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크림반도 병합 때처럼 돈바스 노리나

박효재 기자

친러 세력 지지 얻고 군대 진출

주민투표로 돈바스 병합할 수도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가운데)이 2019년 8월10일(현지시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 열린 친러 민족주의자 폭주족 단체 ‘나이트 울브스’ 행사에 참석해 오토바이를 몰고 있다. 세바스토폴|AP연합뉴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가운데)이 2019년 8월10일(현지시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 열린 친러 민족주의자 폭주족 단체 ‘나이트 울브스’ 행사에 참석해 오토바이를 몰고 있다. 세바스토폴|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간스크주)의 친러 반군 장악 지역을 독립국으로 승인하고 22일(현지시간) 러시아 군대의 진입 명령을 내린 것은 8년 전 크림반도 병합 당시 수순을 떠올리게 한다. 친러 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돈바스를 분쟁지역화해 러시아의 군사개입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은 크림반도 병합 과정과 닮았다. 러시아가 주민투표 절차를 통해 크림반도를 병합한 것처럼 돈바스를 병합할 가능성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원천 금지 명문화를 두고 서방과 대치해왔다. 그런데 최근 돈바스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친러 반군을 향한 공격이 격화되고 있다며 평화유지를 명분으로 러시아군 진입을 명령한 것이다.

러시아 국영매체들은 최근 연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돈바스 지역 친러 반군을 대상으로 포격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친러 반군은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돈바스 지역 정전을 규정한 민스크협정에 위반되는 대포 등 중화기를 쓰고 있다고 비난한다. 도네츠크주 반군은 전날 정부군이 서방 진영에 속한 불가리아에서 생산된 유탄 발사기를 사용해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루간스크주 반군은 정부군 포격으로 민간인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반군은 앞서 지난 19일 여성, 아동들에 러시아로 주민대피령을 내리고 총동원령을 내리는 등 정부군과 전면전 태세를 갖추고 있다.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은 지난 15일 푸틴 대통령에게 친러 반군이 돈바스에 세운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했다. 푸틴 대통령은 엿새 만인 21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는 러시아의 옛 영토”라고 선포하면서 DPR과 LPR의 독립을 승인했다. 크렘린궁은 다음날 바로 돈바스 지역 평화유지를 위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군 진입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크림반도 병합도 친러 세력들의 우크라이나 분리 독립 움직임이 발단이 됐다. 2013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이었던 크림반도에서는 그해 11월부터 친러 정책을 펼치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규탄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인한 정국 혼란을 틈타 독립 움직임이 고개를 들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 실각 이후 친서방 노선으로 돌아선 우크라이나 정부에 저항하는 시위가 격화됐고, 이에 러시아는 2014년 2월부터 병력을 투입해 주요 시설을 점령했다.

돈바스 인근에서 크림반도 합병 당시 러시아군 선봉에 섰던 의문의 부대 ‘리틀 그린 맨(little green man)’으로 추정되는 군대가 다시 포착되는 등 군사적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리틀 그린 맨’은 녹색 군복에 부대 마크나 휘장, 계급 마크도 달지 않은 러시아 특수부대원을 일컫는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우크라이나 국경으로부터 약 100㎞ 떨어진 러시아 주요 도시 로스토프나도누 인접 고속도로에서 부대 휘장 없는 군용차와 군인들이 다수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는 2014년 크림반도 침공 당시 ‘리틀 그린 맨’을 투입한 적이 없다고 잡아 뗐다가 뒤늦게 사실을 인정했다.

크림반도 병합 때처럼 다음 수순은 주민투표가 될 수도 있다. 2014년 3월11일 크림공화국 자치정부가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결의하자 러시아는 이에 호응해 러시아군을 주둔시켰다. 곧 이어 크림공화국 의회는 러시아 합병을 결의하고 주민투표를 했고, 찬성률이 96%가 나왔다. 국제사회는 당시 치러진 주민투표가 조작됐고 국민투표가 아니라는 점에서 합법성을 부인했지만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크림반도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돈바스 지역 주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자치권 유지와 상관없이 러시아로 합병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어선다고 전했다.

다만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 충돌을 저지하기 위한 외교적인 움직임이 활발한 점은 8년 전과 다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부통령으로 있던 버락 오바마 정부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과정에서 무능한 대응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재대결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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