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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폐쇄” 외쳐야 민심 얻는다?… ‘이민자 나라’ 미국에서 왜 ‘반이민 대결’ 벌어지나

최혜린 기자
지난해 12월 멕시코 국경을 넘은 이민자들이 텍사스 이글패스에서 이민 처리 절차를 밟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멕시코 국경을 넘은 이민자들이 텍사스 이글패스에서 이민 처리 절차를 밟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에서 150년만에 현직 장관이 하원에서 탄핵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조 바이든 정부의 이민정책을 집행해 온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이 그 주인공으로, 이민정책 실패로 국경이 마비됐다는 게 탄핵 이유였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은 13일(현지시간)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 214표, 반대 213표로 마요르카스 장관 탄핵 소추안을 채택했다. 지난 11일 공화당 내에서 이탈표 3표가 나오면서 한 차례 부결됐던 탄핵안은 결국 이번에 한 표차로 아슬아슬하게 가결됐다.

그러나 마요르카스 장관이 실제로 탄핵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상원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모르지 않는 공화당이 재투표까지 밀어부친 데는 ‘바이든 정부가 국경을 마비시켰다’고 공격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실제 국경 이슈는 이번 대선 레이스 내내 바이든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CBS방송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미등록 이주민에게 더 강경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응답자는 63%에 달했다. 지난해 9월 실시한 같은 조사(55%)에 비해 불과 3개월 만에 8%포인트나 높아졌다.

아이오와·뉴햄프셔의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대거 결집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도 바이든 대통령의 ‘실패한’ 이민 정책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무능’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뽑지 않은 공화당원은 물론 민주당원들 사이에서도 고르게 퍼져 있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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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연일 혐오 발언을 쏟아내며 지지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거나 “국경은 우리를 파괴하는 대량살상무기가 됐다”면서 공격 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이 당시와 달라진 점은 “국경을 폐쇄하겠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이 일관되게 이민자 혐오를 내세웠던 트럼프 전 대통령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이민자 집단의 존엄성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을 이제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재선에 도전하는 그는 “의회가 권한을 준다면 즉시 국경을 폐쇄하겠다”고 약속했다. 임기 내내 친이민 정책을 강조한 바이든 대통령도 성난 민심에 조급해진 나머지 ‘돌아설 결심’을 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미국 시민들을 이토록 분노하게 만들었을까.

국경 넘는 이민자 ‘폭증’…어느 정도길래?

가장 일차적인 이유는 바이든 대통령 집권 후 이민자 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에는 남부 국경에 30만명이 넘는 이민자가 국경에 몰리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 등에 따르면 2020년 연 40만건이었던 불법 월경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인 2021년 165만건으로 4배 이상 폭증했다. 물론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밀입국 자체가 감소한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방지 명목으로 도입한 강제 추방 정책인 ‘타이틀 42’가 시행돼 국경 밖에서 추방되는 경우는 집계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9년 85만건과 비교해도 2배 수준의 이민자들이 몰렸다.

미국의 이민 처리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인파가 몰리면서 국경지역은 비상이 걸렸다. 텍사스주 엘파스에는 얇은 담요로 몸을 감싼 채 잠을 자는 이민자들이 연일 몰려들었다. 이들은 종이 상자를 구해 임시 텐트를 만들거나, 마을 인근의 차고에서 밤을 지샜다.

텍사스주 엘패스 인근의 한 고속도로 차고에서 발견된 밀입국자들. 미국 국경순찰대

텍사스주 엘패스 인근의 한 고속도로 차고에서 발견된 밀입국자들. 미국 국경순찰대

국경지역만 문제가 아니었다. 바이든 정부의 국경관리 시스템에 반발한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이민자들을 버스에 태워 주요 도시로 보내는 캠페인을 벌였다. 특히 시카고, 뉴욕 등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이끌고 있는 도시를 겨냥했다.

시카고 경찰서가 이민자 수용 텐트로 가득찬 숙박 시설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본 지역 주민 디온드레 미구엘 존스(47)는 “시카고 공무원들은 이민자들을 돌보느라 바쁘다. 주민들도 돌보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이들을 돌볼 수 있나”라고 분노했다. 뉴욕 브루클린의 한 학교에서는 체육관이 이민자들의 임시 대피소로 지정되자 100여명의 학생과 학부모가 “우리는 체육관을 되찾고 싶다”고 외치며 행진하기도 했다.

결국 몰려드는 이민자를 감당하지 못한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국경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민자 급증이) 뉴욕을 파괴할 것”이라면서 “뉴욕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누구도 이런 상황을 바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이월드] “국경 폐쇄” 외쳐야 민심 얻는다?… ‘이민자 나라’ 미국에서 왜 ‘반이민 대결’ 벌어지나

이민법원도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2012년에는 20만건의 망명 신청이 계류중었지만, 올해는 300만건 이상의 신청이 접수되고 있다. 이에 당국은 이민 담당 판사를 520명에서 800명으로 늘렸지만, 밀려드는 망명 신청을 처리하는 데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미 의회조사국은 현재까지 접수된 망명 신청을 2032년까지 모두 처리하기 위해서는 1000명의 판사가 더 필요한 것으로 추산했다. 전미이민심사위원회의 미미 샨코프 회장은 “아무리 밤낮으로 일해도 물량은 계속해서 밀려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바이든 이민정책, 뭐가 문제였나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만 하더라도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당시 미국에는 이민자를 더 많이 수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돼 있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임기 말인 2020년 갤럽 조사에서는 1965년 이후 처음으로 ‘이민자를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응답률(34%)이 ‘이민자를 줄여야 한다’는 답변(28%)을 앞질렀다. 갤럽은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고, 어린 이민자 자녀를 부모와 강제로 떼어놓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관용’ 국경 정책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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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노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국경 장벽 철거 등을 약속하며 ‘트럼프 지우기’에 나섰다. 그는 임기 동안 총 500개가 넘는 이민 관련 행정명령을 발표하는 등 전과 다른 이민정책을 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계획은 ‘합법적인’ 이민 경로를 마련해 밀입국을 줄이려는 것이었다. 이민자를 막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망명 신청 시스템을 강화해서 이를 관리하겠다는 목표였다. 예컨대 망명을 원하는 이민자들이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 어플리케이션으로 미리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하루 최대 1450명의 사전 예약을 받았다. 이런 절차를 밟지 않으면 5년 동안 재입국을 금지하는 강경책도 함께 마련했다.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향하기 위해 콜롬비아와 파나마 사이의 정글인 ‘다리엔 갭’을 건너고 있다. AP연합뉴스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향하기 위해 콜롬비아와 파나마 사이의 정글인 ‘다리엔 갭’을 건너고 있다. AP연합뉴스

아이티, 베네수엘라, 쿠바, 니카라과 등 중남미 4개국 출신 이민자들에게는 ‘인도적 체류’를 허용하고, 수용 정원을 3만명 가량으로 확대한 것도 회심의 정책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시도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중남미 국가들의 혼란이 가중되면서 효과는 점차 미미해졌다. 이민 신청 수요가 정부의 상한선을 뛰어넘는 것을 모자라 수용 불가능한 수준의 인파가 몰려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는 중남미의 경제적 악화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3년 이후 국내총생산(GDP)이 60% 넘게 줄어들면서 나라 경제가 붕괴한 베네수엘라에서는 2023년 말 조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들이 770만명(유엔 통계 기준)을 넘어섰다. 2021년 대통령 피살 이후 갱단이 도심을 장악한 데 이어 강진까지 발생한 아이티 출신 미등록 이민자도 급증했다. 이들을 추방하는 과정에서 국경순찰대원들이 아이티 이민자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국경의 혼란상이 여과없이 드러났다. 가족 단위 이민자들이 늘면서 수천 명의 아동들이 비좁은 수용소에 갇혀 살거나 노숙 생활을 했고, 이런 환경에서 5세 이주 아동이 감염병으로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텍사스주 이글패스에서 미국 세관국경보호국 요원이 이민자 어린이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텍사스주 이글패스에서 미국 세관국경보호국 요원이 이민자 어린이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다. AFP연합뉴스

국경 위기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은 ‘바이든 정부의 지나치게 포용적인 이민 정책 때문에 이민자가 급증했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정말로 ‘친이민’ 정책을 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표면상으로는 이민자를 포용한다는 인도적 가치를 줄곧 강조했지만, 정책 집행에 있어서는 재임 기간 내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국경에 남미 출신 이민자가 몰리자 지난해 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제 추방 정책인 ‘타이틀42’를 아이티·베네수엘라·쿠바·니카라과 등 그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내렸던 국가들에도 확대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내 메시지는 이것이다. 국경에 나타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인도주의적 수치”라며 그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다를게 없다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이민자 수가 급증한 것을 하나의 정책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미국 초당적정책센터의 보고서는 “단일한 이민 정책이 미등록 이민자 증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실하게 결론짓기 어렵다”면서 “숫자만으로는 사람들이 고국을 떠나게 만드는 요인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9월 이민자들이 멕시코에서 텍사스 이글패스로 넘어가기 위해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9월 이민자들이 멕시코에서 텍사스 이글패스로 넘어가기 위해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미 등을 돌렸다. 심지어 이민 정책에 있어 민주당의 가장 큰 우군이었던 히스패닉의 지지도 예전같지 않다. 2022년 악시오스와 입소스가 라틴계 성인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1%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도입한 ‘타이틀 42’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현상은 젊은층일수록 더 강해져서 이민 3세대는 59%가 추방 정책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미 미국에 정착한 이들은 사실상 다른 미국 집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치솟은 물가를 잡지 못한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정책 실패다. USA투데이와 서포크 대학의 지난해 12월 조사에 따르면 라틴계 유권자의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34%로 심지어 트럼프 전 대통령(39%)보다 낮게 나타났다.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65%의 지지를 얻은 것과 비교하면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이민자 몰려들어 괴롭다지만…‘이민자 부족’이 더 문제

‘이민자가 세운 나라’ 미국은 결국 국경을 폐쇄하고 이민자의 접근을 봉쇄하는 것으로 국경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문제는 이민자들의 ‘값싼 노동력’으로 성장해 온 미국 경제가 여전히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기업들이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인력 부족이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는 등 경제를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에 870만개의 채워지지 않은 일자리가 있으며, 자국 내 노동자들만으로는 이를 채우기 부족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같은 상황을 놓고 CNN은 “국내 기업들이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한편, 미국에서 일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은 막으려 하는 역설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모인 이민자들의 모습. EPA연합뉴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모인 이민자들의 모습. EPA연합뉴스

결국 문제는 단순히 이민자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불법’으로 국경을 넘으려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안전하고 합법적인’ 이민 경로가 너무 적어 수요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낡은 이민법’이 있다.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갈 수 있는 합법적인 경로는 임시 취업 비자를 얻거나 이민 비자를 얻는 두가지 경우다. 그러나 전체 임시 취업비자 중 엘살바도르·온두라스·과테말라 출신에게 발급된 비중은 2017년 기준으로 4%에 불과하다고 미국 법률정보 사이트인 ‘로페어’는 지적했다.

이민 비자를 얻는 것은 더욱 하늘에 별따기다. 미국의 이민법은 1990년대에 머물러 있다. 이민 문제를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의 갈등이 너무 큰 탓에 개정이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카토연구소는 “그동안 미국 인구는 30% 증가했고 경제 규모는 두 배가 됐다”면서 “이민 쿼터제는 경제와 인구 수준과 연동해 업데이트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남미 국가들에 할당된 인원 수가 너무 적다는 점을 들어 “지금 이민을 신청하는 멕시코와 필리핀 사람들은 백 년 이상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양당이 앞다퉈 ‘국경 폐쇄’를 외치며 반이민 정서를 공략하는 지경까지 이르면서, 누구도 이민자를 틀어막는 게 해법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미 정책기관 이미그레이션허브의 전무이사 케리 탤벗은 이같은 ‘국경의 정치화’를 비판하며 “양당 지도자들이 한 발 물러서서 국경을 통제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국경을 폐쇄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의회의 노력이 있다면 충분한 자원이 확보된, 안전하고 인도적인 국경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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