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위원장 ‘자진 출두’

법복 벗고 민주노총 조끼로…“국민적 재앙, 노동개악 막아야”

김지원 기자

대웅전서 노동자 위한 ‘기원의 절’ 올린 후 자승 스님과 면담

조합원에 주먹 쥐며 인사…조계사 부주지 ‘수갑 호송’ 막기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53)이 은거 24일 만에 자진 퇴거한 10일 조계사 주변은 경찰과 민주노총 조합원, 취재진으로 아침 일찍부터 북적였다.

오전부터 조계사 일주문 등 출입구를 봉쇄한 경찰은 경내 입장객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검사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경찰은 한 위원장이 은거 중인 관음전 방향 통로 등을 차단했고, 경내에도 일부 경찰이 배치됐다. 대웅전에서는 일반 신도 수십명을 상대로 법회가 열려 목탁과 염불소리가 부슬비 내리는 경내를 잔잔하게 메웠다.

민주노총은 오전 9시 자료를 내고 “한 위원장은 관음전을 나가 노동개악 중단, 백남기 농민 쾌유 등을 빌기 위해 대웅전에서 기원의 절을 올린 후 경찰서로 갈 것”이라고 했다.

자진 퇴거 시한이 다가오면서 고요하던 조계사 경내가 소란스러워졌다. 9시50분쯤 조계사 소속 직원 등 70여명은 한 위원장의 동선을 보장하기 위해 관음전 구름다리에서 대웅전까지 이어지는 100m가량의 길에 ‘인간띠’를 만들었다.

10시10분쯤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이 관음전으로 들어간 후 10여분 만에 한 위원장과 도법 스님이 나란히 서서 밖으로 걸어나왔다. 한 위원장은 턱 군데군데 잔수염이 나고 오랜 단식으로 수척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관음전에 머무는 동안 입었던 법복이 아닌 갈색 등산점퍼에 남색 민주노총 조끼를 걸쳤다. 도법 스님과 한 위원장은 10시25분쯤 관음전을 나와 대웅전에서 삼배를 드린 뒤 자승 스님과 면담하기 위해 불교역사문화기념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승 스님과 면담을 마치고 나온 한 위원장은 도법 스님과 함께 기자회견장이 마련된 생명평화법당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위원장은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며 ‘인간띠’ 바깥에 늘어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인사하곤 했다.

10시50분 한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그는 회견을 시작하기에 앞서 ‘비정규직 철폐’라고 적힌 머리띠를 머리에 둘러 묶었다. 한 위원장은 “다시 투쟁의 머리띠를 동여맸다”며 “우리 사회가 바로 가기 위해 노동개악이 주는 국민적 재앙이 무엇인지 제대로 주목하고 대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준비된 기자회견문을 읽으면서 군데군데 회견문에 적히지 않은 문구를 격앙된 어조로 말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감옥과 법정에서도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읽으며 “제가 굶더라도 2000만 노동자들의 밥줄을 지킬 수 있다면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회견을 마친 한 위원장은 노조원 등의 비호를 받으며 일주문을 향해 걸어갔다. 관음전부터 동행했던 도법 스님은 일주문을 나서기 직전 한 위원장을 끌어안았다.

11시15분쯤 일주문을 빠져나온 한 위원장에게 경찰은 체포영장을 제시하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경찰이 한 위원장에게 수갑을 채우려 하자 조계사 부주지 담화 스님이 이를 만류했고, 이 과정에서 작은 실랑이가 일었다.

결국 경찰은 한 위원장의 팔에 수갑을 채웠고, 한 위원장은 덤덤한 표정으로 25인승 미니버스인 경찰 호송차에 올랐다. 조계사를 떠난 호송차는 11시23분쯤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도착했다. 관음전에서 모습을 드러낸 지 1시간여 만이었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