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편에 선뜻 서지 않는 ‘남반구 국가들’의 속사정

박은하·이윤정 기자

브라질·인도·인도네시아, 젤렌스키 구애에도 ‘거리’ 지켜

경제와 군사 분야서 러·중과 밀착…식민지배 경험도 영향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위 사진 오른쪽)이 지난 20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같은 회의에 참석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아래 사진 왼쪽)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별도의 양자 회담 중 악수하고 있다. UPIAP연합뉴스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위 사진 오른쪽)이 지난 20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같은 회의에 참석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아래 사진 왼쪽)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별도의 양자 회담 중 악수하고 있다. UPIAP연합뉴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인도·브라질 등 비동맹 중립 외교노선 전통을 고수하는 나라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시도는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사우스’로 불리는 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 국가들은 자신들을 G7 진영에 강제로 끌어들이지 말라며,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 히로시마에 도착한 지난 20일부터 이틀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G7 지도자들을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 초청국 정상들과도 마주 앉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는 끝내 만나지 못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단순히 일정이 맞지 않았다”고 설명하면서, ‘결과에 실망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룰라)가 실망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가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아) 언짢았다”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일정이 어긋나 두 사람의 만남이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동안 중립을 유지해온 브라질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목소리를 내기 꺼려한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브라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유일한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이지만 미국과 서유럽의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에 강력히 반대하며 대러 제재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는 서방과 거리를 두는 브라질의 ‘비동맹’ 외교노선 전통에 더해 중·러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계 1위 농산물 수출국 브라질은 러시아산 비료를 안정적으로 수입해야 하며, 브라질산 대두는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된다. 브라질 정부 관계자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등장은 남반구 국가들을 G7 진영에 강제로 끌어들이는 함정”이라고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이 브라질 현지 언론 보도를 인용해 전했다. 브라질 외무부 고위 관리는 G7 회의에서 “G7 국가들과 동의하지 않는 입장에 있는 나라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강경 대러 노선에 끌어들이지 말 것을 요구했다.

모디 인도 총리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바람대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중재에 나설 가능성도 희박하다. 모디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도 오는 9월 인도가 의장국으로 주최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초청해달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요청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G20 정상회의에는 러시아도 참석한다.

인도는 옛 소련 시절부터 안보를 러시아에 의존해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인도가 수입한 러시아 무기는 130억달러(약 16조6000억원) 규모이며, 아직 수령하지 않은 주문액도 100억달러가 넘는다. 러시아 무기 시장의 가장 큰손이 인도다. 인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러시아산 원유 수입 제재에 나선 서방에 발맞추기는커녕 오히려 수입량을 전년 대비 약 10배 늘렸다. 서방의 비난에도 인도는 국익을 위한 조치라고 응수해왔다. 인도 싱크탱크인 옵서버리서치재단의 연구원 허쉬 판트는 “인도는 오랫동안 러시아를 국방 파트너로 삼아왔으며, 이는 하룻밤 사이에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G20 의장국을 맡았고 올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의장국을 맡은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 대통령도 21일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평화를 위한 가교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지만, 러시아에 대한 규탄이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는 끝내 표명하지 않았다.

‘글로벌 사우스’ 나라들 대다수는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61년 만들어진 비동맹운동회의 가입국이다. 이들은 식민지배 역사를 경험해 서방에 회의적이다. 영국 브래드퍼드대 국제안보학 교수 폴 로저는 “G7이 러시아를 규제하려 하지만, 글로벌 사우스에 속한 나라들이 볼 때 러시아 침공은 과거 서방이 글로벌 사우스 나라들에 한 행동과 비슷해 보인다”며 “글로벌 사우스에 무조건 ‘러시아=나쁜 나라’로 설득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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