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된 인권’ 정신병원]2. 돌고도는 환자들

알코올 중독자인 김모씨(44)는 정신병원에서 소위 ‘회전문 환자’로 통한다. 이는 최초 입원한 정신병원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의 다른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를 뜻한다. 김씨가 전남 벌교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한 건 2004년 4월. 김씨는 이후 2년간 담양과 해남, 광주 등 4개 지역을 떠돌며 5개 정신병원을 옮겨 다녔다. 전원(轉院)이 있는 날 아침에는 옮겨갈 병원에서 보낸 응급차가 병원 앞에 대기한다. 전원은 입원한 지 5~6개월이 경과할 때마다 주기적으로 이뤄졌다.

[‘감금된 인권’ 정신병원]2. 돌고도는 환자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계속 입원을 해야 할지, 퇴원을 해도 되는지를 6개월에 한 번씩 정신보건심판위원회의 판정을 받는다. 김씨가 ‘이삿짐’을 싼 시기는 이같은 심판위원회 판정을 앞두고서다. 결국 김씨는 입원 후 퇴원 여부를 심사할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한 채 2년4개월을 속절없이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있다.

김씨는 “퇴원 뒤 다른 병원에 재입원하기 위해서는 매번 보호자동의서를 새로 받아야 하는데, 먼저 입원을 시키고 나중에 팩스나 우편으로 동의서를 받는 편법이 동원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병원측이 임의로 전원 조치를 해 심판위원회 심사에서 배제되는 바람에 사회에 나가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류상으로만 입·퇴원이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임모씨는 부산의 한 정신병원에 10년가량 입원하고 있는 장기 환자다. 그러나 서류상으로는 퇴원처리가 된 후 재입원한 환자로 둔갑돼 있다.

또 다른 부산의 정신병원은 노숙자 출신의 행려환자를 같은 의료재단 내 자매병원에 재입원시켰다. 재입원에 대해 보호의무자에게 동의서를 받았기 때문에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행려환자의 보호의무자는 해당지역 지방자치단체장. 그런데 재입원을 시키는 과정에서 병원측은 단체장과 재입원에 관한 면담을 하지 않았다. 담당의사가 ‘치료 중 환경변화를 위해 전원이 필요하다’고 소견서를 작성, 지자체에 통보하면 전원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환자 본인의 동의는 생략됐다.

이처럼 정신병원이 주기적으로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거나 입·퇴원 조치를 반복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환자 보호자의 요구가 크다. 환자를 퇴원시키라는 정신보건심판위원회의 결정이 나도 보호자가 환자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의 70%가 의료급여 1·2종의 혜택을 받는 극빈층으로, 이들은 퇴원 이후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된다. 정신병원의 한 관계자는 “데리고 나가서 보호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니 계속 입원을 시켜달라는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이유는 정신병원의 수입구조 때문이다. 환자 70%가 극빈층인 만큼 정부는 이들이 입원한 정신병원에 하루 3만원씩의 지원금을 준다. 6개월이 경과하면 지원금의 3~6%가 삭감돼 지급된다. 이처럼 줄어드는 지원금을 피하기 위해 ‘환자간 신·구 교대’가 이뤄지는 것이다. 결국 병원의 수익과 보호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중앙정신보건지원사업단 서동우 연구위원은 “단순한 퇴원조치로 ‘밀어내기’만 하면 재입원과 회전문 현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위원은 “환자 보호자의 대다수인 부모가 사망하고 나면 형제나 친척이 돌봐야 하는데 그들에게 보호책임을 지우는 것은 과도하다”면서 “개인이 아닌 정부가 나서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야 개선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현철기자 cho1972@kyunghyang.com〉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