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팬’ 위장한 이성애적 욕망

김종목 기자

문화비평가들이 본 ‘걸그룹 삼촌 팬덤’ 현상

소녀시대는 올 상반기 소리바다의 최고 인기 검색 순위에 올랐다. 티아라, 카라 같은 걸그룹도 상위권이다. 방송 출연 횟수 등 다른 지표를 봐도 걸그룹의 강세는 뚜렷하다. 걸그룹 전성시대가 이어지면서, 걸그룹 팬의 주축인 30·40대 남성팬들도 주목받았다. 문화비평 쪽에서도 ‘삼촌 팬덤’에 대한 분석과 비평이 늘고 있다. 신자유주의 자본과 소비 문제와 함께 삼촌 팬들의 걸그룹에 대한 이성애적 욕망 여부에 관한 분석들이 주다. 즉 삼촌 팬들은 ‘성적 판타지가 거세된 순수한 존재인가’라는 물음이다.

문화비평가들은 걸그룹의 30·40대 남성 팬과 관련한 ‘삼촌 팬덤’에 대한 분석에서 신자유주의에서 불안한 남성의 위치와 함께 이성애적 욕망 등을 읽어내고 있다. 걸그룹 소녀시대, 카라, 티아라 활동 모습(위쪽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문화비평가들은 걸그룹의 30·40대 남성 팬과 관련한 ‘삼촌 팬덤’에 대한 분석에서 신자유주의에서 불안한 남성의 위치와 함께 이성애적 욕망 등을 읽어내고 있다. 걸그룹 소녀시대, 카라, 티아라 활동 모습(위쪽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문화평론가 문강형준씨는 ‘시민과세계’ 여름호에 ‘우상의 황혼 : 한국사회에서 아이돌은 어떻게 소비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문씨는 이미지, 시뮬라크르, 신화, 인간자본, 상품 같은 현대철학 개념으로 분석한 이 글에서 “대중은 아이돌이라는 ‘재료’를 각자의 수많은 욕망에 따라 요리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문씨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획사가 개발하는 상품의 수동적 소비자이자 기획사의 ‘돈줄’로 남게 된 아이돌 팬을 분석하면서 걸그룹 부흥과 함께 새롭게 떠오른 30·40대 남성 팬들도 비평했다.

그는 “‘삼촌 팬’이라는 집단이 드러내는 피터팬적 퇴행과 이중성은 우려스럽다”며 “삼촌 팬 현상은 신자유주의 지배 이후의 항시적 경제위기 상황이 만들어낸 흔들리는 남성적 위치를 상상적으로 보상받고 싶어하는 이들의 퇴행이자, 동시에 소녀에 대한 성적 욕망이 소위 ‘건전하게’ 투사되는 방식의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자는 역설적으로 대중문화와 일상생활 사이의 분리를 강화하는 보수적 태도이며, 후자는 실제로 빈번히 발생하는 아동·청소년 성폭력과 대중문화에서 점증하는 아이돌에 대한 포르노그래피적 시선 사이의 고리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도 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도 블로그 등을 통해 걸그룹과 팬덤에 대한 견해를 밝혀왔다. 이 교수는 “삼촌 팬들은 소녀시대 또는 소녀시대가 표상하는 어린 여성을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 가질 수 있는지를 잘 안다”고 말했다. “소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가 요구하는 ‘스펙’을 갖추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안다는 뜻인데, 이게 10대들이 소녀시대를 소비하는 것과 다른 삼촌 팬만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준수한 외모에 좋은 직장, 뛰어난 매너를 겸비한 남성이라면 소녀시대 같은 어린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 중에 ‘선택받은 자’를 제외한다면, 이런 스펙을 갖출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며 “그래서 이들은 소녀시대를 은밀하게 상상속에서만 즐길 뿐, 공공연하게 소녀시대의 캐릭터들을 성적 대상화해서 현실적인 ‘여성’으로 만드는 시도에 반발한다”고 말했다. “성적 대상으로 소녀시대를 설정하는 순간, 앞서 말한 불가능성, 즉 소녀시대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폭로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올초 웹툰 작가 윤서인씨가 소녀시대와 닮은 여성 캐릭터가 야한 복장으로 과거 시험을 치고, 떡방아를 찧는 모습을 묘사해 성희롱 논란을 일으킨 사건을 거론하며 “소녀시대를 소비하는 이런 방식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욕망 구조를 드러내는 적나라한 사례”라고 말했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삼촌팬덤의 문화정치’ 등 삼촌 팬덤 비평을 꾸준히 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걸그룹 팬 중에는 오라버니나 큰오빠로 칭하는 이도 있고, 삼촌이란 말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 등 여러 분포가 있다”며 “중요한 것은 이 분포나 팬덤 내부의 헤게모니 다툼 속에서 삼촌이란 표상이 등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촌이 친족적 친밀성을 강조하는 언표 행위라는 점은 의미심장한데, 삼촌과 조카라는 상상적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성애적(sexual) 관계가 아닌 것처럼 위장되기 때문”이라며 “팬들이 ‘상상적으로’ 삼촌이라고 호명한 것은 소녀에 대한 성적 욕망을 금지하고 자기검열하는 맥락에서 나온 셈”이라고 설명했다.

삼촌이라고 호명하면 성적 시선은 사라지는 것일까? 김 연구원은 “현실로부터의 탈출이든, 순수함의 재발견이든, 새로운 구매력의 등장이든, 혹은 파편화된 개인들의 공동체 생활이든 그 어떤 말로 위장하더라도 삼촌 팬덤을 추동하는 기본 동력은 언제나 이성애적 욕망”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기획사의 의도된 전략 문제도 거론했다. “아이돌은 10대 팬만으로 인기를 유지하기엔 소비자 시장에서 한계가 있다”며 “기획사들이 성적인 줄타기, 세대적 줄타기의 와중에서 30·40대 남성 팬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한 언어가 바로 삼촌”이라고 말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비평가들은 삼촌 팬 현상을 신자유주의 때문에 나약해진 남성들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과 전형적인 로리타 콤플렉스로 보는 두 가지 견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로리타 콤플렉스로 보이는 것에 부담을 느껴 위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마음 훈훈한 후원자로 남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해석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실제 대부분 삼촌 팬들의 심리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며 “‘삼촌 팬’이란 언어 자체가 ‘오빠 팬’이라는 위험한 언어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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