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맞붙는 두 영화…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마침내 4월1일, 진작부터 영화팬들은 이날을 기다렸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가 이날 동시에 개봉한다. 두 작품은 제목부터가 역설적이다. ‘주먹이 운다’가 인생에 대한 진심어린 찬가(讚歌)라면 ‘달콤한 인생’은 덧없는 삶에 대한 만가(輓歌)다. 두 감독을 만나 개봉을 코앞에 둔 심경을 들어봤다.

[영화]맞붙는 두 영화…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차가운 시선’ 김지운

‘달콤한 인생’은 김지운적 영화다. 김감독의 영화세계를 한 눈에 보여준다.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을 관통하는 메시지와 ‘장화, 홍련’을 뛰어넘는 영상미가 살아있는 그의 역작으로 손꼽힌다.

전작과의 차이는 장르가 이른바 누아르라는 점. 김감독은 왜 누아르를 선택했느냐는 물음에 “삶의 어두운 부분과 아이러니를 드라마틱하게 엮는 누아르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조용한 가족’을 다시 보면서 그 영화가 코믹 누아르라는 걸 깨달았다”며 “결과적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장르로 데뷔했고, 이번에 본격 누아르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맞붙는 두 영화…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는 화장실에서 발화됐다. 호남선 고속도로의 한 휴게소 화장실에 걸린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라는, 모든 것의 근원은 자기에게 있다는 선문답이 영화 제작의 촉매가 됐다. 이를 읽는 순간 가슴이 저릿해지는 걸 느꼈고, 독특하고 섬세한 누아르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이 일었던 것이다.

그의 말대로 ‘달콤한 인생’에는 인간의 어두운 열정과 비정함, 파멸 등이 녹아있다. 잘 나가는 호텔 지배인(이병헌)이 보스(김영철)의 명령을 거스르는 인간적인 선택을 하고, 그로 인해 파국을 맞고, 그제서야 달콤한 꿈에 흔들린 건 자신이고, 그 책임 또한 자신에게 있다는 걸 깨닫는 과정을 통해 삶의 처절한 사투와 인생의 덧없음을 강렬하고 화려한 영상미 속에 용해시켜 놓았다.

“바보같은, 외로운 남자의 슬픈 파멸기이자 피범벅 누아르예요. 주인공이 괴물같은 남자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 오딧세이기도 하고요.”

김감독은 이어 ‘달콤한…’이 “프랑스 누아르 거장 장 피에르 멜빌과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 사이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생무상 등 멜빌 영화의 주제에다 ‘킬빌’의 시청각적 스펙터클을 가미했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는 단숨에 썼다. 초고를 사흘만에 끝낸 뒤 2개월 동안 수정작업을 했다. 약 1년에 걸쳐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가졌고, 5개월 동안 찍은 뒤 2개월 동안 후반작업을 했다.

“무협영화의 틀을 빌려 인생의 희로애락과 흥망성쇠를 그린 ‘와호장룡’을 많이 참고했어요. ‘꿈’에 관한 또다른 선문답 등 촬영중에도 수정작업을 계속 했고요. 특히 장르적 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드라마의 콘트라스는 물론 빛과 어둠, 색감의 미학적 완성에 역점을 뒀어요.”

이에 따라 주인공이 등장하는 공간에 따라 녹색·흰색·붉은색 등으로 색을 달리하면서 그의 감정이 깊어질수록 색감을 고조시켰다. 화려한 야경의 경우 여러 야경을 찍어 합성했다.

김감독은 드라마가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여지가 있는 라스트 신에 대해 “어떻게 읽든 큰 관계가 없다”면서 “다만 처참한 시간과 달콤했던 순간의 정서와 이미지를 병치, 둘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면서 아슬아슬한 삶의 경계는 이어져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동명영화에 대해선 “못봤지만 담고 있는 세계관은 비슷하지 않겠느냐”며 “주인공의 대조적인 두 시간을 담은 호텔 스카이 라운지의 이름은 펠리니 영화의 원제(La Dolce Vita)에서 따왔다”고 덧붙였다.

김감독의 꿈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를 반문하고 점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영화를 연출하는 것’. ‘조용한 가족’ ‘반칙왕’ ‘장화, 홍련’ 등에 이어 전작과 다른 유사 가족을 등장시킨 ‘달콤한…’을 통해 그는 자신의 목표에 한발 더 다가섰다. “재미와 의미가 이상적으로 결합된 영화를 만드는 그 날을 향해 달려가겠다”는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배장수기자 cameo@kyunghyang.com〉

#‘따뜻한 시선’ 류승완

[영화]맞붙는 두 영화…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가지 면에서 류승완 감독(31)은 달라진 게 확실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지점을 통과한 느낌”이다. 아무리 현실이 비루해도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거냐며, 일어나서 부딪혀 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부축하는 ‘주먹이 운다’를 만들면서다.

류감독은 “10대에 꿈이었고, 20대에 희망이었던 영화가 이제는 생활 그 자체가 됐다”며 “예전엔 거장을 꿈꿨지만 이제는 영화를 만들며 살아간다는 게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했다.

영화와는 상관없이 한 말인데 이번 작품의 목소리와 접점이 많다. 그런 그에게서 인생의 마디와 영화의 마디가 함께 이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류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재미보다 무언가를 터득하고 포착하는 보람을 많이 느낀 작업이었다”면서 의미를 되새겼다.

그간 작품에서 쇼트를 먼저 구성하고 그 안에 인물을 배치시켰다면 이번에는 인물을 먼저 생각한 게 확실한 차이다. 영화를 보는 이들은 어떤 이는 태식(최민식)이 되어, 어떤 이는 상환(류승범)이 되어, 또 어떤 이는 아버지가, 할머니가 되어 각자를 응원하게 된다. 그래서 연령대별로 성장배경에 따라 영화에 대한 반응도 각각이다. 그만큼 인물에 대해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에 따른 결실이기도 하다.

“이창동 감독님이 전화로 ‘(류감독이 이런 영화를 찍으니) 난 이제 영화 못찍겠다’고 농담하시더라고요. 캐릭터들이 정말 좋았다고 하시면서, 진짜 류승완 영화 같다고.”

류감독은 무엇보다 이번 영화에 함께 한 배우들에게 감사한다. 실제 경기를 하면서 신인왕전 6라운드를 촬영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애초엔 제대로 된 장면들이 나올지 걱정이 컸다. 결과적으로 기우였다.

“알 파치노와 톰 크루즈가 이렇게 했을까요? 최민식, 류승범이니까 이런 게 나온 거지요.”

그는 권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신인선수들의 권투경기를 보면 남다른 에너지가 느껴진다. 자기를 증명하려는 그 어떤 힘, 살아있다고 느끼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눈빛이 보인다. 배고픔, 희망 같은 것들이 묻어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전 취재를 하면서 을지로의 노숙자들을 많이 만났어요. 살아가려는 의지가 어디론가 사라진 분들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화도 많이 나더군요.”

사는 건 기본적으로 얻어맞는 일이 지속되고,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데 그래도 부딪히다 보면 희망이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영화를 만든 의미는 충분하다고 류감독은 믿는다.

류감독은 극중 상환의 가족들에게 특히 애착이 간다. 못난 아버지가 막나가는 아들에게 소화제를 주는 부분이나 할머니가 병원에서 손자를 자랑하는 대목 등 류감독의 개인사가 녹아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다.

편집하면서 들어낸 장면중에 할머니가 상환을 보러 전국체전 경기장에 갔다가 부담 주지 않으려고 숨는 장면이 있다. 아끼는 촬영분이라 DVD에는 어떻게든 집어 넣을 생각이다. 곧 제작될 DVD에는 ‘라이브’ 신인왕전 촬영현장이 생생히 공개되고 정두홍 무술감독의 육성 현장지휘 모습도 담긴다.

‘달콤한 인생’이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겠지만 좋아하는 다른 감독의 작품은 자신이 가보지 못한 곳을 안내해준다고 그는 믿는다.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주먹이 운다’와는 각기 다른 지점에서 장점을 갖고 있는 영화라서 진심으로 둘 다 잘 됐으면 해요. ‘주먹’이 조금 더 잘 되면 좋겠죠.”(웃음)

〈송형국기자 hank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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