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타결 ‘이란의 봄’을 가다 - 테헤란 2신

애들 등록금 2억리알, 월급 10배… “물가 너무 올라 ‘투잡’해도 빠듯”

테헤란 | 남지원 기자

외국인 카드결제 불가… 50만리알(약 1만5000원) 지폐 들고다녀야 안심

주민들 인플레로 고통… 도로마다 찌그러진 차

나세르는 올해 50살로, 작은 민간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다. 아내, 두 아들과 함께 수도 테헤란에서 살고 있다. 그가 받는 월급은 겨우 2000만리알, 60만원이 조금 넘는다. 월급의 절반은 월세로 나간다. 사립대에 다니는 두 아들의 한 학기 등록금을 합하면 2억리알(약 600만원)이다. 아이들 등록금이 월급의 10배다. 나세르가 버는 돈으로는 말 그대로 입에 풀칠도 못한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내도 일을 한다.

나세르는 회사 근무가 끝나면 밤에는 택시기사로 ‘투잡’을 한다. 등록된 택시는 아니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무허가 영업을 하고 있다. 그의 동료들도 대부분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두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그나마 정부가 식량보조금을 주기는 하지만, 최근 몇년 새 물가가 너무 올라 보조금만으론 턱없이 모자란다. 이란인들이 늘 먹는 닭고기는 한 마리에 6만7000리알이던 게 근래 9만리알로 뛰었다. 7일 테헤란에서 가장 큰 소매시장인 타즈리쉬 시장 앞에서 만난 나세르는 “이러다가는 투잡으로도 빠듯해 한 가지 정도 일을 더 해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란인들이 6일 수도 테헤란의 최대 소매시장인 타즈리쉬에서 늦은 밤 장을 보고 있다.  테헤란 |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이란인들이 6일 수도 테헤란의 최대 소매시장인 타즈리쉬에서 늦은 밤 장을 보고 있다. 테헤란 |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이란은 중동에서 경제규모가 가장 큰 데다 자원부국이다. 농수산물 생산도 많고 제조업도 발달했다. 하지만 1979년 이란혁명과 테헤란 미 대사관 점거사건 이후 시작된 미국의 경제제재로 오랫동안 국제질서에서 고립돼 한눈에 보기에도 경제가 무너진 티가 역력했다. 테헤란 거리는 마치 수십년 전에 멈춰 있는 듯했다. 도로에는 칠이 벗겨지고 여기저기 찌그러져 제대로 움직일지조차 의심스러운 차들이 즐비했다. 택시는 문 잠금 장치가 고장 났고, 시트가 뜯겨 솜이 삐져나와 있다. 도로 보수를 못해 차는 계속 출렁거리고 덜컹거린다. 도로와 건물들이 무너지고 갈라지고 벗겨진 건 도심이건 외곽이건 똑같았다.

특히 이란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든 건 최근의 인플레이션이다. 2011년 미국이 핵 개발을 문제 삼아 제재를 강화하고 유럽연합(EU) 등도 이란산 원유를 끊자 외화 유입이 크게 줄었다. 리알화 가치는 2011년 달러당 1만8000리알에서 3년 만에 3만5000리알로 폭락했다. 화폐가치가 너무 낮아 테헤란에서는 50만리알 지폐를 늘 들고 다녀야 한다. 계속해서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물가상승률이 2013년에는 무려 42%가 넘었다.

타즈리쉬 시장에서 만난 한 60대 여성은 빈손이었다. “옷을 사러 왔는데 너무 비싸 아무것도 못 사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은 이란의 전통설인 ‘노루즈’였다. 가뜩이나 비싼 물가가 명절 전후에 더 뛰었고, 요즘엔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기분이라고 했다. 시장 옷가게에 진열된 옷은 대부분 중국산이나 터키산이다. “식료품 중에선 고기값이 유독 많이 올라 사먹기 힘들다. 훨씬 잘살았던 제재 전과는 비교하기도 어렵고, 특히 최근 몇년 새 더 힘들어졌다”는 그는 “정치인들이나 높은 사람들만 배불리고 있는 것”이라며 시장을 떴다.

식당 주인들은 “고기값이 15%나 올랐는데 서민들 밥 먹는 곳이라 음식값을 올리지 못해 손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 시장 한 옆의 정육점 주인 말로는 그나마 쇠고기값이 덜 오른 편인데도 몇주 새 ㎏당 32만리알에서 35만리알로 10% 가까이 올랐다. 시장에서 가장 북적이는 매장은 국영상점이다. 정부에서 농산물을 직접 수매해 유통마진을 줄이는 데다 농산물 품질이 좀 떨어져서 값이 약 20~30% 싸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름대로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는 있는 셈이다.

이란은 오랜 고립을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자신들만의 경제질서를 만들어온 나라이기도 하다. 세상 어디에서나 통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금수조치 때문에 통하지 않는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신용카드다. 미국과 유럽 등은 이란 해외자산을 동결하고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들을 제재한다. 그래서 이란과 바깥세상의 연결에는 늘 제한이 따른다. 호텔 예약조차 인터넷 예약사이트들을 이용해선 할 수가 없다. 카드결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란 은행 계좌가 없는 외국인들은 현금을 인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신정 체제’의 사회적·종교적 억압과 정치적 비민주성에 더해 경제적 고통까지 겹치니 국민들의 불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반발이 터져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들을 통제하고 있다. 이는 외부의 제재가 아닌, 이란 내부의 정치 상황에서 불거진 폐쇄성이다. 트위터에 접속하려 하자 이란어로 된 정부 페이지로 연결됐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도 트위터를 이용하고, 심지어 자바드 자리프 외교장관은 이번 핵협상 결과를 트위터로 전했는데도 국민들은 가상사설망을 통해 몰래 소셜미디어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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