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이스라엘은 이기고, 팔레스타인은 지는 이유

백승찬 기자

웰컴투 뉴스비즈니스…요리스 루옌데이크 지음·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344쪽 | 1만4000원

왜 이스라엘은 이기고 팔레스타인은 질까. 아랍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엉겁결에 네덜란드 언론사의 아랍 특파원이 된 요리스 루옌데이크는 이 승패가 미디어 전쟁에서 갈리기 시작한다고 본다.

[책과 삶]이스라엘은 이기고, 팔레스타인은 지는 이유

2000년 9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협정을 산산조각낸 2차 인티파다가 일어났다. 당시 이스라엘 리쿠드당 당수 아리엘 샤론이 무슬림 성지 알 아크사를 방문하자, 팔레스타인이 항의하고 이스라엘이 진압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레바논에 있던 루옌데이크는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의 주재기자를 돕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초기엔 팔레스타인 측에서 사상자가 주로 나오다가, 이후 이스라엘 예비군 두 명이 팔레스타인 군중에게 린치를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시기를 즈음해 루옌데이크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구역에 있는 5성급 호텔의 프레스센터에 들어섰다. 이스라엘은 ‘잘 차려둔 밥상’을 제공했다. 린치 장면의 사진, 죽은 이스라엘 병사의 묘지로 가는 지도,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응급조치를 해주는 이스라엘 병사의 자료 사진, 세계의 주요 언어로 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대변인의 연락처, 이스라엘의 점령을 정당화하는 역사적 자료들, 게다가 공짜 커피와 과일 쥬스와 빵과 샌드위치까지. 도착하자마자 방송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기자들은 이 ‘밥상’을 냉큼 받았다.

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텔레비전 제작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다. 프레스센터는 없고, 정보부 사람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쩌다 만난 사람은 카메라가 돌아가면 5분이 넘게 혼자 이야기했다. 뉴스의 총분량이 3분12초를 넘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희생자의 장례식 풍경도 다르다. 이스라엘의 참석자들은 흐느끼고 가족 중 한 사람이 침착하게 애도의 말을 전한다. 반면 팔레스타인 아버지는 “이게 정의야? 내 딸은 열한 살인데!”라고 절규하며, 공중에 조총을 쏘아댄다. 아랍인들은 남에게 약한 면모를 보이지 않는 대신 집에서 슬퍼한다. 서양의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이스라엘의 장례식 풍경에 훨씬 익숙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서방의 미디어를 움직이는 유대인의 음모’가 있다고 의심하지만, 루옌데이크는 음모는 없으며 “이스라엘 정부가 쥐고 있는 카드 패가 아주 많다는 편이 사실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사실 팔레스타인은 출발부터 불리하다. 서방 언론의 프레임이 아랍 세계에 불리하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신앙을 토대로 정치적 방향을 설정하는 무슬림은 ‘근본주의자’라고 불리지만, 그와 같은 종교적 확신을 가진 조지 W 부시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으로 보도된다. 아랍의 지도자가 서구 정부와 충돌하면 ‘반서구적’이라 불리지만, 서구 정부는 ‘반아랍적’이라 불리지 않는다.

그래도 기자라면 그 프레임을 깨고 ‘진실’을 보도해야 하지 않는가. 루옌데이크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토로한다. 이것이 그가 5년 만에 그 직업을 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아랍권 독재국가에서의 끔찍한 취재 경험을 돌이킨다. 힘들게 만난 고위 관료는 표준 질문에 대한 표준 답변만 한다. “병원 상황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면 “신은 위대하십니다”라고 답한다. 공포에 질린 주민들은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지만, 이 공포를 입증할 수 있는 수치와 통계는 없다. “거의 매달 오스카상을 싹쓸이”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스라엘의 미디어 전쟁에서도 저자는 패잔병이 됐다. 이스라엘이 이럴진대, 디즈니랜드를 만든 미국의 홍보기구는 얼마나 강할까. “기자들은 컨베이어 벨트의 한쪽 끝에 서 있으면서 만들어져 나온 흰 빵을 자신들이 구운 척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5년간의 기자 생활 동안 가장 많은 반응을 끌어낸 한 기사를 보여준다. 서구의 주요 뉴스 특보가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전쟁 상황을 보드 게임처럼 보여주는 동안, 루옌데이크는 폭탄 투하 지점에 있던 자신의 경험담과 팔레스타인 민중의 이야기를 에세이처럼 적었다. “삶이 계기판 앞이나 조종석에 앉아 있는 누군가의 손에 쥐여 있다는” 무력감, 언제 방공호에 달려가야 할지 몰라 자기 전에 몰래 다시 옷을 입는 아이들, 폭격의 공포를 달래기 위해 모스크에서 흘러나오는 코란 구절. 이는 “기자의 최고 작품이 언론의 중심 영역을 벗어난 곳에 자리할 때가 많다는 실례”라는 것이다.

역자는 후기에서 독재 체제와 서구의 프레임이 중동의 현실을 왜곡한다면, 거대 자본이 한국 언론의 편향성을 조장한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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