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기 멈췄다""키예프는 포위됐다"...우크라이나에 침투하는 러시아발 가짜뉴스

김혜리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지난 24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수도 키예프에서 영상을 통해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지난 24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수도 키예프에서 영상을 통해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나는 여기 있다. 우린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단 하나의 진실은,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있는 조국을 지켜내리라는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오전 키예프에 있는 대통령 관저 건물 앞에서 찍은 영상을 게시했다. 러시아 관영매체를 통해 그가 키예프를 버리고 도주했다거나 우크라이나군이 이미 항복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퍼지면서 이를 일축하기 위해 ‘직접 인증’에 나선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인터넷엔 내가 군대에 무기를 내려놓을 것을 명했고 이미 대피 중이라는 거짓 정보가 엄청나게 퍼지고 있지만, 나는 여기에 있다”면서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러시아의 침공이 나흘째 계속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당국은 ‘정보 전쟁’을 실질적인 최전선으로 여기며 대응하고 있다. 러시아가 이전에도 해킹이나 가짜뉴스 유포 등을 통해서 혼란을 부추기고 전쟁의 명분을 세우는 등 정보전에 능한 모습을 보여온 만큼 발 빠른 대처에 나선 것이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지난 25일 트위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인권 유린 행위를 고발하기 위한 대규모 ‘거짓 깃발 작전’을 계획하고 있다”며 일찍이 경고에 나섰다. 이후 고위 관료들은 각자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우크라이나어, 영어, 러시아어로 본인들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거나 침공 상황을 업데이트하면서 러시아발 가짜뉴스가 퍼지기 전에 거짓 정보들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지난 15일(현지시간) “ATM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단체문자를 받자 우크라이나 사이버경찰은 당일 공지를 통해 “이는 정보전의 일환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 우크라이나 사이버경찰 웹사이트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지난 15일(현지시간) “ATM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단체문자를 받자 우크라이나 사이버경찰은 당일 공지를 통해 “이는 정보전의 일환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 우크라이나 사이버경찰 웹사이트

우크라이나 경찰은 침공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시작된 정보전에도 재빠르게 대응했다. 예컨대 시민들이 지난 15일 “ATM기 작동이 멈췄다”는 단체문자를 받자 우크라이나 사이버경찰은 당일 공지를 통해 “이는 정보전의 일환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정보전에 총력을 다하는 건 지난 2014년 러시아의 가짜뉴스 확산으로 크게 피해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014년에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유로마이단 혁명’이라 불리는 반정부 시위로 물러나자 러시아는 새로 들어선 친서방 정권을 겨냥한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선전 공세에 나섰다. 반정부 시위는 사실 미국과 유럽이 주도한 것이었으며, 새로 들어선 정부는 파시스트 군사정부라는 내용이었다. 워싱턴포스트가 입수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군 정보기관인 정찰총국(GRU)은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물러난 다음날부터 페이스북과 VK 등 소셜미디어에 가짜 계정들을 무더기로 생성해 일반인인 척 “반정부 시위는 쿠데타로 변질됐다”“현재 시위대는 신나치주의자와 파시스트들로 이루어져 있어 위험하다”는 가짜뉴스를 유포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같은 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친러 분리주의자들과 전투를 벌인 우크라이나군에게도 거짓 정보를 퍼뜨리며 심리적 타격을 입혔다. “지금 떠나면 살 수 있다”거나 “당신의 지휘관은 부대를 배신했다”는 등 동료들이 보낸 것처럼 위장한 단체문자를 보내 사기를 꺾고 공포심을 심은 것이다. 한편 러시아 관영매체는 우크라이나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3살짜리 아이를 어머니 앞에서 처형하는 등 러시아계 주민들을 잔혹하게 응징했다는 가짜뉴스를 실어나르며 러시아인들을 자극해 우크라이나 침공의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가짜뉴스를 퍼뜨려온 러시아 관영매체의 앞날이 어두워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서방세력들이 관내에서 러시아 매체가 정치 선전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칼을 빼어들면서다. 폴란드는 독일에 이어 지난 24일 러시아 국영매체 러시아투데이(RT)의 방송을 금지했다. 프랑스 국회의원들은 RT 방송 면허 취소를 요구하고 나섰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언론 규제 당국에 영국 RT가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지 감시하고 필요하면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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