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동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최민영 기자

“아이 공격성 받아주는 건 부모뿐인데 혼내면 마음만 다쳐요”

경향신문 2014년 연중기획 ‘심리톡톡-나와 만나는 시간’ 3월 강연에선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인 서천석 박사가 ‘우리 시대의 좋은 부모’를 주제로 독자들을 만났다.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을 비롯해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 등의 저술로 마음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어온 그는 타고난 재담꾼이기도 하다. 지난 2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5층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된 강연의 주요 내용을 요약했다.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지난 25일 경향신문사 5층 여적향에서 강연하고 있다. 그는 “부모의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아이가 보이는 공격성 등 감정을 받아주지 못해 부정적인 대응이 이어지게 된다”며 양육에 임하는 심리상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cm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지난 25일 경향신문사 5층 여적향에서 강연하고 있다. 그는 “부모의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아이가 보이는 공격성 등 감정을 받아주지 못해 부정적인 대응이 이어지게 된다”며 양육에 임하는 심리상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cm

■ “육아에서는 부모의 마음이 편안한 게 제일 중요합니다.”

‘좋은 부모’란 말만 들어도 부담되시죠. 먼저 질문을 해보고 싶어요. 여성분들 중에 맞벌이 손들어 보세요. 꽤 많으시네요. 모 기업체가 조사했는데, 워킹맘들이 육아휴직 후 복귀한 후 굉장히 많은 수가 휴직하거나 회사를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회사에서는 손실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한 기업체에서 저에게 ‘육아는 양보다 질이다’라는 것을 강조해서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물어볼게요. 육아는 양보다 질일까요, 질보다 양일까요. 양이 중요하냐, 질이 중요하냐…. 알 방법은 없어요. 제가 보기엔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드는 시기는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 얼마 안됐을 때는 육아라는 것은 육아철학이 아니라 육아체력이 필요해요. 체력이 떨어지면 막 애를 집어던지게 되죠.

하지만 육아에서는 부모의 마음이 편안한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와 오랜 시간 있든, 짧은 시간을 있든 부모 마음이 편안한 상황으로 얼마나 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아이의 감정을 받지를 못해요, 아이가 공격성을 보일 때 내 마음이 편안하면 ‘그럴 수 있지’, 떼를 써도 가볍게 볼 수 있는 문제가 편하지 않으면 인상을 쓴다든지 부정적인 말로 애에게 대응하게 됩니다. 아이의 공격성을 받으려고 부모가 있는 거거든요. 사회는 받아주지 않아요. 부모는 아이가 표현하고 표현한 다음에 순화할 수 있도록 받아주는 것입니다.

아이와 엄마가 만나는 양과 질보다는 얼마나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루 24시간 중 아이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요. 육아에는 ‘자신의 능력 내에서 집중’이 필요합니다. 내가 못해준 것은 웃어 넘기고 잊어야 해요. 남의 집과 비교하면 결국 아이에게 화내게 되니까요.

육아를 편하게 잘하는 분들은 우선순위를 잘 정하세요. 아이들은 ‘조삼모사’의 경향이 있거든요.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조직하세요. 어떤 엄마는 자기 친정 가족 중에 아이를 봐줄 사람 명단과 날짜를 적어봤는데, 1년에 120여일이 나와서 그 기간엔 애를 맡기고 자기는 놀러 나갔어요. 엄마도 사생활이 필요하고 잘 쉬어야 하거든요. 부부관계도 중요합니다. 육아에 관한 의견차는 적당히 타협해가세요.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돼있어요.

[심리톡톡 나와 만나는 시간](3) 아동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빠의 무관심’이 입시 성공의 3박자라고 했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우리 시대의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받는 영향은 뭘까요. 일단 유교문화를 들 수 있습니다. 유교는 입신양명이야말로 조상들을 빛나게 하고 (후대의) 자손들을 편안하게 한다고 여깁니다. 결과중심적인 사고예요. 우리 사회에서 결과와 성취, 성공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 그 영향이에요. 아이를 한 개인,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인식이 부족하죠. 성장사회 때의 유년기 경험도 꼽을 수 있죠. 21년간 교과서에 수록됐던 우화 ‘개미와 베짱이’가 현재의 희생이 미래의 발전이라고 강조했던 것처럼 부모는 아이에게 쏟아부으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죠. 하지만 자본주의의 고도성장 시기는 끝났습니다.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신이 못 이룬 성취를 아이를 통해 이루려고 합니다. ‘패자부활전’이니 굉장히 절박해요. 그런데 부모가 밀고 도와준다고 애가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선시대 왕 중에서 정식 세자교육 코스를 밟은 이들 중 성군이 된 경우는 별로 없어요. 세조, 세종, 영조, 정조의 경우를 보세요. 어려서부터 충분히 쏟아부으면 아이가 잘 될 것이라는 것은 부모의 생각이지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영재들의 부모들을 만나봤는데, 애가 원래 탁월한 것일 뿐 부모 영향이 없었어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왜 성취해야 하는가’에 대해 묻지 않아요. 부모들이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받는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지금 부모)의 부모들은 ‘강하게 키운다’며 자녀들을 비교, 평가하며 밀어붙였어요. 한국인의 자존감이 그래서 전반적으로 높지 않습니다. 성차별을 받으며 성장한 현재의 엄마들은 더욱 그래요.

이처럼 낮은 부모의 자존감을 세우고 불안을 타파하는 도구로 아이가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요. 성취나 결과에 매달리고, 아이의 단점은 뭐든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다른 아이들과 끊임없는 비교당한 아이가 힘들어하면 도피성 유학이나 대안학교를 보내지만, 그곳에서 아이들은 적응에 더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을 협박으로 키우고 있어요. 애들에게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면 “안 하면 노숙자가 된다”고 대답해요. 그런 말, 부모에게 들었겠죠.

그러면서 아이들을 사교육에 몰아넣습니다. 사교육, 효과가 있긴 하죠. 애를 붙잡고 1 대 1로 가르치고 특별한 방법으로 가르치면서 대한민국은 교육 혁명을 이뤘어요. 문제는 다 같이 시키면 사교육 효과가 없다는 거예요. 메가스터디 손주은 사장은 “예전에는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빠의 무관심이 입시성공의 3박자라고 했는데, 그런 시대는 끝났다. 엄마의 어설픈 정보가 아이들을 망치고, 사교육 기관에서 사기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선행학습은 아이에게 도움이 안돼요. 학원 입장에서야 당장 평가를 안 받으니 편하죠. 지금 아이들이 악착같이 배우는 것은 시험에서 실수를 줄이는 방법에 불과해요. 그게 무슨 아이들의 지적발달이나 실력에 도움이 되겠어요. 짧은 조언을 드리자면, 공부는 나중에 해도 괜찮습니다. 요즘 <초등학교 4학년 때 인생이 결정된다>는 책이 있던데요, 결정 안 됩니다. (청중 웃음) 나중에 해도 돼요. 대신 열심히 해야죠.

■ “변화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 시간을 버텨줄 수 있는 게 부모죠.”

우리 사회의 부모들은 기본적으로 권위주의 성향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무섭게 해서라도 바른 길로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며 내가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아이가 어떤 결정을 내리면 쿨하게 인정해주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요. 아이는 때려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부모가 더 많아요. 그저 서양의 민주적 양육을 흉내만 내죠. “네가 ~구나”같이 아이에게 공감하는 어법인 ‘구나체’를 쓰지만 “그런데 말이야”라며 바로 혼냅니다. 그 다음에 “우리 아이 착하구나”로 마무리를 지어요. 부모들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아이를 통제해서 내가 정한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가 관심사예요. 아이를 로봇처럼 만들어요.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뒤늦게 20~30대에 사춘기를 맞습니다. 제가 곧 20~30대 정신과 전문의가 될 여건이 되고 있어요. (청중 웃음)

제가 존경하는 영국의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코트 박사는 ‘이만하면 충분히 좋은 부모’라는 표현을 썼어요. 어떤 아이도 착할 수만은 없어요.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어요. 아이가 순수하길 바라는 건 부모의 불안에서 비롯되죠. 아이의 부정적인 문제를 슬슬 가르치면서 끌고 가면 되는데, 부모의 자기상이 부정적일 경우에는 아이의 부정적인 모습을 받아들이질 못해요. 아이는 부모 앞에서 그런 모습을 속으로 묻고 다른 데서 표출하거나 성인이 돼서 콤플렉스 문제를 겪기도 해요. 당장 바꾸려는 마음을 버려야 해요. 많은 변화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 시간을 버텨줄 수 있는 게 부모죠.

내 모습이 그대로 나오는 게 육아입니다. 그래서 나를 변화시켜야 해요. 한심한 내 약점을 인정하고 계속 발전하려는 모습만 아이에게 보여도 됩니다. 자신의 한심한 모습만 생각하거나 한심한 모습을 부인하고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면 아이는 대화를 차단할 뿐이에요.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아빠는 맨날 친구와 싸우고 엄마는 친구를 안 만나고 산다면 아이에게 통할 리 있나요.

아이의 모델은 나입니다. 내가 낙관적이어야지 아이도 즐겁게 어른이 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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