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지식인’ 역사학자 제임스 팔레 별세

‘행동하는 지식인’ 역사학자 제임스 팔레 별세

미국 내 한국학의 대부인 역사학자 제임스 팔레 교수가 지난 6일 저녁(현지시간) 타계했다. 향년 72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은 8일 팔레교수가 미국 시애틀의 한 요양원에서 뇌혈관 관련 지병으로 치료를 받다 숨졌다고 밝혔다.

조선후기 전공자인 팔레 교수는 2002년부터 2년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원장을 맡았으며 1980년대 초반에는 전두환 군부독재 반대시위에도 참여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사망한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에서 팔레 교수로 이어지는 학맥은 ‘팔레 사단’으로 불릴 정도로 미국 학계에서 영향력이 크다. 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 카터 에커드(하버드대), 존 던컨(UCLA), 마이클 로빈슨(인디애나대) 교수 등 미국의 한국사 전공자들이 그의 지도 또는 도움을 받았으며 한국 내에서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팔레 교수의 제자로 유명하다.

생전에 팔레 교수는 조선의 실학사상이 정치·경제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1968년 하버드대에서 흥선대원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7세기 대표적 실학자인 반계 유형원에 관한 연구논문 등을 발표한 바 있다. 팔레 교수는 저서 등을 통해 “조선이 노예제 사회였다”고 분석해 국내 학계에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자’ 또는 ‘정체성론자’로 비판받기도 했다.

워싱턴대 재학 시절 팔레 교수 밑에서 김일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홍구 교수는 팔레 교수에 대해 “그 자신이 훌륭한 학자이면서 동시에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다”고 회고했다. 한교수는 “논문을 지도했던 팔레 교수는 200쪽이 넘는 코멘트를 써주었다”면서 “예상되는 비판들을 하나하나 적어주시며 ‘이런 책들은 읽어봤느냐’까지 그렇게 상세한 코멘트는 아마도 지구상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교수가 팔레 교수 밑에서 논문을 쓰게 된 계기는 팔레 교수가 보인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이다.

“군사독재 시절 정부가 돈으로 해외 학자들을 회유하려 했지만 팔레 교수만 그 돈을 안 받았어요. ‘돈 받고는 바른 소리를 할 수도 없고 남북한 사이에서 균형 잡힌 자세를 취할 수도 없다’면서요. ‘내가 하는 것이 남한학(South Korean Studies)도 북한학(North Korean Studies)도 아니고 한국학(Korean Studies)인데, 어느 한쪽에 기울어서야 되는가’라고 하셨습니다.”

팔레 교수는 85년 인권단체 ‘아시아워치’에 ‘한국의 인권’이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군부독재에 항의했으며 최근에는 한국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는 “파병이 대북관계에서 장기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팔레 교수는 55년 하버드대 학부를 마친 뒤 미육군 군사언어학교에 들어가 우연히 한국어반에 지원한 것이 계기가 돼 57년부터 1년간 영등포·의정부 등지에서 군 복무를 한 것이 한국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인연이 됐다. 부인 제인 여사와 1남1녀를 두었다.

〈손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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