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미 컴퍼니 ‘사심 없는 땐스’

이로사 기자

거침없는 10대들의 몸짓, 그 속에 담긴 현실

사심 없이 추는 춤에는 진실이 담긴다. 10대들의 몸짓은 대개 기성의 몸짓을 닮아있다. 길거리에서 만난 10대들은 ‘춤을 춰 달라’고 주문했을 때 아이돌 그룹의 춤을 추거나 어디서 본 듯한 춤을 따라 춘다. 지난 24~26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열린 안은미 컴퍼니의 <사심 없는 땐쓰>(사진)는 억압된 10대들의 몸을 기록한 무대다. 이들의 웅크렸던 몸이 폭발하고 충돌하는 순간은 활기차지만, 10대들의 현실과 맞물려 비극적 페이소스를 자아낸다.

첫 장면. ‘빡빡머리’ 안은미가 교복을 입고 등장해 음악도 없이 춤을 춘다. 극장 안에는 그의 소매가 옷깃을 스치는 소리, 발을 구르는 소리만 가득하다. 그런데 동작들이 어딘지 익숙하다. 아이돌 그룹 춤의 안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그렇게 10대처럼 수줍어하거나 질투하고, 갇혀있거나 도약한다. 이어 무대에 오르는 밝은 원색의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 이들은 대놓고 아이돌 그룹의 춤을 차례대로 춘다. ‘학원별곡’ ‘열맞춰’ 등 다소 오래된 춤부터, ‘내꺼하자’ ‘쏘리 쏘리’를 지나 카라의 엉덩이 춤이나 소녀시대의 ‘GEE’, 2NE1 ‘내가 제일 잘나가’ 안무가 등장할 땐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진다. 아이돌 댄스가 ‘춤’의 언어로 재탄생한다.

댄스타임이 끝난 뒤엔, 공원·거리·학교·눈썰매장·볼링장 등 다양한 장소에서 찍은 10대들의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들은 사람들이 지켜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스꽝스럽게 아이돌 댄스나 막춤을 춘다. 관객은 웃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비슷한 영상이 반복될수록 웃음은 줄어든다. 어른들은 아직 맑은 얼굴을 지닌 아이들의 몸짓을 뜯어 보며 뭔가를 발견하고 생각해야만 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두산아트센터 제공

영상이 끝난 후엔, 진짜 고등학생들이 나온다. 지난해 9월부터 안은미의 무용 워크숍에 참여한 서울 국제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지금까지 등장한 모든 춤과 몸짓들이 이들의 것이었다는 깨달음. 이들은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을 읊은 뒤 한 명씩 자신의 바람이나 심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무대는 베개 싸움의 난장과 막춤의 폭발로 치닫는다. 이 경직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이들이 한 명씩 핀 조명 속으로 들어가 생명력 가득한 무형의 춤을 출 때, 우리는 이들의 미래에 대해 공통의 연민을 품는 동시에 스스로의 몸을 성찰하게 된다.

공연을 연출한 안은미의 행보는 마치 개개인의 행동과 관념을 관찰해 ‘전체’를 발견하는 인류학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지난해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로 이 땅의 할머니들의 몸짓을 기록했다. 이번엔 10대다. 지금 10대의 몸짓을 기록하는 데 엘리트들이 모이는 특목고인 국제고를 선택한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무용 워크숍에 참여한 학생들은 ‘내가 공연 준비할 동안 딴 친구들은 공부할 텐데’ 하는 불안감 속에서도 공연을 마쳤다. 그리고 입을 모아 “변화가 시작됐다”고들 말한다. 안은미는 6개월 동안 그들을 ‘안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을 경청하는 동시에, 그들이 스스로를 경청하게 했다. 아이들은 빠르게 스스로를 발견하는 방법을 익혔다.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는 “그의 무용은 우리를 웃게 하고, 들썩이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그 웃음이 발원하는 세계를 응시하게 한다”고 말했다. 다음번 탐색지는 40~50대 중년 남성들의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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