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쇼어링'만이 답이 아니다”…공급 부족으로 촉발된 자국 내 생산

코로나19로 인해 제품 생산은 부진한데 그동안 억눌린 소비 수요가 폭발하며 전 세계 공급망에 차질이 생겼다. 이로 인해 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로 분산시켰던 생산기지를 본국이나 인근 국가로 옮기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현지시간) 다국적 대기업들이 공급 부족 문제로 세계 곳곳에 분산시켜 놓았던 공급망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로 생산 및 유통에 차질이 생기면서 약해진 공급망에 대한 통제력을 다시 강화하려는 것이다.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항구에 쌓여있는 해상 컨테이너들. | 로이터연합뉴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베네통은 지난 9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터키, 튀니지, 이집트 등 지중해 인근 국가에서 생산시설을 확충했으며, 2022년 말까지 아시아 내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일 계획이다. 이는 수십 년간 저렴한 아시아 지역 공장들에 의존해오던 의류업계의 관행을 뒤집은 것이다. 베네통 역시 제품의 58%를 아시아에서 생산해왔다.

베네통 최고경영자(CEO) 마시모 리논은 “라오스, 캄보디아, 중국, 태국 등지에 있는 생산업체들을 사용하면 비용은 저렴하지만 공장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품질을 확인해야 했고 생산 시기 등 일부 측면에 대한 통제권이 없었다”고 인근 국가로 생산시설을 옮긴 ‘니어쇼어링’ 전략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국내 제조기반을 강화하는 ‘온쇼어링’을 택한 기업들도 있다. 미국 철강업체 마제스틱 스틸은 공급망 혼란에 영향을 덜 받기 위해 미 서부 해안에서의 입지를 넓히고 오하이오, 네바다, 플로리다, 텍사스주에 생산기지를 세웠다. 이 외에도 납품업체와의 물리적 거리를 줄이기 위해 주요 납품업체인 뉴코어의 공장 부지에 생산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칵테일 기계를 만드는 스타트업 기업인 바테시안은 지난해 중국에 제조시설을 지으려던 계획을 폐기하고 시카고 외곽지역에 시설을 짓기로 했다. 해외 납품업체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방지하자는 판단에서다.

코로나19 이후 인력 부족으로 서비스 공급에도 차질이 생기자 기업들은 계약업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고용에 나서기도 했다. 미국 델타항공은 코로나19 대확산 기간에 도급업체를 통해 기내 청소 등을 담당할 인력을 못 구하게 되자 수천명의 근로자들을 자체 고용했다. 델타항공 CEO 에드 배스천은 “도급업체를 기다릴 수 없어 자체적으로 인력을 구했고 이를 돌이킬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저렴한 해외 생산시설·도급업체에 외주를 맡기는 ‘오프쇼어링’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한 것은 비용 절감보다 생산의 신뢰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라고 WSJ는 분석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심각해진 공급 문제는 이런 움직임은 가속화했다. 코로나19 이후 원자재 확보부터 해상 운송까지 생산 전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 와중에 위축됐던 소비 수요가 폭발하면서 공급망 혼란이 심각해진 것이다. 기업 입장에선 리스크 관리 중심의 경영을 새롭게 고려할만한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델 테크놀로지 이사직을 겸하는 엘렌 쿨먼은 “기업들이 공급 부족 등으로 생겨난 불확실한 환경에서 통제력을 강화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WSJ에 설명했다. 그는 또 그동안 유럽이나 아시아 지역의 제조설비에 의존해온 자동차, 의료계 등 다양한 업계들이 앞으로는 자국 내에서의 입지를 굳히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컨설팅기업 커니가 지난 3월 미국 제조업계 임원 1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52%가 코로나19로 전세계 공급망이 붕괴되자 국내 생산량을 늘렸다고 답했다. 47%는 특정 지역에서의 생산이나 단일 공급원에 의존하지 않도록 향후 3년간 공급망을 다양화할 계획이라 밝혔고, 41%는 중국 제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