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탑

재개발과 ‘하루살이 도시’

최병준 문화2부 차장

얼마전 서울 종로의 피맛골에 소주 한 잔 하러 갔다가 발길을 되물렸다. 여기저기 재개발 중인데다 분위기는 과거와 많이 달랐다. 두어명의 외국인들은 철거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정동탑]재개발과 ‘하루살이 도시’

고등어구이집 몇을 제외한 피맛골의 이름난 맛집들이 번듯한 새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음식맛이야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서민들의 정이 서린 피맛골의 정취를 찾긴 어려웠다. 피맛골의 역사와 문화를 짐작해낼 수 있는 것은 홍살문을 닮은 어설픈 기념물뿐이었다.

피맛골을 보며 문득 떠올린 것은 호주 멜버른의 멜버른 센트럴이란 쇼핑상가다. 멜버른 번화가에 세워진 멜버른 센트럴 내에는 눈에 띄는 붉은 벽돌건물이 고스란히 보존돼있다. 과거 ‘쇼트’라는 산탄총의 총알을 만드는 공장의 일부분인데 허물지 않고 그대로 남겨뒀다. 게다가 공장을 둘러싸고 있는 유리돔도 총알처럼 만들었다. 이 건물은 관광명소다.

한국의 재개발에는 전통과 디자인이 결핍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재개발은 과거를 지워버리는 식으로 이뤄졌다. 재개발을 할 때 건축주는 크고 높은 빌딩을 지어야 임대 수익이 높으니 고층 빌딩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디자인도 뒷전이었다. 600년이나 된 고도 서울의 과거는 고궁이나, 산비탈에 남아있는 성곽, 일부 한옥촌에서나 찾을 수 있다. 서울의 도심 풍경은 회색 고층빌딩으로 인해 칙칙하다.

도심의 빌딩만 그런 게 아니라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아파트 문화로 박사학위를 받은 프랑스인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인들은 집을 유행이 지나면 버리는 소모품처럼 취급한다고 했다. 그녀는 <아파트 공화국>에서 ‘서울의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다’고 결론을 냈다. 한강 같이 수도를 가로지르는 큰 강변에 아파트가 늘어선 곳은 아마 서울밖에 없을 것이다.

건축물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할 뿐 아니라 미래에도 전해져야할 유산이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건물은 말을 한다. 그것도 쉽게 분별할 수 있는 주제들에 관해 말을 한다. 건물은 민주주의나 귀족주의, 개방성이나 오만, 환영이나 위협, 미래에 대한 공감이나 과거에 대한 동경을 이야기한다’고 썼다. 건축물을 통해 보는 서울의 표정은 무뚝뚝하다. 과거도 미래도 알 수 없다.

외국의 경우 재개발은 도시의 역사성과 미래를 함께 생각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에스토니아의 고도 탈린 시는 보드카를 만들던 공장지대를 갤러리와 쇼핑상가, 미술관으로 바꿔 지난해 일부를 오픈했다. 시와 주민들이 오랜 토론 끝에 옛 벽돌건물에 첨단 이미지를 함께 섞는 방식으로 재개발했다. 핀란드 역시 도자기 공장이 있던 아라비안타 지역을 다 부수지 않고 디자인학교와 디자인몰을 세워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이곳은 헬싱키 중심가의 디자인디스트릭과 함께 핀란드 디자인의 중심이 됐다. 재개발은 도시의 과거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 새로운 옷을 입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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