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공장 ‘생성형 AI’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도둑질은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짓을 말한다. 당연히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사회적으로도 부정되는 행동이다. 그래서 들키지 않도록, 몰래 한다. 그런데 ‘생성형 인공지능’(이하 AI)은 대놓고 한다. 인간 창작자들이 공을 들여 만들어놓은 데이터를 훔쳐 제 것인 양 내놓는 뻔뻔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합당한 제재가 없거나 있다 해도 턱없이 미약하다. 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지만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것도 아니다. 아직 기준조차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작자 허락 없이 사람의 정신적 결과물을 수집해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도작(盜作)을 유도함으로써 창작생태계를 파괴하는 행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인 ‘미드저니’를 포함한 ‘스테빌리티 AI’, ‘달리2(DALL-E 2)’ 등의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AI 시스템은 창작자의 콘텐츠를 무단 습득해 표절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장’이다. 이들은 타인 소유의 재산을 슬쩍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삼고, 그 데이터로 장사를 하지만 최소한의 보상도 말하지 않는다.

일부 미술가들은 그 공장에서 필요한 만큼 이미지를 갖다 쓴다(생성한다). 텍스트만 입력하면 AI가 알아서 그럴싸하게 그림을 그려주니 기초실력은 부족해도 된다. 작업 전 굳이 스케치를 할 필요도, 비싼 캔버스와 물감을 낭비할 이유도 없다. 실수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복해서 명령어(프롬프트)를 넣으면 그만이다. 이쯤 되면 미술가라기보다는 프롬프트 엔지니어에 가깝다.

하지만 키보드 미술가라는 비판에도 그들의 활동 영역은 넓어지고 있다. 새로운 매체를 탐구하는 작가들을 지원한다며 미술관이 나서고, AI를 기반으로 한 미디어아트와 인터랙티브 조각, 회화 전시도 이어지고 있다. 미래 예술과 기술의 상호작용을 명분으로 한 대기업과 예술가의 협력 사례 또한 드물지 않다.

문제는 예술가를 비롯한 AI 추종자들의 경우 창작 체계 교란에 대한 어떤 성찰도 내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AI가 제공하는 데이터가 다른 창작자들에게는 고통의 산물이라는 사실도 외면한다. 특히 AI를 이용하는 것이 인간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음을 간과하며,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용이하다는 이유로 저작물 절취에 따른 죄책감도 멀리한다.

이런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빅테크 기업이야 결국 수익이 목적이니 엄격한 윤리적 태도를 지향하진 않겠으나, 예술가들은 달라야 한다.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에 가장 먼저 앞장서야 하고, 동종 계열에 종사하는 창작자들의 노력과 고민의 시간들을 무단 도용해 얻게 될 예술적 성과가 옳은지를 생각해야 마땅하다.

AI를 활용한 작품은 아직 예술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기존 자료를 학습해 표면적 유려함으로 산출한 전산 프로그램을 예술이라 하진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에 의한 창작 역시 AI처럼 경험과 지식에 의한 학습에 영향을 받지만 인간의 창작물엔 학습된 것 외에도 상상력, 영감, 감정, 인지 능력 등이 개입된다. 데이터에서 패턴을 추출하고 도상을 분류해내는 AI와는 완전히 다른 체계다.

만약 일부만 AI로 작업하고 나머지는 사람이 직접 했다 해도 변하는 건 없다. 작든 크든 본질은 도용이자 베낀 것이며 다른 창작자들의 작품을 도둑질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은 같다. 자칫 AI를 훈련하는 기업들의 탐욕을 채워주는 조력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바뀌지 않는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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