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전략적 위안부 발언

손열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지난달 24~25일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방문은 짧기도 하였거니와 특별한 현안이 없었던 터라 세월호 참사에 가려 떠내려간 듯하다. 그 와중에 주목할 만한 일은 24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위안부 관련 발언이었다. 기자의 질문이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관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안부문제를 거론하며 “전시 성노예(sex slavery) 시스템은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침해이며 당시 여성들은 전시가 아니었어도 경악할 만한 침해를 당했다”고 표현하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존중하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정확하고 명쾌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어서 “아베 총리는 이를 인식하고 있으며 일본국민들도 과거는 진솔하고 공정하게 대해야 함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과거사를 솔직하게 풀고 미래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희망”을 피력하였다. 분명 작심한 발언임에 틀림없다. 서울에 오기 전 도쿄에서 역사문제와 관련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성사를 위해 노력하고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지역에 대한 미국의 방위의무를 명확히 한 오바마 대통령이 왜 서울에서 이런 발언을 했을까. 이번 방한은 본래 예정에 없던 것으로 작년 12월26일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후 일본과 외교적 대결 상황에 있던 한국 정부가 미국이 일본 방문 길에 한국도 들러야 한다는 강력한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이 선물을 내놓아야 할 처지라서 정부의 압력에 응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동칼럼]오바마의 전략적 위안부 발언

혹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이 도쿄에서 미·일정상 기자회견 최후 발언으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세계 모든 지도자들에 공통된 행위로서 부전(不戰)의 맹세를 표시한 것이라고 다시금 정당화한 데 대한 분노의 표시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분노의 목소리치고는 사려 깊게 정리된 이 발언은 이미 지난 3월6일 “위안부 혹은 성노예 문제는 아주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성 김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과 일치한다. 미국은 위안부 문제를 여타 역사문제와 분리하여 인권문제로 정의해 가고 있다.

아베 총리의 화답도 흥미롭다. 오바마 발언 이틀 후 지방 시찰 중 한 기자의 위안부 질문에 대해 그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일을 당한 위안부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고 답했다. 미국 등지에서 위안부상 건립을 극력 반대하고 얼마 전까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검증하겠다고 나섰던 행적을 상기하면 코미디 같다. 그러나 이 역시 지난 3월14일 국회 예산위원회에서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으로 전체로 계승하겠으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가혹한 기억을 가진 분들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라는 진술을 반복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발언들을 재구성해 보면 미국과 일본은 지난 수개월간 생각보다 깊은 사전조정을 해 온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이례적으로 “실망했다”고 반발하던 미국은 이제 야스쿠니보다는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고 있고, 일본은 이를 받는 모양새이다.

오바마의 위안부 발언은 도쿄-서울-쿠알라룸푸르-마닐라를 순방하며 한·미·일 협력에 의한 미사일방어체제 구축, 필리핀과 방위협력확대협정, 말레이시아와 일본을 포함한 TPP를 완성하여 중국 견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아시아 전략 속에서 나왔다. 역사문제로 인한 한·일 갈등이 한국을 중국쪽으로 밀어내는 결과는 막아야 한다. 위안부 문제 타결로 한·일관계가 정상화되고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길 원한다는 뜻이다.

미국과 일본이 친 공은 이제 한국으로 넘어왔다. 박근혜 정부는 아베 총리의 영혼 없는 가슴 아픔을 받으며 위안부 문제를 야스쿠니, 교과서, 일제 강제징용, 독도 등 여타 역사문제들과 분리시켜 관계회복을 위한 전략적 협상을 수용할 수 있을까. 대대적으로 일본침략 자료를 뒤지는 중국정부의 전방위 역사공세와 한국 끌어들이기를 과연 적절히 제어할 수 있을까. 올 한해 동북아 국제정치의 주요 관전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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