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가는 대한민국]셰르파族 ‘히말라야의 영웅’을 낳다

에베레스트 자락의 고산마을 남체 바자르는 히말라야에서 셰르파족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에베레스트 자락의 고산마을 남체 바자르는 히말라야에서 셰르파족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1953년 5월29일 에베레스트에서 타전된 한장의 사진은 전세계를 열광케 했다. 세계 최초로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날. 나부끼는 깃발을 들고 정상을 밟은 사진 속 인물은 힐러리가 아닌 텐징 노르가이였다. 그는 자신을 “셰르파족 출신”이라고 했다. 히말라야 한 부족의 이름이었던 셰르파는 이제 히말라야 등반 가이드를 뜻하는 보통 명사가 됐다.

▲히말라야 가이드 셰르파=히말라야 자락엔 셰르파족만 사는 것이 아니다. 라이족, 타망족, 마가르족 등이 히말라야에 거주하며 네팔 전체로는 70개 이상의 부족이 있다. 셰르파족은 약 7만명. 총 2천4백만명인 네팔 인구의 1%에도 못미치는 숫자다.

셰르파란 ‘동쪽에서 온 사람’이란 뜻. 셰르파족은 16세기 티베트 동부 캄 지방에서 에베레스트 남쪽으로 넘어왔다. 언어, 복장, 종교, 생활풍습이 티베트와 비슷하다. 이들이 고산 가이드로 인기를 얻은 것은 20세기초. 셰르파족 일부가 인도 다르질링 지방에서 공사판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마침 등반 준비를 위해 다르질링을 찾은 영국 등반대들이 고산 기후에 익숙한 이들을 가이드로 고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히말라야 등반 거점인 솔루·쿰부 지역의 셰르파족은 약 1만명이다. 이들은 아직까지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자동차도 없고, 자전거도 없다. 야크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자 짐꾼이다. 산비탈을 깎아 계단식 밭을 만들고 감자를 심는다. 해발 3,450m의 남체 바자르는 쿰부의 중심지다. 매주 토요일 장이 선다. 감자, 야채, 쌀, 전통의상뿐 아니라 카트만두에서 공수해 온 콜라, 사이다, 맥주, 등반용품까지 없는 게 없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셰르파는 부자다. 평균 소득이 네팔 1인당 국민 평균소득의 5배를 웃돈다. 셰르파족이 소유한 호텔, 트레킹 회사만 300개가 넘는다. 카트만두와 루클라를 연결하는 한 항공사의 소유주도 셰르파다. 그래서 셰르파족 출신 포터는 차츰 사라지는 추세다. 셰르파들은 트레킹 회사를 운영하거나 등반 가이드를 맡고, 짐을 나르는 포터는 라이족 등 다른 종족들이 맡고 있다.

▲셰르파 등반가들=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사망한 사람의 3분의 1가량이 셰르파다. 이들은 히말라야 등반 초기부터 포터 및 가이드로 명성을 얻었다. 가난한 목동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텐징 노르가이는 셰르파를 넘어 히말라야의 영웅이 됐다. 그는 셰르파가 단지 짐꾼이 아닌 등반가임을 전세계에 알렸다.

셰르파 출신 파상라무(당시 32)는 1993년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비록 하산길에 악천후로 사망했지만 그의 이름은 네팔 곳곳에 남아 있다. 자삼바 히말봉은 ‘파상라무봉’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파상라무 고속도로, 파상라무 기념관이 잇달아 생겨났다. 카트만두의 파상라무 등반재단은 숙련된 여성 등반가를 양성하고, 네팔 여성과 어린이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비영리 단체다. 2004년엔 셰르파 펨바 도르지가 8시간10분 만에 에베레스트에 올라 최단시간 등정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카트만두에서 한국식당 ‘빌라 에베레스트’를 운영하는 앙도르지(45)는 국내에 가장 널리 알려진 셰르파. 한국요리와 한국말에 능통한 그는 80년대 후반부터 엄홍길, 박영석 등 국내 대표 산악인들의 히말라야 등반에 요리사로 동행했다.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왼쪽)와 텐징 노르가이.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왼쪽)와 텐징 노르가이.

▲셰르파와 힐러리=히말라야를 다녀간 수많은 등반가 중 셰르파에게 가장 추앙받는 사람은 에드먼드 힐러리다. 셰르파족의 강인함과 용기, 그러나 열악한 생활조건에 주목한 그는 60년 셰르파를 돕기 위한 민간 재단 ‘히말라야 트러스트’를 세웠다. 히말라야 트러스트는 61년 쿰중 학교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학교 30여곳, 병원 2곳, 보건소 15곳 등을 세웠다. 또 호텔 건설 등으로 황폐해진 에베레스트 국립공원 내에 1백만그루의 나무를 심고, 매년 100명 이상의 셰르파족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남체 바자르의 셰르파 학생들은 지금도 매일 2시간30분을 걸어 쿰중의 힐러리 학교에 다닌다.

힐러리는 여전히 뉴질랜드·미국·캐나다 등에서 강연하고 기금을 모아 셰르파족을 돕고 있다. 75년 그의 아내와 딸이 쿤데 셰르파 마을에서 병원을 짓고 있던 힐러리를 방문하러 오는 길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영웅’의 비극을 추모하기 위해 셰르파들이 내건 색색깔 깃발은 아직도 쿤데에 남아 있다.

▲히말라야의 전설, ‘예티’=많은 히말라야 등반가들은 등반 도중 생물체의 발자국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이 발자국은 전설 속 ‘예티’로 추정된다. 예티는 사람과 영장류를 섞어놓은 듯한 모습의 ‘괴물’로 북아메리카의 빅풋, 사스콰치와 비슷하다. 전설에 따르면 예티는 민가를 습격해 가축을 해치고 여자들을 잡아간다고 한다. 히말라야의 여러 사원에서는 예티로 추정되는 생물체의 박제를 보여주고 돈을 받는다. 히말라야에서는 항공사 이름, 패키지 여행상품, 심지어 아이스크림 상표에도 ‘예티’란 이름이 쓰인다.

힐러리, 라인홀트 메스너 등은 예티 발자국을 목격하고 직접 탐사에 나서기도 했다. 힐러리는 59년 히말라야 설인 탐사대를 조직했으나 발자국밖에 수집하지 못했다. 86년부터 14년에 걸쳐 예티를 추적한 라인홀트 메스너는 예티가 해발 3,600~5,700m에 서식하며 ‘체모’ ‘드레모’ 등으로 불리는 티베트 갈색곰이라고 결론내린 바 있다.

〈글 최명애기자 glaukus@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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