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성역’깨는 전사에서 ‘소통의 전도사’로

김종목기자

1990년대 초반 언론 인터뷰와 기고를 통해 공론장에 등장한 그는 에두르지 않는 직선의 문체를 선보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언론과 대적하던 지식인이 드물던 시절 언론 개혁의 화두를 들고 나왔다. 신문의 독자란부터 사설까지 텍스트를 낱낱이 까발리는 특유의 ‘문헌 조사 방법론’을 선보인 것도 이때였다. 이미 조·중·동 등 보수언론을 ‘극우언론’으로 규정하고, ‘이념적 반동성’을 지적했다. 이 같은 강준만의 활동은 이후 안티조선의 주요 논거가 됨으로써 안티조선 운동을 촉발시킨 주인공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비평 대상은 점차 정치·경제·문화·사회 전반으로 확장된다. 허위의식으로 점철된 한국 지식 사회, 주류 사회의 ‘성역과 금기’를 깨트리는 게 당시 강준만의 사명이었다.

강준만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린 것은 95년 출간한 <김대중 죽이기>였다. 정치인과 선거, 지역감정의 문제를 도발적으로 제기했다. ‘대중(大衆) 지식인’이 아니라 ‘대중(大中) 지식인’, ‘전라도 광신자’라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역주의 문제의 본질을 계속 헤집고 다녔다. 지역주의에 관한 문제 의식은 2002년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에서 심화돼 나타났다.

강준만은 2명의 대통령 당선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 ‘지식인’이자 ‘정치 비평가’였지만 지식 사회를 떠나지 않았다. ‘강준만 교수’로서 비판·비평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강준만’을 규정하는 개념어가 된 ‘실명비판’을 통해 수많은 유명 인사들에게 칼과 창을 휘두르며 ‘90년대’를 관통했다. 지연과 학연 등 비이성적·비합리적 기제로 작동되는 지식 사회의 폐부를 찌르고, 난마 같은 기득권의 카르텔을 베어낼 듯한 기세였다. 전투적 게릴라 지식인, 지식 사회의 사무라이, 문화 반란의 기수란 호칭이 따라붙었다.

강준만의 주무기는 논리와 이성이었지만, ‘전사’답게 분노와 적개심도 공공연히 드러냈다. 피아 구분과 시비도 뚜렷했다. 97년 창간한 1인 저작물인 ‘인물과 사상’ 시리즈를 통해 ‘이성과 분노’에 기반한 강준만식 글쓰기는 정점에 이른다. 강준만은 98년 언론 인터뷰에서 “감정도 논리다. 내 글의 원동력은 분노다. 당신들이 논리 찾고 대안 찾으며 머뭇거리는 동안 언제 저 나쁜 자를 응징하겠느냐”고 말했다. 김대중(조선일보 주필)·조갑제 등 보수 인사뿐만 아니라 백낙청·손호철 등 진보적 지식인들에게도 칼날을 겨눴다. 독자들은 열광했고, ‘강준만 신드롬’이 일었다. 적들도 많아졌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육두문자까지 마다하지 않는 독설 때문에 ‘테러리스트’라는 말까지 나왔다. ‘오만과 독선’은 강준만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당시 강준만에게 ‘소통’의 여지는 없어보였다. 한 인터뷰에서는 “비판하는 인물들을 설득할 생각이 없다. 나는 그들을 폭격하겠다”고 했다. “논쟁보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없다”는 그의 지론은 2000년대 들어서도 계속됐다.

시비와 호오가 분명했고, 양비론을 언제나 용납하지 않을 것 같던 강준만이 드디어 변했다. 2004년 초반 그는 ‘중간’과 ‘소통’에 관한 고민을 드러낸다. 전혀 그답지 않은 주제들이었다. 강준만은 김구 선생의 좌우 통합 노력을 예로 들며 “중간파를 다시 보려는 진지한 시도를 하지 않는 한 분열과 대립의 수렁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분당 사태는 ‘중간과 소통’에 관한 문제 의식을 깊게 했다.

강준만은 한국일보 칼럼(2004년 3월15일자)에서 “저를 존경한다던 분들이 열린우리당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제게 돌을 던지고, 어떤 분들은 제가 대통령님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로 호되게 비난한다. 대화 불능의 상태다. 도무지 저 같은 중간파가 설 땅이 없다”며 절필을 선언했다. 또 “나의 퇴출만이 해법”이라며 ‘인물과 사상’을 33호를 끝으로 폐간했다. 한국 사회의 이분법에 대한 절망의 표출이었다.

이후 ‘교양주의’ 저술을 병행하면서 ‘소통론’도 구체화해 나간다. ‘소통의 정치경제학’, ‘중간이 없는 이유’ 등의 ‘중간과 소통’에 관한 칼럼을 꾸준히 내놓았고, 2008년 9월에는 원용진(서강대), 조흡(동국대), 이창근(광운대) 등 언론학자와 함께 ‘소통포럼’을 만들며 소통의 전도사로 나섰다. 최근에는 소통에 관한 글을 모은 <대한민국 소통법>을 냈다. 강준만은 책 머리말에서 “소통을 역설하는 주장은 지지를 얻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기 주장을 더 앞세우는 모든 세력들로부터 비난받기 십상”이라며 “잘 알면서도 ‘커뮤니케이션 코리아’를 외치는 건 우리 인간이 (소통의) 희망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항상 시대를 한발 앞서 갔던 그였다. 그가 최근 소통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