도 상황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미뤄 펜스의 방한과 맞물려 미·중이 활발하게 조율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4월16일부터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순방에 나서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서울에서 풀어놓을 보따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27일 백악관 아이젠하워 건물에서 연설하고 하고 있는 모습이다.   워싱턴/AP연합뉴스

4월16일부터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순방에 나서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서울에서 풀어놓을 보따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27일 백악관 아이젠하워 건물에서 연설하고 하고 있는 모습이다. 워싱턴/AP연합뉴스

펜스가 내놓을 보따리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선 그동안 북한에 대한 ‘모든 선택지’와 관련해 미국 고위당국자들의 발언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취임후 첫 해외 방문국가로 한국을 택했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지난 2월 2일 미국의 방위공약을 거듭 확인하면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의 수를 두 가지로 명시했다.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공격(Any attack)’ 또는 ‘핵무기의 사용(Any use)’이 두가지 전제였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한달 보름쯤 지나 역시 서울에서 ‘모든 선택지’를 여러가지 표현으로 내놓았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포괄적인 능력의 개발’ ‘완전히 다른 방법’ ‘(대화가 아닌)다른 형태의 노력들’ ‘더 많은 횟수의 행동을 동반한 몇개의 조치들’ 등이 그것이다. 그사이 미·중 정상회담이 있었고, 트럼프도 전통적인 공화당 외교안보정책으로 U턴했다고 들린다. 이제 펜스의 보따리에 담겼을 보다 구체화된 내용들이 관심의 대상이다. 매티스의 서울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 초입에, 틸러슨의 서울 발언은 마무리 단계에 나왔다. 펜스의 ‘태평양 메시지’로 사드 배치 일정 조정과 전술핵 배치 계획이 없다는 사실이 일단 추가 됐다.

■17일 오후 한·미 공동발표문에 쏠리는 시선
펜스의 방한 일정을 보면, 월요일인 17일 오후 1시45분부터 75분 동안 점심을 먹으면서 하는 업무오찬이 주목된다. 그 끝에 오후 3시쯤 공동발표문을 내놓는다고 한다. 미국의 대 한국 방위공약 재확인과, 사드 배치의 정당성 및 일정 연기, 북한의 태도 변화 촉구 등 익히 예상되는 내용 외에 발표문에 무엇이 담길 것인가가 여전히 초미의 관심사이다.

미국 국방부의 DOD뉴스는 14일(현지시간) 펜스의 방한과 관련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NSC는 이미 군사적 선택지들을 검토하고 있지만,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과 마주앉아 논의할 것”이라고 말한 바, 펜스가 브룩스 사령관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지도 관심사다. 물론 대화내용을 한국의 ‘대행 정부’에 소상하게 전달할 가능성은 없다.

김일성 생일인 4월15일 태양절을 맞아 평양시내에서 벌어진 군사퍼레이드에서 두 기의 미사일 또는 미사일 발사대가 선을 보이고 있다. 발사대가 선을 보이고 있다.  평양/EPA연합뉴스

김일성 생일인 4월15일 태양절을 맞아 평양시내에서 벌어진 군사퍼레이드에서 두 기의 미사일 또는 미사일 발사대가 선을 보이고 있다. 발사대가 선을 보이고 있다. 평양/EPA연합뉴스

그밖에 칼빈슨 항모전단이나 니미츠 항모전단의 한반도 해역 배치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다른 요소들은 잠시 제켜놓아도 좋을 듯하다. 17일부터 중동·아프리카 순방에 나서는 매티스는 1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칼빈슨의 행로변경에 대해 “현시점에서 칼빈슨을 그곳에 두는 것이 가장 신중한 조치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별한 필요가 있다는 신호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가장 중립적인 말일 것이다. 다만, 현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북한의 군사행동(6차핵실험)을 추측하진 않겠지만, 동맹국들과 현 상황을 논의하는 시점에 어느 정도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고 여지를 남겼다. 펜스는 트럼프 행정부 취임 이후 방한한 최고위급 인사다. 한층 완성된 대북정책안도 갖고 왔을 터, 2박3일 동안 더욱 책임 있는 메시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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