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에도가와 란포 (1894~1965)

임지호 | 북스피어 편집장

日 추리문학의 아버지 “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

▶국내출간작 :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3> <소년탐정단 1~3> <외딴섬 악마> <음울한 짐승>

[이 작가가 수상하다](2) 에도가와 란포 (1894~1965)

“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

에도가와 란포는 현대 일본 미스터리의 기반을 닦고 대중화시킨 일본 추리 문학의 아버지다. 본명은 히라이 다로, 에도가와 란포라는 이름은 에드거 앨런 포에서 따온 필명이다. 그는 아직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대중들에게 뿌리 내리기 전 영미 추리 소설의 영향이 짙은 탐정 소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신청년’이라는 잡지에 ‘2전짜리 동전’을 발표하며 추리 작가로서 데뷔한 것은 온갖 직업을 전전하다 실직하던 때. 그간 키워왔던 미스터리에 대한 정열을 불태울 기회로 삼아 군색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었다. 데뷔와 함께 그는 주옥 같은 단편들을 발표하며 유명해졌는데, 그때 발표한 작품들이 ‘심리시험’ ‘D언덕의 살인 사건’ ‘두 폐인’ 등이다.

에드거 앨런 포가 역사상 최초의 탐정 오귀스트 뒤팽을 탄생시켰듯, 란포 또한 이 작품들 속에서 아케치 고고로라는 일본 최초의 명탐정을 낳았다. 그는 물리적 증거보다 범죄 심리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해결하는 새로운 모습의 탐정이었는데 범인을 잡아 정의를 실현하기보다 인간의 어두운 진실을 파헤치는 인물이다. 나중에는 세련된 신사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책에 묻혀 사는 가난한 청년 아케치 고고로의 초창기 모습은 마치 요코미조 세이시의 탐정 긴다이치 고스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아케치 고고로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탐정 긴다이치 고스케보다는 한국에 덜 알려져 있지만 지금까지도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소년 탐정 김전일>과 쌍벽을 이루는 추리 만화 <명탐정 코난>에 등장하는 어리숙한 탐정의 이름이 바로 모리 ‘고고로’이며(주인공인 소년 탐정의 이름은 ‘에도가와’ 코난이다), 김전일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아케치 경감 또한 아케치 고고로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붙인 이름이다.

아케치 고고로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소년탐정단’과 ‘괴도 이십면상’이다. ‘소년탐정단’은 당시 청소년을 위한 미스터리로 기획한 시리즈로 지금까지 누계 1500만부를 넘을 정도의 인기를 누렸으며 여기 등장한 변신의 귀재 괴도 이십면상은 홈즈, 뤼팽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캐릭터가 되어 현재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바꾸며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고 있다.

에도가와 란포는 이렇게 많은 인기를 누렸지만 후기로 갈수록 본디 추구했던 본격 미스터리와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오히려 독자와 평론가들은 그가 가진 음울하고 기괴한 분위기에 더 매료되었다.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는 결국 “살아가는 것은 타협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이것이 작품의 색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한 초기 작품들과 달리 점점 그로테스크하고 엽기적이기까지 한 묘사를 통해 인간의 깊은 곳에 내재한 어두운 심리를 드러내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란포가 사인을 할 때 써주곤 했다는 ‘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이라는 유명한 문구는 이러한 몽상가적인 작품 성향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작가 자신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고뇌와 고독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작품들 속에서 변신과 광기, 동성애, 에로티시즘, 거울, 미궁 등 현실에서는 닿을 수 없는 공포와 수치심이 뒤얽힌 아름다움에 집착했는데 이런 성향이 그를 더욱 특별한 작가로 만들었다.

전쟁 후에는 창작보다 평론과 미스터리의 발전에 힘을 썼다. 일본탐정작가클럽(현재의 일본추리작가협회)을 창립하고 신인 추리 작가의 등용문 에도가와 란포 상을 만들기도 하는 등 미스터리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인식을 바꾸고 일본을 현재의 미스터리 대국으로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에도가와 란포가 없었다면 일본 미스터리의 역사는 지금보다 100년쯤은 뒤처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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