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석유회사들, 아프리카에 "쓰레기 더 받아라"

김향미 기자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여 있는 앙골라 해변. Gettyimages/이매진스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여 있는 앙골라 해변. Gettyimages/이매진스

미국화학협회(ACC)의 국제무역 담당자인 에드 브르지트바는 지난 4월28일 미국 무역협상대표부에 한 통의 서한을 보냈다. “무역협상을 통해 케냐가 앞으로 아프리카 내 다른 시장에 미국산 화학제품 및 플라스틱을 공급하는 허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여기엔 ‘케냐 등 아프리카가 더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받아줄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돼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과 케냐는 지난 2월 무역협상에 돌입했다. ‘서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미국과 무역협상을 맺는 최초의 국가’.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은 이번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싶어한다. 이를 겨냥해 미국 석유업계, 엄밀히 하자면 화학사들이 전방위적인 로비를 벌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더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떠넘겨질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미국화학협회는 엑손모빌과 셰브론, 셸, 다우 등 미국 석유기업의 화학사를 회원사로 둔 로비 단체다. 이들이 나선 까닭은 석유업계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전 세계가 기후 위기에 대비한 화석연료 퇴출을 고민하고 있고, 코로나19로 인해 원유 수요도 줄어들었다. 공급만 넘쳐나면서 국제유가도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석유 업계는 기후 정책에 대비해 이미 원유 생산·판매에서 화학제품 및 플라스틱 생산으로의 전환을 시도해왔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 석유업계는 화학제품 생산에 2000억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플라스틱 과잉 소비국’인 데다 또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환경 규제로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도 쉽지 않은 상황. 환경 운동가들은 미국 화학사들이 이러한 문제들의 해법을 아프리카에서 찾으려 한다고 지적한다.

2019년 미국 수출업자들은 케냐를 포함한 96개국에 4억5300만kg에 달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내보냈다. 표면적으로는 ‘재활용’이었으나, 일부 폐기물은 그대로 바다나 강에 버려졌다. 중국이 2018년부터 플라스틱 쓰레기 등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면서 지난해 아프리카로 향하는 플라스틱 폐기물량은 전년 대비 4배 가량 늘었다. 미국 화학사들은 지난해 ‘플라스틱 쓰레기 종식 연맹’을 만들어 재활용 인프라 조성을 위해 15억달러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화학제품·플라스틱 생산을 위한 투자에 비하면 매우 적은 액수다.

미 화학사들이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을 지원한다는 미명 아래, 아프리카로 플라스틱 폐기물을 더 많이 보내려고 하고 있다. 미국 무역협상대표부가 미국화학협회의 제안을 받아들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종종 업계 로비가 무역협상에 반영됐던 만큼, 환경단체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케냐는 2017년부터 플라스틱 비닐 봉지 사용을 금지했다. 비닐봉지를 쓰다 걸리면 최대 4만달러(약 4700만원)의 벌금 또는 최대 4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 환경 규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나이로비에 있는 한 환경단체의 그리핀 오치엥은 “미국화학협회의 플라스틱 거래 제안은 케냐에 더 많은 플라스틱과 화학물질이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케냐 몸바사에 있는 시민단체의 다니엘 마이나는 “케냐가 코로나19의 영향을 느끼기 시작한 때 무역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그들이 무역협상을 통해 강요한다면 우리는 쉬운 먹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린피스 언어스드도 같은날 “미 화학사들을 대표하는 로비 그룹이 대유행 기간 동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미국·케냐 무역협상을 이용해 아프리카 전역의 플라스틱 및 화학 산업을 확장하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이지리아 아비아 주립대 환경화학 부교수인 인노런티 노롬 박사는 그린피스 언어스드에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나라에는 늘어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관리하기 위한 재활용 인프라가 없다”며 “케냐뿐만 아니라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로 무역협상을 통한 플라스틱 거래가 확산하는 것을 아프리카연합과 그 회원국들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플라스틱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막는 취지의 바젤 협약 개정에 180개국이 합의했다. 미국은 비준하지 않았다. 바젤 협약에 따라 장벽이 높아진 탓에 미 화학업계가 플라스틱 시장을 살리고 플라스틱 폐기물의 새로운 목적지를 찾기 위해 개별 국가, 저소득 국가들을 목표로 삼았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나이로비에 있는 환경 정의 및 개발 센터의 도로시 오티에노는 이렇게 말했다. “케냐가 플라스틱 쓰레기 처리장이 될까 우려됩니다. 케냐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가 말입니다.”

미 석유회사들의 경찰 후원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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