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 폭동 1년

여전한 사회적 분열과 민주주의 위기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미국 워싱턴 연방의사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습격 당한 사건 1주년을 앞둔 5일(현지시간) 석양을 배경으로 서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미국 워싱턴 연방의사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습격 당한 사건 1주년을 앞둔 5일(현지시간) 석양을 배경으로 서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이것은 반대가 아니고 반란이다.” 2021년 1월6일(현지시간) 1200여명의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선 패배에 불복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당선 인증을 저지하기 위해 연방의사당에 난입해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바이드 대통령 당선자는 시위대의 의사당 점거를 이같이 규정하고 해산을 촉구했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미국 민주주의가 포위됐다”며 우려를 표했다.

미국 민주주의의 심장부가 외적이 아닌 시민들에게 공격당한 1·6 의회 폭동 사태는 미국의 위상과 자존심을 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1년이 흘렀지만 미국은 여전히 충격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3명 중 1명은 바이든 대통령 당선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정치적 분열은 심화되고 있다.

■ 무슨 일이 벌어졌나

지난해 1월6일은 미국 대선 절차가 최종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유권자 투표를 바탕으로 각 주가 실시한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승인하기 위한 연방의회 합동회의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사기가 있었다면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각급 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줄줄이 패소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지지자들은 끓어올랐고 1월6일 워싱턴에서 집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앞 집회에서 “의회로 행진하라” “죽기살기로 싸워라”라고 선동했다. 수천 명의 군중이 백악관에서 2.6㎞ 거리에 있는 의사당으로 몰려갔다. 경찰 저지선이 무너지면서 일부가 유리창을 깨고 의사당 내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1200여명이 의사당에 난입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일부는 트럼프 깃발을 들고 의사당 복도를 활보하는 자신의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과시했다. 대피하지 못한 일부 의원과 직원들은 회의장에 몸을 숨기고 공포에 떨었다. 이 모든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경찰관 1명과 시위대 4명 등 5명이 숨졌다.

■ 추락한 미국 민주주의

주 방위군이 투입돼 사태는 일단락됐고 미국이 사실상 ‘내전’에 돌입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특히 대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핵심 장치인 선거의 신뢰성이 훼손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했다. 세계 각국에 민주주의를 수출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미국은 이제 동맹 및 우방국들로부터 위로를 받는 처지가 됐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수치스러운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위상도 추락했다. 지난해 11월 퓨리서치센터가 공개한 아시아·유럽 17개 선진국 시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민주주의가 타의 모범이 되는 사례라는 응답은 17%에 그쳤다. 57%는 과거엔 좋은 사례였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답했다. 심지어 미국인 응답자의 72%도 미국 민주주의가 모범 사례였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부 간 기구인 ‘민주주의와 선거 지원 국제기구(IDEA)’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1 글로벌 민주주의 상태’ 보고서에서 미국을 ‘민주주의 후퇴국’으로 분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외국 정상들로부터 미국 민주주의는 괜찮은가”라는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 진상 규명 및 처벌 노력

1·6 사태를 수습하려는 노력은 정치권과 수사 당국에서 두 갈래로 진행 중이다. 먼저 민주당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이어 두번째 탄핵 시도였다. 하지만 공화당이 절반을 차지한 상원은 그에게 또 다시 면죄부를 줬다. 이어 민주당은 진상 규명을 통한 정치적 단죄 노력에 돌입했다. 상·하원 합동으로 초당적 위원회를 설치하려는 노력이 공화당 반대로 무산되자 하원에 특별위원회를 꾸렸다. 지난해 7월 출범한 특위는 그간 300여명의 증인을 면담하고 3만5000여건이 넘는 문건을 검토했다. 특위는 11월 중간선거 전에 최종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FBI와 검찰도 가담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700여명이 경찰을 공격, 의회 무단 침입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이중 150여명은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5일 난입 사태 1주년 기자회견에서 그간 발부하거나 발부받은 소환장과 영장이 5000건이 넘는다고 밝혔다. FBI는 2만시간이 넘는 동영상을 입수해 초 단위로 분석하고 있다.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 수사다.

관심은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에 모아진다. 당국은 의사당 난입 가담자 2500명 가량을 연방범죄로 기소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갈런드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사실이 이끄는 곳을 어디든지 따라가겠다”면서 “지금까지 취한 조처가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하원 특위가 법무부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포함해 더 많은 사람에 대한 형사상 기소를 의뢰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1·6 사태 전후로 백악관에서 생산된 자료의 특위 제공을 막고, 증언을 거부하면서 수사에 저항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 기소는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에도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 심화되는 분열과 갈등

1년이 지났지만 미국 사회는 아직 이 사건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다. 미국 주요 언론과 FBI가 시위대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막대한 분량의 동영상과 사진을 공개했지만 상당수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과장되거나 조작됐다고 믿는다. CBS방송과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지난 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월 6일 의회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민주당 지지자 85%는 ‘반란’이라고 답한 반면 공화당 지지자의 56%는 ‘자유 수호’라고 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사기 주장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로 미국인 3명 가운데 1명은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대선 승리는 적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화당 지지자는 10명 중 6명이 그렇게 믿는다. 정치 평론가 시드니 블루먼솔은 “1861년 남북전쟁을 일으켰던 남부 분리주의자들도 링컨이 승리한 대선의 공정성과 적법성은 인정했다”고 말했다. 미국 내 정치적 대립이 남북전쟁 수준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심각한 수준에 이른 선거 제도에 대한 불신은 미국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1·6 사태가 한 번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4년 대선 출마가 실제로 이뤄지면 갈등과 분열은 정점에 달할 가능성이 높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5일 ‘미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한다’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미국이 1·6 사태로 충격을 받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치 양극화에 대처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란 기대가 있었으나 1년이 지났음에도 선거를 부정하고 허위 정보를 퍼트리는 세력은 계속 미국인들이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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