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또 왔다… 전주 ‘얼굴 없는 천사’ 12년째 남몰래 기부

박용근 기자

20일 낮 12시10분.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전북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직원들 일부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얼굴 없는 천사의 전화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40대 남성의 목소리. 얼굴 없는 천사 그분이었다. 그는 “주민센터 인근 우리세탁소 옆 도로에 주차된 트라제XG 승용차 밑에 돈 상자가 있으니 가져가라”는 말만 남기고 끊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 임영희씨는 “돈 상자 이야기를 하는 40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얼굴 없는 천사가 왔음을 직감했다”며 “해당 차량으로 달려가 A4용지 박스 1개를 가져와 확인해 보니 성금이 가득 들어있었다”고 말했다.

전북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직원들이 20일 ‘얼굴 없는 천사’가 보내온 성금을 세고 있다. | 전주시 제공

전북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직원들이 20일 ‘얼굴 없는 천사’가 보내온 성금을 세고 있다. | 전주시 제공

올해 ‘천사’는 지난해보다 9일가량 빨리 나타났다. 성탄절이 가까워지면서 이 지역 주민들은 “언제쯤 천사가 올까”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동주민센터가 박스를 개봉해보니 5만원권을 100장씩 고무줄로 묶어 담은 편지봉투 10개와 노란 돼지저금통에 담긴 각종 동전 24만2100원 등 모두 5024만2100원이 들어 있었다. 천사는 “어려운 이웃 도와주십시오.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메모도 남겼다.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이 시작된 것은 2000년 4월. 당시 노송2동사무소를 찾은 ‘천사’는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놓고 사라졌다. 이렇게 올해까지 12년 동안 13차례에 걸쳐 전달된 성금은 모두 2억4744만6120원에 이른다.

재작년에는 과거 9년간의 성금액인 8100여만원과 맞먹는 8026만원을 한꺼번에 내놓은 뒤 쪽지를 남겼다. 쪽지에는 “대한민국 모든 어머님들이 그러셨듯이 저희 어머님께서도 안 쓰시고 아끼시며 모으신 돈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였으면 합니다. (추신)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천사에 대한 궁금증은 해마다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천사는 스스로를 끝내 드러내지 않는다. 성금을 남몰래 동사무소 옆에 놓은 뒤 전화를 걸고는 총총히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송하진 전주시장은 “그의 선행은 이제 전주시민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일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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