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 울리는 노크소리는… ‘빚독촉’ 온 대부업자

김태훈 기자

고시원에는 보통 세 가지가 없다. 고시생이 없고, 햇빛이 없다. 그리고 거주자를 찾는 사람이 없다. 고시원 방문을 두드리는 사람의 기척은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에겐 생경한 것이다. 대개는 어쩌다 방값이 밀리면 찾는 고시원 총무의 노크 소리이고, 그 외에 누군가 거주자를 찾는 소리가 나면 평범한 일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그 평범하지 않은 일들 중에는 빚을 독촉하는 대부업자가 찾아오는 일이 포함된다.

서울시내 한 전통시장 입구에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고 선전하는 대부업체의 광고 전단이 수북이 쌓여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시내 한 전통시장 입구에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고 선전하는 대부업체의 광고 전단이 수북이 쌓여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 총무일을 하고 있는 최인섭씨(29)는 고시원의 우편물 중에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채권추심 관련 서류라고 말했다. 최씨가 일하는 고시원에는 70개 가까운 방이 있다. 우편물의 수가 적지 않지만 휴대전화요금·신용카드대금 고지서 등 통상적인 우편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어떤 돈이든 미납한 이유로 날아오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우편물들 중 상당수는 주인의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 이미 독촉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고시원으로 떠난 사람들에게 오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다. 예상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 등의 이유로 급하게 목돈을 필요로 하지만 당장 통용할 수 있는 돈이 없을 때 대부업체 사무실 문턱을 넘게 된다. 정민국씨(가명·34) 역시 그랬다. 가구공장에서 일하던 정씨는 2011년 7월 가구제품을 회사 화물차에 싣고 운송하던 도중 교통사고를 냈다. 큰 사고는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는 사고 책임을 정씨에게 물으며 피해 운전자와 차량에 대한 배상을 정씨가 모두 떠안으라고 요구했다. 당장 수중에 돈이 없던 정씨는 결국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은 돈과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으로 사고를 처리했다. 빚의 무게에 눌리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사고 처리비용을 두고 회사와 빚어진 갈등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씨는 가구공장을 나와야 했다. 당장 들어올 돈이 없어져 생계도 막막한데 대출금 납입이 늦어지자 추심 전화는 빗발쳤다. 신용카드사를 포함해 정씨가 돈을 빌린 곳은 모두 세 군데, 빌린 원금은 합해서 100만원이었다. 별로 크지 않다면 크지 않다고 할 수도 있는 돈이었다. 그러나 거듭된 독촉전화에 지친 정씨는 앞선 대출금을 갚으려 또 다른 빚을 냈다. 빚 갚으라는 전화와는 달리 돈을 빌려줄 때는 친절했던 대부업체 상담원의 목소리를 정씨는 기억했다.

현재 정씨에게 남아 있는 빚은 모두 더해 800만원가량이다. 100만원이 8배 이상 불어난 것이다. 정씨가 보여준 한 대부업체의 독촉장에는 정씨가 내야 할 돈이 265만원이라고 고지돼 있다. 정씨가 2011년 8월 처음 빌렸던 원금은 20만원이었다. 정씨도 빚을 갚고 싶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70만원을 상환했다. 하지만 높은 이자율 때문에 빚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불어나고 있다. “이제는 갚는 건 포기했어요. 애초에 이렇게 될 줄 모른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그래도 도저히 낼 수 없는 돈을 내라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 아녜요?”

정씨의 월수입은 60만~70만원 사이다. 야간에 공연홍보 벽보를 붙여서 돈을 번다. 한 달에 23만원 하는 고시원 방값을 내고 식비와 교통비로 나가는 돈을 제하면 남는 돈은 얼마 안 된다. 애초에 정씨의 벌이로 갈 수 있는 곳은 고시원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씨는 지금의 고시원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에 또 독촉장이 왔는데 평소와는 약간 다르길래 보니 방문예정통지서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그날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방을 옮기려고요.” 이미 정씨는 휴대전화 요금 연체 때문에 이전에 쓰던 전화는 정지된 상태다. 외국인들이 주로 쓰는 선불폰으로 바꿨다. 전화를 걸 일은 거의 없지만 일하는 데서 오는 전화는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화번호가 바뀌면서 추심전화도 받지 않게 돼 좋아했던 정씨는 대부업체가 방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불안해진 것이다.

정씨처럼 쉽게 떠나고 쉽게 방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는 고시원만한 곳이 없다. 보증금도 없고 다달이 월세만 내면 된다. 대체로 방은 좁지만 자주 옮겨다니느라 짐도 단출한 사람들에게는 넓이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차홍석씨(44·가명)는 고시원을 자주 옮겨 다녔다. 한 곳에서 6개월 넘게 머물지 않으려 한다. 흔히 일수라 부르는 대부업체로부터 크게 당한 뒤로는 혹시라도 누가 찾아오지 않을까 불안하다. 차씨의 방 책상에는 종이상자에 짐이 담긴 채 올려져 있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게 처음 이사올 때부터 짐을 풀지 않았다고 한다.

차씨는 한때 ‘사장님’이었다. 테이블 6개 정도가 들어가는 작은 가게에서 1년 6개월 전까지는 고깃집을 했다. 자취생·하숙생들이 많은 대학 주변 동네라 처음에는 그럭저럭 장사가 됐다. 그러나 2년 전부터 매상이 서서히 떨어지면서 고기를 들여놓기도 어려운 상태가 됐다. 어쩔 수 없이 가게 셔터 틈에 잔뜩 끼여 있던 일수 전단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때가 방학 때라 학생들이 없어서 방학 끝날 때까지만 버티면 다시 장사가 좀 되겠지 생각했는데, 방학 지나도 영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더라고.” 그나마 매일 ‘일수를 찍어줄’ 정도는 됐던 매상은 다음 방학에 완전히 곤두박질쳤다. 차씨는 가게를 정리했고 남은 보증금으로 일수도 모두 갚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내와 자식들을 경기도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보낸 뒤 차씨는 고시원의 작은 방을 빌려 서울에서 다시 일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대부업체가 고시원으로 찾아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방문을 두드리는 대부업체 직원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때 차씨는 반가운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어쨌든 장사하던 몇달 동안 매일같이 보던 친구니까. 그때는 매일 꼬박꼬박 돈을 줬으니까 다툴 일도 없고 웃으며 지냈지. 근데 갑자기 빚이 아직 남았다는 소릴 하는 거야.” 그 직원은 숫자가 잔뜩 적힌 종이와 차씨가 처음 작성했던 계약서를 보여주며 아직 갚아야 할 돈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원금이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화도 내고 사정도 한 끝에 300만원을 더 내기로 합의했다. 매일 5만원씩 60일 동안 갚아나가는 식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노가다(건설현장 일용직)를 뛰었는데, 두 달만 하면 끝나니까 이 악물고 한동안 일했지. 근데 나같이 경험도 없는 잡부한테 매일 일이 있는 게 아니잖아. 하루 이틀 (일수가) 밀리기 시작하면서 그놈(직원)이 하는 짓도 험악해지고, 돈 줘야 되는 기간은 더 늘어나기만 하고…. 그래서 토꼈어(도망쳤어).” 차씨는 미리 봐둔 다른 고시원에 방을 잡은 뒤 그날로 밤중에 짐을 쌌다. 하지만 처음의 고시원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시원으로 옮긴 탓인지 차씨를 우연히 발견하고 뒤를 밟은 대부업체 직원에게 사는 곳을 들키고 말았다. 차씨는 남은 기간의 방값도 포기하고 며칠 만에 또 다른 고시원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차씨의 경우처럼 대부업체가 거주지를 찾아가 추심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특히 차씨는 고시원에 같이 살고 있던 다른 거주자들까지 차씨가 빚에 쫓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이렇게 제3자에게 채무자의 대출 사실을 알리는 행위 역시 불법이다. 그러나 이런 불법추심행위는 끊이지 않고 있다. 당시 차씨가 살던 고시원 주인인 이모씨는 차씨 외에도 빚을 독촉하러 오는 대부업자들이 고시원에서 소란을 피운 일이 몇 차례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 번은 경찰에 신고까지 했는데 경찰도 그 사람들(대부업자)을 밖으로 내보내기만 할 뿐이었다. 그 사람들이 나가면서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무서워서, 그 다음부턴 혹시나 나도 해코지당할까 싶어 신고도 못한다”고 말했다. 법보다 가까이에 있는 실제의 위협을 두려워하는 심리가 적극적인 대응을 막도록 만드는 것이다.

차씨에 대한 불법추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차씨의 행적을 찾지 못한 업체에서 차씨의 부모님 집으로 독촉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본인 외 가족에게 대출 사실을 알리거나 상환을 요구하는 것 역시 불법이다. 하지만 대부업체는 되레 법원에 재판을 걸었고, 얼마 후엔 차씨 부모님 주소로 판결문까지 날아왔다. 고민 끝에 차씨는 당시 살고 있던 고시원으로 자신의 주민등록 주소를 옮긴 뒤 다시 또 다른 고시원으로 이사를 했다. 차씨의 가족도 이사를 하고 전화번호를 바꿨다. 그 뒤로 차씨는 집요한 추심의 고통에서는 벗어났지만 그에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법적 책임이 찝찝하게 남아 있다.

한 노인이 반 평쯤 되는 고시원 방 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 / 강윤중 기자

한 노인이 반 평쯤 되는 고시원 방 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빚의 굴레는 심지어 부모와의 인연도 끊게 만든다. 고시원을 운영하는 서정상씨(64)는 지금은 자신의 고시원을 떠난 한 거주자의 사례를 기억하고 있다. 아직도 날아오는 채권추심 업체의 우편물 때문이다. 서씨에 따르면 유모씨는 그 고시원에서만 6년 넘게 살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고시원을 떠나기 약 1개월 전부터 신용정보업체에서 유씨에게로 오는 우편물이 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유씨의 어머니도 고시원을 찾아와 유씨에게 왜 갑자기 채무상환을 독촉하는 우편물이 발송되는지 물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유씨는 살던 방 열쇠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떠났다. 유씨의 어머니가 몇 차례나 찾아와 아들의 행방을 물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서씨가 그 물음에 대답할 도리는 없었다.

취재를 하기 위해 만난 고시원의 채무자들은 처음엔 기자를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대화가 이어지면서 빚과 관련 없는 이야기도 술술 말했다. 기자의 눈엔 그 모습이 고시원 생활 특유의 고립감 때문인 것으로 비쳐졌다. 그들이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적잖이 벗어나 있다는 인상은 자신이 채무 당사자임에도 “그래도 빚은 갚아야 한다”고 말하는 데서나, 빚 해결을 위한 개인회생·파산 등의 방법 또는 정부의 국민행복기금 등의 대책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데서 감지됐다. 그들은 사회의 안전망에서도 벗어나 있다. 건강보험·국민연금 미납으로 인한 자격상실 통지서는 채무 독촉장만큼이나 자주 그들에게 발송된다. 만일의 사고나 질병, 그리고 노후를 대비할 최소한의 방책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찾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고시원을 전전한 차씨는 기자를 배웅하며 말했다. “다음엔 그냥 한 번 놀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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