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업소 감금 상태 탈출 필리핀 여성들, 경찰 ‘출국정지’… 출입국사무소 ‘강제퇴거’

김한솔 기자

돈 벌려다 인신매매 당해

“외국인 악용 인신 구금”

업주·정부 상대 소송 준비

정식 비자를 받고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필리핀 여성들이 성매매 업소에 감금된 채 성매매를 강요받다 단체로 탈출했다. 이 업소를 수사하던 경찰은 도망간 여성들의 출국을 막겠다며 ‘출국정지’ 요청을 했는데, 며칠 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이 여성들에게 ‘강제퇴거명령’을 내리고 한 달 넘게 외국인보호소에 구금한 사실이 드러났다. 동일한 외국인에 대해 출국정지와 강제출국 처분이 동시에 내려지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공익법센터 ‘어필’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새정치민주연합 임수경 의원은 인신매매 피해자인 필리핀 여성 ㄱ씨(24) 등 4명이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상대로 “강제퇴거명령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고 26일 밝혔다.

필리핀에서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던 ㄱ씨(24)는 지난해 9월 ‘예술흥행(E6)비자’를 받고 한국에 들어왔다.

콜센터 일이 주업이긴 하지만 부업으로 노래 부르는 일도 하던 그는 한국에 오기 전 “음식점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이를 믿었다. 그러나 ㄱ씨를 기다린 곳은 성매매를 하는 술집이었다. ㄱ씨의 여권을 뺏은 업소 주인은 손님에게 유사성행위나 성매매를 할 것을 강요했다. ㄱ씨가 거절하면 “넌 창녀고 돈 벌러 왔으면 시키는 대로 하라”며 욕을 하고 때렸다. 경찰 단속에 대비해 ‘롤플레잉(역할극)’을 하기도 했다.

ㄱ씨 등은 지난 3월 받은 첫번째 경찰 조사에서 업주가 시키는 대로 허위진술을 하고 업소를 탈출했다. 경찰이 임수경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경찰은 ㄱ씨 등에 대해 3월13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10일·30일짜리 출국정지 요청을 법무부에 했다. 성매매업소 수사를 위한 주요 수사대상자로서 출국을 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ㄱ씨 등이 4월5일 체포되자 7일 이들에 대한 강제퇴거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들을 당장 강제퇴거시키지 않고 “다시 도망칠 우려가 있다”면서 화성외국인보호소에 한 달 넘게 구금했다. 인신매매돼 성매매를 강요당한 필리핀 여성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구금돼 있는 동안 업소 주인의 부인이 찾아와 허위진술을 강요하기도 했다.

출국정지 상태인 외국인에게 강제퇴거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가능하다”고 답했지만 “다만 강제퇴거명령을 집행할 때 출국정지 상태이면 안된다”고 말했다.

ㄱ씨 등의 대리를 맡은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이 여성들은 성매매의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외국인 인신매매 피해자”라면서 “성매매 업주에 대한 수사를 하기 위해 외국인이라는 신분의 취약성을 이용해 편법적인 방법으로 인신을 구금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돈을 벌러 왔다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언제든 강제퇴거될 상황에 처한 ㄱ씨 등은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보호소에서 임시로 풀려나 쉼터에서 생활하며 업주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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