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엔 ‘89만원 세대’가 있다

심혜리 기자

최근 종방 시트콤, 젊은이의 좌절·분노 그려

<592유로 세대>. 지난해 10월 시작해 최근 종방된 그리스의 시트콤 제목이다. 대규모 재정적자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침체에 빠진 그리스에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의 상실과 좌절, 분노 등을 희화적으로 그렸다. 불확실한 미래를 보여주는 현실과 맞물리면서 시청률이 60%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가디언이 지난 4일 보도했다.

시트콤에 등장하는 20대 중반 주인공 4명의 청춘은 비루하다. 구직센터 직원들과 너무 친해져 이들의 이름을 다 외울 정도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유학하고 돌아왔지만 일할 자리라곤 커피숍 ‘알바’밖에 없다. 구질구질한 현실을 잊기 위해 술집에 가지만 한잔 시킬 돈밖에 없다. 직장을 구하는 것이나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이나 둘 다 영원히 불가능해 보인다. 이들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생존도 사랑도 힘겹기만 하다. 그들에게 남은 선택은 그리스를 떠나는 것밖에 없다. 시트콤은 그리스 청년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보여주면서 끝난다.

그리스의 시트콤 <592유로 세대> 주인공들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출처 | IMDB.COM

그리스의 시트콤 <592유로 세대> 주인공들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출처 | IMDB.COM

‘592유로 세대’는 그리스 정부가 책정한 25세 이하 법정 최저임금인 592유로(약 89만원)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는 20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가 지난 2007년 한국의 20대 비정규직을 소재로 해 지은 책 <88만원 세대>와 유사하다.

시트콤 제목에는 웃지 못할 일화가 담겨 있다. 시트콤은 원래 <700유로 세대>라는 제목으로 방영될 예정이었다. 시트콤을 기획하던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실제 법정 최저임금이 700유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직전인 지난해 9월 정부가 592유로로 삭감함에 따라 제목 또한 긴급히 수정됐다.

이 시트콤의 작가인 람브로스 피스피스(28)는 “과장하지 않고 우리 세대를 가감 없이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본 그리스의 청춘은 암울하다. 16~24세 실업률은 현재 40%에 육박한다. 자국에서 흡수하지 못한 고급 인력들은 유럽 각지로 빠져나간다. 해외 명문대를 어렵게 졸업해도 국내에선 비정규직밖에 얻지 못한다. 그는 “다음달이면 ‘300유로 세대’로 불릴지로 모른다”고 말했다.

마케도니아 대학의 경제지리학자인 로이스 라브리아니디스는 “그리스에서는 현재 점수(학위)를 따면 직업을 얻는다는 기본적인 사회계약이 파기됐다”면서 “젊은이들은 그리스를 떠나거나 정부에 저항하는 형태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낙관적인 것은 시트콤의 결말과 달리 그리스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닥친 부조리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젊은이들이 수도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반정부 집회에 참가해 정부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 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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