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포럼

‘문명사 대가’가 경고하는 인류 위기…인정하되 과도한 비관주의는 경계해야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

기고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

물고기 쓸개 연구에 몰두했던 생리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사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뜻밖에도 늦둥이 아들 조슈아, 맥스의 출생이었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36개국에서 1000만부가 넘게 팔린 <총, 균, 쇠>를 세상에 내놨다. 1만1000년간의 인류 문명을 다루는 압도적 스케일에 더해 서남아시아에 뿌리를 둔 전염병 창궐, 문자와 기술 혁신, 4대륙을 넘나드는 이주와 전쟁의 서사시를 보며 전 세계 독자들은 짜릿한 시간여행에 빠졌다.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파푸아뉴기니의 얄리 부족이 던진 ‘왜 백인들은 발전했고 우리는 뒤졌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 수천년의 시간을 거쳐 왜 각 대륙에서 문명이 다른 속도로 꽃피었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쳤다. 농업혁명이 허락한 작물화·가축화가 질병에 대한 면역체계를 형성했고 기술과 문화의 발전을 추동하면서, 지배 공동체와 피지배 공동체가 동시에 생겨났다고 그는 통찰했다.

이어진 역작 <문명의 붕괴>에서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간 고대 국가들의 최후의 궤적, 또 저마다의 위기를 겪고 있는 근대 국가들의 도전과 응전, 좌절을 극적으로 그려냈다. 사피엔스의 탐욕이 무자비한 산림 벌채와 수렵채집, 표토층 유실과 식량 위기를 낳았고, 결국 부족 간의 혈투를 거쳐 한때 찬란했던 고대문명이 붕괴했다는 설명이다. 태평양의 외딴섬 이스터아일랜드 곳곳에 고꾸라져 있는 모아이 석상들은 인간의 선택이 낳은 비극적인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최신 저작 <대변동>에서는 개인의 위기에 대한 정신의학적 연구를 토대로 현대 국가가 위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다뤘다. 자신이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 과정 시절에 겪었던 실패와 정체성 위기,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소개한다. 그 결과 핀란드·일본·칠레·독일 등 여러 나라들이 겪은 위기와 극복 방식도 인간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다이아몬드는 주장한다.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이 포퓰리즘을 강화하고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한 한편 중국과의 신냉전과 국내적으로 커진 사회적 불신이 결합하면서 유례없는 국가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정치적 관용과 구성원 간 신뢰를 회복하지 않으면 자칫 걷잡을 수 없는 국가적 위기로 번질 수 있음을 다이아몬드는 경고했다.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도 심각하다. 인류는 코로나19보다 훨씬 위협적인, 인류 전체의 삶을 뒤흔들 수 있는 다양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 2050년까지 28년의 기간 동안 인류는 핵전쟁 위험·지구온난화·천연자원의 고갈·불평등과 대결할 숙명에 처해 있다. 과연 사피엔스는 승리할 수 있을까?

승리의 열쇠는 전 세계인의 각성과 의지, 행동에 달렸다. 젊은층을 포함해 적지 않은 세계인들이 기후변화를 비롯한 전 지구적 위협에 대해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51% 확률로 긍정해야 할 이유다. 하지만 끔찍한 미래가 펼쳐질 가능성도 49%로 꽤 높은 편이라고 진단한다.

다이아몬드는 한국 역시 위기의 징후를 경험하고 있으며 저출생과 남녀 간 불평등, 북한·일본 등 이웃 나라와의 관계가 한국의 위기를 특징짓는다고 봤다. 일본이 사과하지 않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사과를 기다리기보다는 묵묵히 한국인의 삶을 살 것을 그는 권고했다.

다이아몬드의 시각이 너무 비관적인 건 아닐까?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심리학자는 지난 1월 다이아몬드와의 대담에서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핑커는 다이아몬드가 제기한 위기의 가능성은 인정하되 과장해선 곤란하다고 했다. 인류는 빈곤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소형 원자로와 같은 탄소 없는 에너지 개발을 통해 기후위기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 핑커가 지적하듯 사피엔스는 기술과 제도, 이성이란 계몽주의적 무기를 들고 있다. 위기는 직시하되 조심스레 긍정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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