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받은 지구, 하얗게 질린 산호···네 번째 ‘전지구적 백화 현상’ 관측

선명수 기자
지난 3월5일(현지시간)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잠수부가 백화된 산호를 관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월5일(현지시간)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잠수부가 백화된 산호를 관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기후변화로 해수 온도가 높아지면서 지난해부터 전 세계 산호초 지대의 절반 이상에서 대규모 백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이번이 지난 30년간 관측된 네 번째 ‘전 지구적 백화 현상’이며, “역사상 최악의 백화 현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과 국제산호초이니셔티브(ICRI)는 지난해 2월 이후 전 세계 최소 53개 국가와 지역에서 산호초의 대량 백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발표했다.

백화 현상이란 해수 온도가 상승해 산호 내부에 서식하는 공생 조류가 죽거나 외부로 빠져나가면서 산호가 알록달록한 색을 잃고 희게 변하는 것을 말한다. 백화 현상이 일어난다고 해서 산호가 곧바로 죽는 것은 아니며 수온이 정상화될 경우 산호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높은 수온이 지속되면 산호는 결국 폐사한다.

이는 해양 생물의 주요 서식지가 파괴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산호초는 4000종 이상의 물고기를 포함해 전체 해양 생물의 25%가 생애 가운데 일정 기간 의존해 생식하는 해양 생물의 요람이다.

NOAA 산호초 감시 프로그램의 데릭 만젤로 박사는 “전 세계 산호초 지역의 54% 이상이 백화 수준의 열 스트레스(heat stress)를 경험했으며, 그 면적은 매주 1%씩 증가하고 있다”면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1~2주 안에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심각한 전 지구적 백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관측이 시작된 이래 ‘전 지구적 백화 현상’이 나타난 것은 1998년과 2010년, 2014~2017년 이후 이번이 네 번째다. 대체로 해수 온도가 상승하는 엘니뇨 기간과 겹쳤다.

NOAA 등의 기준에 따라 백화 현상이 ‘전 지구적 현상’으로 간주되려면 1년 이내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에서 모두 산호 백화가 관측돼야 하며 각 지역에 있는 산호초의 12% 이상이 백화를 유발하는 해수 온도에 노출돼야 한다.

문제는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 지구적 백화 현상’이 처음 관측된 1998년에는 전 세계 산호초 지대의 20%에서 이 현상이 나타났고, 그 면적이 2010년에는 35%로, 2014~2017년에는 56%로 증가했다. 이번에는 전체의 54%에서 백화 현상이 나타났지만 곧 이전 최고치인 56%를 빠르게 추월할 것이란 관측이다.

기후변화에 엘니뇨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지난해 4월부터 연말까지 지구 해수면 평균 온도는 1979년 관측이 시작된 이래 매일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해수 온도가 내려가는 라니냐가 올해 6~8월 사이 시작될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몇 년간 라니냐 기간에도 백화 현상이 계속됐다고 NOAA는 밝혔다.

지난 5일(현지시간) 해양 생물학자 앤 호겟이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산호를 조사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산호들 사이로 하얗게 변한 산호가 보인다. AFP연합뉴스

지난 5일(현지시간) 해양 생물학자 앤 호겟이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산호를 조사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산호들 사이로 하얗게 변한 산호가 보인다. AFP연합뉴스

대규모 백화 현상은 미국 플로리다 카리브해를 비롯해 멕시코 등 동부 열대 태평양 지역, 피지 등 남태평양 지역, 서인도양, 홍해, 페르시아만 등 전 세계 53개 국가와 지역에서 확인됐다.

세계 최대 규모 산호초 군락인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상황도 심각하다. 최근 항공조사 결과 이 지역 산호초의 약 4분의 3에서 백화 현상이 관측됐으며, 전체의 절반가량은 극심한 수준이었다.

이는 최근 9년간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확인된 다섯 번째 백화 현상이다. 당초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10년에 두 번 정도 대규모 백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는데, 이 관측보다 훨씬 빈번했던 것이다. 오베 호그 굴드버그 퀸즈대학 해양학 교수는 “이제 우리는 재난 영화의 시작점에 와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반복되는 전 지구적 백화 현상은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섭씨 1.5도 오를 경우 전 세계 산호초의 70~90%가 사라질 수 있다고 예측한 기존 연구를 뒤엎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1.5도는 국제사회가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약속한 마지노선으로, 현재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2도 정도 높아진 수준이다. 2022년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는 1.2도 상승만으로도 산호초 및 산호 생태계 존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케냐 몸바사에서 인도양과 동아프리카 연안 해양 연구를 하고 있는 생태학자 데이비드 오부라는 “우리가 탄소 배출을 멈추지 않는 한 산호초는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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