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개성 죽이는 한국인

〈매튜 클레먼트 / 장안대 영어과 교수〉

한국기업에서 일을 시작한 친구는 첫 회의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분위기라기보다는 보고로 시작해서 보고로 끝나거나 되도록 서로 말을 아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발언내용의 길이는 대부분 비슷한 데다 적당히 긴장된 상태에서 상사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회의실에서 나와 휴게실로 장소를 옮기기만 하면 그때부터 프로젝트에 대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주장과 흥미로운 제안이 술술 쏟아져나오기 시작해서 그 친구는 아예 휴게실에서 회의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에 살아보니]스스로 개성 죽이는 한국인

그 친구와 내가 갖게 된 공통적인 생각은 한국인들은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는 걸 그다지 원치 않고 남에게 특이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과제물을 내주면 우선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어떻게요?, 어떤 식으로요?”들이다. 나는 내가 학생들에게 과제물에 대해 이해를 시키지 못한 부분이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리포트를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느냐고 물으면 역시 나도 대답할 말이 없다. 그냥 자신의 방식과 생각대로 하면 될텐데 학생들은 반드시 정해진 어떤 룰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 하나같이 어떤 형식인지를 요구한다. 예상대로 내가 거둬들인 학생들의 리포트는 그다지 특별한 게 없다. 겉으로 볼 때 유난히 ‘튀는 차림’을 하고 다니는 학생이라고 해서 그들 리포트까지 특별하지는 않다. 나는 어떻게 이 모든 학생들이 비슷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해진다.

주위에서 영어공부를 하려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뚜렷하게 목표하는 바가 있다기보다는 ‘국제화시대에…남들이 다들 하는 거니까’라고 답할 때가 있다. 물론 이유가 없는 공부는 없겠지만 대다수가 지향하는 게 있다면 나도 그쪽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평소에는 양성애자나 동성애자에 대해 상당히 관대하게 얘기하면서도 지인 중에서 조금이라도 그런 성향의 친구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이들의 화제는 온통 그 ‘특이한’ 친구에게로 쏠린다.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고 소수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잘도 외치던 그들은 막상 자기들만큼 술을 못하는 친구에게 핀잔을 주거나 심지어 억지로 술잔을 들게 만들기도 한다. 한국에서, 그것도 남자가 술을 먹지 않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지속하기는 정말이지 너무 힘이 든다. 서로서로 ‘내 방식대로의 삶’을 그냥 놔주지 못하는 것 같다.

1960년대 미국과 옛소련이 우주개발경쟁 당시 미국 우주선을 타고 갔던 사람들은 기록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유는 우주에는 중력이 없어서 일반적인 볼펜으로는 글씨가 안 써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미국은 많은 돈을 들여 소련보다 일찍 우주에서 쓸 수 있는 볼펜을 개발해냈다. 볼펜 끝에 에어탱크를 달아서 잉크를 아래로 밀어주는 원리였다. 미국은 이 볼펜으로 우주개발 기록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소련에서는 이 문제를 단돈 몇 달러로 해결했다. 그건 다름 아닌 연필이었다. 소련은 미국이 개발하는 볼펜에 관심을 갖지 않고 ‘내 방식’을 찾아냄으로써 의외로 아주 간단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한국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부지런하고 늘 지나칠 만큼 바쁘게 산다. 그러나 패션이나 문화예술과 같이 창의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되지 못하는 건 한국인들 스스로의 ‘개성 죽이기’가 그 원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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