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지금부터”라는 영화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 전쟁은 어디?

김경학 기자

입체영상인 3D, 여기에 좌석이 움직이는 것까지 더한 4D 등 영화 관람 시설이 다양해지면서 영화는 이제 볼거리를 넘어 놀이기구 같은 ‘즐길거리’가 됐다.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자들은 영화에 3D의 입체감을 극대화하는 공중 비행 장면, 물속 유영 장면 등을 꼭 첨가한다.

이런 면에서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연출한 피터 잭슨 감독은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오락영화를 만들어내는 ‘천재’ 중 한 명임이 틀림없다. 이 천재 감독이 만든 영화가 또 개봉한다.

영화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호빗: 뜻밖의 여정>에 이은 ‘호빗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다. 호빗 시리즈는 잭슨 감독의 대표작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이다. 프리퀄이란 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을 말한다. 본편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지 설명하는 기능을 하기도 하고, 전편이 흥행해서 후편을 만들고자 할 때 만들어지기도 한다.

엄연히 따지면 호빗 시리즈는 전편이 흥행해서 만드는 후편에 속할 것이다. 전 세계에서 놀라운 흥행기록을 세운 <반지의 제왕> 때문에 한국에서도 ‘호빗’을 기다린 팬들이 많았다. 그러나 호빗 시리즈의 1편 <호빗: 뜻밖의 여정>은 <반지의 제왕>과의 연결을 위한 인물·배경 설명 등에 비중을 많이 둬 강한 자극을 원한 관객들의 기대는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 때문일까. 이번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는 다양한 추격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리뷰]“전쟁은 지금부터”라는 영화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 전쟁은 어디?

■ 전편에 이어 계속되는 여정

전편에서 난쟁이 왕국 ‘에레보르’를 되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 빌보 배긴스(마틴 프리먼)와 간달프(이안 맥켈런), 13명의 난쟁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들 원정대가 향하는 곳은 동쪽의 ‘외로운 산’이다. 외로운 산은 과거 난쟁이 왕국이 있었던 곳이지만, 포악한 용 ‘스마우그’(베네딕트 컴버배치)에 의해 파괴돼 폐허가 됐다. 원정대는 가는 길에 난쟁이들의 목숨을 노리는 오크,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베오른(미카엘 페르스브란트), 거대한 거미 떼, 적대적인 숲속 요정 등을 만나 다양한 모험을 하게 된다.

이번 편에서 다시 등장하는 레골라스(오른쪽)와 새 인물 숲속 요정 수비대장 타우리엘(왼쪽)

이번 편에서 다시 등장하는 레골라스(오른쪽)와 새 인물 숲속 요정 수비대장 타우리엘(왼쪽)

숲속 요정과 만나는 장면에서 <반지의 제왕>의 캐릭터 레골라스(올랜도 블룸)가 다시 등장한다. 레골라스는 스란두일의 아들로, 숲속 요정 왕국의 왕자다. 레골라스와 함께 등장하는 숲속 요정 수비대장 타우리엘(에반젤린 릴리)은 이 영화의 주요 인물 중 유일한 여성 캐릭터다.

원정대는 우여곡절 끝에 인간들이 사는 호수마을을 거쳐 마침내 에레보르의 외로운 산에 다다르고, 영악하고 거대한 용 스마우그와 맞닥뜨리게 된다.

인간들이 사는 호수마을의 전경

인간들이 사는 호수마을의 전경

■ 용처럼 거대하고 화려한 영화

영화의 소제목에 등장하는 스마우그는 용의 이름이다. 스마우그의 실제 크기는 머리만 버스 한 대일 정도로 크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이 영화는 스마우그를 닮은 거대한 영화다.

영화 속 화려한 액션, 원정 길에 펼쳐지는 대자연은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영화의 러닝타임(상영시간)도 161분으로 ‘용의 꼬리’처럼 상당히 길다. “관객들을 이 멋진 여정에 초대할 수 있어서 매우 즐겁다”는 잭슨 감독의 말처럼 관객들은 스크린에서 멀리 떨어져 원정대의 여정을 지켜보는 것을 넘어, 그들의 여정에 동참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원정대가 술통을 타고 협곡을 빠져 나가고 있다.

원정대가 술통을 타고 협곡을 빠져 나가고 있다.

화려한 액션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포레스트 강가에서 벌어지는 전투다. 이곳에서는 원정대를 추격하는 오크, 오크를 추격하는 숲속 요정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이 장면은 실제 뉴질랜드의 펠로루스강과 타우포 호수의 아라티아티아 댐 근처에서 촬영됐다. 뉴질랜드 출신인 잭슨 감독은 원작 소설에서 원정대가 급류에 휘말리는 장면을 보고,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방문한 아라티아티아 댐을 떠올렸다고 한다. 제작진은 “댐을 관리하는 수력회사와 협력한 끝에 실제 댐 방류를 이용해 멋진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다”며 “어렵게 섭외한 만큼 협곡 근처에 카메라를 미리 설치했고, 댐 방류가 진행되는 10분 동안 스릴 넘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전했다.

이 강가 장면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컷은 레골라스가 오크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는 롱 테이크(컷을 나누지 않고 한 번에 길게 촬영한 컷)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의 명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컷에서 레골라스의 매력은 극대화된다. 레골라스 역을 맡은 올랜도 블룸은 이 장면을 가리켜 ‘어마어마한 오크 학살’이라고 표현했다.

피터 잭슨 감독(왼쪽)이 포레스트 강가 장면 촬영을 위해 배우와 스태프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피터 잭슨 감독(왼쪽)이 포레스트 강가 장면 촬영을 위해 배우와 스태프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 찰떡궁합 <셜록> 콤비의 만남

화려한 볼거리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만드는 유명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주연 빌보 역을 맡은 마틴 프리먼은 ‘호빗 시리즈’에 앞서 영국 TV 시리즈 <셜록>의 ‘왓슨’으로 한국 관객에게 잘 알려져 있다. 전편에 비해 비중이 확연히 줄었지만, 능청맞은 빌보를 잘 소화했다.

빌보 배긴스

빌보 배긴스

이번 영화에서 재미있는 점은 <셜록>의 두 주인공이 재회한다는 것이다. ‘셜록’으로 잘 알려진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이 영화에서 포악하면서도 영악한 용, 스마우그를 연기했다. CG(컴퓨터그래픽)로 등장하는 용에 목소리만 녹음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목소리와 용의 움직임을 어울리게 하기 위해 컴버배치는 모션 캡처 장비를 온몸에 달고 연기했다. 이 영화 관계자는 “컴버배치의 연기가 용을 만드는 애니메이터들에게 큰 참고자료가 됐다”고 전했다.

빌보와 함께 영화를 이끌어가는 또 한 명의 주인공, 아니 빌보보다 비중이 더 큰 원정대 대장 ‘소린’(리차드 아미티지)의 연기는 일품이다. 사라진 난쟁이 왕국 에레보르의 왕자인 소린은 왕국을 되찾기 위해 12명의 난쟁이들을 이끈다. 이 역을 맡은 아미티지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불가피하게 의리보다 실리를 더 추구해야 하는 ‘고독한 리더’를 완벽히 소화했다.

난쟁이 원정대의 대장 소린(가운데)과 난쟁이들

난쟁이 원정대의 대장 소린(가운데)과 난쟁이들

영화에서 원정대가 여정을 하는 동안 오크족의 추적은 끝없이 이어진다. 전편에 악역으로 열연한 오크족의 족장 ‘아조그’(마누 베넷)는 이번에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아조그의 아들 ‘볼그’(로렌스 마코아르)가 새로 등장해 원정대의 뒤를 쫓는다. 전편을 본 관객이라면 얼굴이 상흔으로 뒤덮힌 강렬한 인상의 아조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들 볼그의 외모와 비교하면 아조그는 ‘꽃미남’에 해당할 정도로 볼그의 인상은 강렬하다. 앞서 ‘반지의 제왕’에서도 오크족 우르크하이 두목을 연기한 마코아르는 다시 한 번 카리스마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아조그

아조그

■ 스릴 넘치는 추격 장면, 재미있지만 너무 많아…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들 원정대와 함께 환상의 세계로 여정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여정을 떠나기 전 충분한 휴식을 취할 것을 권한다. 2시간41분의 러닝타임은 액션·모험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두 손 들고 환영하겠지만, 일부 관객에게는 다소 벅찰 수 있는 시간이다.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볼거리로 가득하다.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인물들의 대화 장면을 곳곳에 담은 ‘반지의 제왕’과 호빗 1편과 달리, 이번에는 ‘이제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고 역동적인 추격 장면을 빼곡하게 담았다. 정리하자면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는 ‘너무 길어’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끝나면 아쉬운, 더 보고 싶은 영화인 셈이다.

[리뷰]“전쟁은 지금부터”라는 영화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 전쟁은 어디?

영화 포스터를 보면, 마치 영화 전체가 전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전쟁은 지금부터다’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들이 기대하는 전쟁은 아직인 것 같다. 대체 “그들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오는 12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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