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임신중단권 폐지에 응수하는 세계...‘한 발 후퇴, 두 발 전진’

김혜리 기자
임신중단권 옹호론자들이 27일(현지시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주 의회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FP연합뉴스

임신중단권 옹호론자들이 27일(현지시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주 의회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FP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중단 권리를 폐기하는 판결을 내리자 국제사회에선 이에 맞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나치 시절 만들어진 ‘임신중단 광고 금지법’을 폐지했다. 공교롭게도 미 대법원이 임신중단권에 대한 헌법상의 보호를 폐지한 당일 독일 의회는 임신중단 광고 행위 등을 금지한 형법 219a조를 폐지하는 법안을 가결한 것이다. 이로써 의사들은 처벌받을 걱정 없이 병원 웹사이트 등에 임신중단 수술을 한다고 내걸 수 있게 됐고, 여성들은 정확한 임신중단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독일에선 임신중단 관련 정보를 제공하거나 수술을 한다고 홍보하는 것이 불법이었으며, 이를 어긴 이들은 최대 2년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했다.

낸시 페이저 독일 내무장관은 “형법 219a조를 폐지함으로써 모든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안전이 더 강화됐다”고 환영했다. 마르코 부쉬만 법무부 장관은 “임신중단 관련 정보 제공을 금지한다는 이유로 고도의 자격을 갖춘 의료진을 처벌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시대정신에 맞지 않으며 부당하다”며 “그것이 우리가 이 논쟁을 끝내기로 한 이유”라 설명했다. 다만 이번 법률 개정은 임신중단 광고 규제만 없앨 뿐 임신중단의 전면적 허용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독일에선 임산부의 생명이나 건강이 위태로운 상황을 제외하고는 임신 12주 이후 임신중단을 금지하고 있다.

독일 연방내각 홈페이지에 독일 의회가 임신중단 광고 행위 등을 금지한 형법 219a조를 폐지하는 법안을 가결했다는 안내글이 올라와 있다. | 독일 연방내각 홈페이지 캡처

독일 연방내각 홈페이지에 독일 의회가 임신중단 광고 행위 등을 금지한 형법 219a조를 폐지하는 법안을 가결했다는 안내글이 올라와 있다. | 독일 연방내각 홈페이지 캡처

프랑스 정치권에선 임신중단권을 아예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르몽드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여당인 르네상스당의 오로르 베르제 대표는 25일 임신중단권을 헌법에 명시하는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 밝혔다. 미 대법원의 결정을 “재앙”이라 표현한 그는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여성의 권리는 항상 취약하고 정기적으로 도전받는다”면서 “프랑스에선 (임신중단 권리를) 바로 다음 날 뒤집을 수 없도록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좌파연합 ‘뉘프’를 이끄는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마틸드 파노 대표도 이에 동의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24일 트위터에 “대서양 건너의 비극으로 우리에겐 의무가 생겼다. 임신중단이라는 기본권에 대한 어떠한 방해도 막기 위해 이를 헌법에 포함하는 법안을 발의할 것을 뉘프에 제안한다”는 글을 올렸다. 뉘프와 르네상스의 의원 수는 총 296명이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과반수(289명)보다 많다.

이스라엘도 미국의 결정에 반발하며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 규제 완화에 나섰다. 27일 이스라엘 국회(크네세트)가 승인한 새로운 규칙에 따르면 여성들은 병원뿐 아니라 지역 보건소에서 임신중단 약물을 이용할 수 있고, 임신중단을 위해 ‘낙태승인위원회’에 직접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니트잔 호로위츠 이스라엘 보건부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크네세트의 결정을 미 대법원의 결정과 비교했다. 그는 “여성은 본인의 몸에 대한 완전한 권리를 갖고 있다”며 “미 대법원이 여성들의 신체에 대한 선택권을 부정하기로 한 것은 여성을 억압하는 후진적인 움직임”이라 말했다. 그는 “세계 자유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의 시계는 10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며 “이스라엘은 이와 달리 오늘 올바른 방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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