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위 노이즈가든 ‘Noizegarden’

작렬하는 슬로 템포의 기타 리프, 선명하게 반짝이는 심벌, 그리고 육중하게 던져지는 베이스, 거기에 주문을 거는 듯 힘줘 내뱉는 보컬. 출력과 토크가 이상적으로 배합된 엔진이 뿜어내는 배기음. 스피드보다는 그 힘을 따라갈 자가 없는 자동차. 천천히 다가오고 있지만 아무도 막아낼 자가 없는 전사. 1996년 노이즈가든(Noizegarden)이 새 앨범을 냈을 때, 아직도 헤비메탈의 용광로 속에서 헤매고 있던 수많은 록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가장 대안적인 동시에 또한 가장 교과서적인 록 음악의 등장, 마치 한국 록의 리셋 버튼을 눌러버린 듯한 느낌의 음반이 등장한 것이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27위 노이즈가든 ‘Noizegarden’

노이즈가든은 밴드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헤비메탈 그룹 ‘사운드가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모사에서 멈추지 않고 블랙 사바스, 혹은 레드 제플린 등의 정통 록 음악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록의 문법을 제시했다.

당시 한국 록 음악은 명절 외국인 장기자랑의 ‘아리랑’ 수준인 ‘흉내’를 갓 넘어 영문 가사에 의존한 밴드들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전곡 한글 가사로 무장해 본격적인 한국 록의 시대를 증거한 그들은 멤버 한 명 한 명을 일일이 호명해야 할 가치가 있다.

보컬리스트 박건은 한국 록 영역에서 보기 드물게 중저음역대가 안정돼 있으며 고음에 이르기까지 강하면서도 안정된 음색을 지니고 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베이시스트 이상문은 결코 앞서나가거나 경박스러운 리듬을 짚지 않았으며 이 중량감 강한 음반의 큰 기둥을 이루고 있다. 드러머 박경원은 때로는 연타로, 때로는 절분음으로, 때로는 침착한 정박으로 흥분과 우울이 오가는 리듬 트랙을 구성했다. 기타리스트 윤병주는 선명하게 들려오는 솔로, 순간적으로 폭발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타오르기도 하는 옥탄가의 리프, 거기에 온갖 톤의 실험까지 해가며 악곡 전체를 지배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12트랙은 그야말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어느 계보와도 섣불리 엮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지속성 강한 기타 줄의 공명과 보컬의 거친 절규가 만나 웅장한 슬로 템포로 다가오는 ‘기다려’를 통해 이들의 무표정하지만 흥분을 감추고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화려한 멜로디 라인과 단순한 듯하지만 다양한 변주의 편곡으로 무장하고 있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에서는 이들이 지닌 의외의 유연성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우주 꽃사슴’의 유머감각에 가까운 환상성과 ‘말해봐’의 스트레이트함을 겪고 나면 느리게 달리지만 위험한 롤러코스터에 타고 있는 듯한 심장 박동을 느끼게 된다. 가장 헤비메탈의 느낌에 근접해 있지만 메탈이 지닌 단점을 우회하고 있는 ‘묻지 말아줘’를 지나 모든 것을 정리하는 10분짜리 대곡 ‘타협의 비’까지 듣고 나면 이 한 시대를 풍미한 명반의 감상은 끝난다.

아쉬운 점은 이런 엄청난 음반을 만들어낸 노이즈가든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1990년대, 잠깐 찾아온 한국 대중음악 음지의 르네상스는 노이즈가든으로부터 촉발됐지만 그들이 이 음반의 연장선상에 있는 2집 음반을 99년 발표한 이후로 희미해져 갔다. 노이즈가든이 세운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는 밴드가 없다는 점 역시 그들의 독창성을 말해주지만 그것은 한국 대중음악 전체를 생각할 때 비극적인 일이기도 하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27위 노이즈가든 ‘Noizegarden’

◇노이즈가든 프로필

·결성 : 1993년

·구성원 : 박건(보컬) 윤병주(기타) 이상문(베이스) 박경원(드럼)

·주요활동

-1996년 1집 ‘nOiZeGaRdEn’

-1999년 2집 ‘But Not Least’

〈조원희|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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